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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호국의 투혼이 담겨있는 곳, 논산 개태사

2017.07.11(화) 19:12:01 | 설화 (이메일주소:ullallas2@naver.com
               	ullallas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호국의투혼이담겨있는곳논산개태사 1


햇살은 뜨거운 여름이지만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으로 아직은 주말에 나들이를 다니기에 꽤 괜찮은 날씨인데요. 옆모습이 중후하게 뻗은 천호산 자락을 진산으로 삼아 들어서 있는 개태사를 둘러보기 위해 논산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대부분 산 중턱에 위치한 여느 절과는 달리 개태사는 길가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더욱 많은 이들이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호국의투혼이담겨있는곳논산개태사 2

호국의투혼이담겨있는곳논산개태사 3


개태사 절 내로 들어서려면 가장 먼저 개운교를 건너야 하는데요. 개운교의 양 옆으로 연지가 꾸며져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빠알갛고 노오란 연꽃이 활짝 피었는데요. 연꽃에는 수많은 의미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불교와 어울리는 의미는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그 잎과 꽃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에 주변의 잘못된 것이 물들지 않고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이 되라는 뜻의 이제염오(離諸染汚) 라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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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 내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대웅전과 오층석탑 그리고 그 뒷편으로는 정법관, 팔각당과 우주각 그리고 가장 오른쪽에는 기숙사로 쓰였던 종무 등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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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는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후백제를 평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축조된 절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예전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태조의 영정을 모시는 진전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고려 말기로 접어들면서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면서 방화와 약탈 등으로 인해 폐사된 채 방치되어 오다가 오늘날에 이르러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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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노오란 여름꽃이 활짝 피어 볼거리를 더해주고 있었는데요. 활짝 꽃망울을 터트린 그 모습이 참 당차면서도 생기발랄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정법관 내에 오르고 나자 경내가 한 눈에 들어왔는데요. 예전에는 기숙사로 쓰였던 이 곳은 지금까지도 사무실 혹은 숙소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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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법관 오른편으로는 우주각을 볼 수 있는데요. 이 우주각은 개태사의 철확을 잘 간직하기 위해 지어진 곳으로 지금까지도 철확이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이 철확은 커다란 무쇠 가마솥으로 태조왕건이 개태사를 세운 후에 승려 500 여명의 밥을 지을 수 있는 이 솥을 하사하셨다고 하는데요.

그 후,  대홍수가 나면서 떠내려 가 연산읍 냇가에 묻혀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후 개태사가 폐사되 아무도 찾지 않고 있던 중, 일제강점기를 맞게 되었고 후에 일본인들이 이 솥을 발견하고는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부산까지 갔는데 갑자기 가마솥에서 큰 소리가 나서 배에 싣기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마솥 마저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는데요. 개태사에 관한 더 다양한 이야기를 알고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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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팔각당 안에는 층층이 쌓아올린 방석위로 동자부처를 모셔 앉힌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높은 방석 위로 빼꼼 고개를 내민 동자부처의 모습이 참 친숙하면서도 넉넉하게 느껴졌습니다.

여름날이지만 가벼운 곳에 나들이를 계획하고 계신 분들은 이번 주말, 개태사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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