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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태안의 안흥반도의 역사와 의미를 담다

2017.09.07(목) 13:40:00 | 지민이의 식객 (이메일주소:chdspeed@daum.net
               	chdspeed@daum.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자리한 땅은 한반도이다. 반도라 함은 지반 운동에 의해 바다로 돌출된 육지를 의미하는데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기후가 해양성이다. 한반도처럼 대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경우 분쟁의 중심에 서는 경우가 많다. 한국 역시 중국과 러시아, 일본, 미국 등의 중심에서 세력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한반도의 서쪽에 있는 태안반도 역시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그 서쪽으로 더 가면 안흥 반도가 있다. 반도보다 작은 육지의 돌출부는 호미곶 같이 곶이라고 부르지만 안흥성과 안흥항이 있는 안흥 반도는 소원 반도와 함께 반도라고 불린다.

태안의안흥반도의역사와의미를담다 1

안흥내항은 2015년 8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신진도리와 정죽리를 잇는 해상인도교 건설공사가 진행 중에 있는데 이는 지역적 랜드마크기능의 해상인도교 설치로 관광자원화 시설을 조성하고 지역주민의 보행환경개선에 그 목적이 있다. 약 113억 원의 공사비가 들어간 이 공사로 안흥항의 풍광이 적지 않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태안의안흥반도의역사와의미를담다 2

정죽 반도 혹은 근흥 반도라고도 불렸던 안흥 반도는 지역의 역사성을 가진 곳이다. 서쪽에 있는 태안반도에서 더 서쪽으로 나아간 지리상의 이점 때문에 중국과의 교역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했던 이 지역은 송나라의 사신을 위한 객관인 안흥정의 이름을 따 안흥성, 안흥량등으로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다.

태안의안흥반도의역사와의미를담다 3

지금은 낚시가 잘되는 곳으로 관광객들이나 주민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서해안의 잔잔한 바다와 달리 안흥 반도의 앞바다는 서해안 연안 항로에서 가장 위험한 해역이라고 불릴 만큼 물살이 굽이처 도는 곳이다. 남해의 울돌목을 보는 것 같이 빠른 해류와 예측하지 못한 바다의 변화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바다의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태안의안흥반도의역사와의미를담다 4

바다가 성을 잘 내는 곳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안흥 반도와 신진도의 마을(정산포(정죽1리)·죽림(정죽2리)·성안(정죽4리)·안흥(정죽5리)·안패(도황리)·신진도 등)에서는 대부분 당제를 지냈다. 한해의 풍어를 기원하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최근에는 이런 당제가 중단되면서 민속의 흔적이 끊길 처지에 놓여 있다. 

조금의 공간이라도 있으면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안흥항에서 특히 잘 잡힌다는 우럭을 낚으려고 하고 있었다.  선박의 조난이 빈번한 지역이라는 뜻에서 '난 행량'(難行梁)이라고 하였다가 조난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무사항해를 바라며 '안흥량'이라고 개칭했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안흥정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한다. 

태안의안흥반도의역사와의미를담다 5

해상 교통의 요지였던 곳에는 어김없이 그곳을 방어하는 시설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조선 초기인 15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안흥 반도의 안흥성 안에는 기와집이 300여 채 있었다고 한다. 사신이 오가던 곳에는 교역이 빈번하고 돈과 물자가 오가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거상이 생기고 보부상들도 이곳을 드나들며 물건을 사고팔았을 것이다.

태안의안흥반도의역사와의미를담다 6

“이곳은 바다 가운데로 수십 리를 뻗어 들어가 있으므로 여기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양곡을 저장하면 안으로는 강도의 표리(表裏)가 되고, 밖으로는 호남과 영남을 제어하게 될 것이다.”
축성을 담당했던 경기사 김석견이 효종에게 한 말이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북벌의 꿈을 꾸던 효종이 교통 요지였던 안흥 반도에 성을 축조하여 향후 청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발판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가 고종 31년 (1894년) 동학혁명 때 건물이 대부분 소실되고 성곽 역시 많이 훼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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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대부분 없어졌지만 지금도  수성루, 수홍루, 복파루, 삼성루가 남아 있고 1979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1호. 지정면적 38,658㎡, 둘레 1,500m. 일명 ‘안흥 진성(安興鎭城)’으로 그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의 성벽이 지금도 보존되고 있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그 형태가 모호해지고 있다. 안흥성을 돌아보는 길은 수홍루(垂虹樓)에서 언덕 방향으로 돌담이 이어지는 길을 통해 걸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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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출발하면 중국 땅까지 불과 270km에 불과하다. 빠르다는 쾌속선에 오르면 중국까지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안흥 반도는 오랜 시간 거듭된 시련 속에서 품성을 길러 속이 가득 차서 펴는 땅이다. 위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서해의 바다는 순연한 가을 정취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살기를 바라고 조바심 내지 않는 인내를 쌓기를 바래본다. 

이글은 http://media.daum.net/life/outdoor/travel/newsview?newsId=20170829164104918에도개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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