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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부여 은산별신제,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일본 돗토리현에 복신장군 아들 사당 '일야정' 있고 은산별신제와 27년째 교류

2017.06.23(금) 02:35:43 | 권순도 (이메일주소:djshsjshsywy@hanmail.net
               	djshsjshsywy@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청남도에는 많은 국가무형문화재와 유형문화재, 그리고 충청남도 지정 유무형문화재가 존재하고 있다.
이중에서 부여 은산별신제는 충청남도에서 가장 먼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1966년, 제 9호) 전통있는 행사다.

은산별신제는 삼국시대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패망한 이후 백제 부흥을 꿈꿨던 병사들과 유민들의 넋을 위로하고 지역의 풍요와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특히 은산별신제는 한반도를 침탈했던 일제가 한국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각종 만행과 방해공작을 펴는 과정에서 당시에 이같은 행위에 참여한 일본군이 모두 죽어 나중에는 두려움 때문에 별신제를 막지 못했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무형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오늘 도민리포터가 포스팅하고자 하는 내용은 은산별산제에 대한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현재 부여군과 충청남도에서 이 무형문화재를 세계문화유산으로(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도민들께 알려드리고, 더 많은 관심을 촉발시키기 위함이다.

은산별신제 기능보유자인 무형문화재 제 9호 박창규선생을 별신제 기념관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부여 은산면에 있는 은산별신제 기념 전수관
▲ 부여 은산면에 있는 은산별신제 기념 전수관

별신당
▲ 별신당

은산별신제의 과정을 설명해 놓은 안내문
▲ 은산별신제의 과정을 설명해 놓은 안내문

별신제 유래비
▲ 별신제 유래 안내문

별신제 유래비
▲ 별신제 유래비

지난 4월초 부여에서는 중요한 학술포럼 행사 하나가 열렸다. 은산별신제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필요성을 학술적으로 논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한국전통문화학교 산학협력단 주관으로 개최된 ‘은산별신제 전형유지와 공동체 전승력 강화’를 위한 학술포럼이 그것이었는데 당시 포럼에는 세명대 이창식 교수, 전북대 홍태한 교수, 고려대 허용호 교수, 무형문화연구소 윤동환 교수등 학계 및 관계자 은산별신제보존회원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포럼에서는 은산별신제의 정체성 회복과 지역적, 역사적, 사회적 요인에 의한 전형, 은산별신제의 세계화 방안이 논의되었고 은산별신제와 오티별신제, 목계별신제의 원형, 전형, 변형 등에 대해서도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즉 이들 별신제를 은산별신제와 접목시켜 연구하고 그같은 전통과 신제의 흐름, 변화과정 등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기념관 안 벽면에 소개하고 있는 역대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들
▲ 기념관 안 벽면에 소개하고 있는 역대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들

일제 강점기에도 별신제를 지낸 사진.
▲ 일제 강점기에도 별신제를 지낸 사진.

1937년 당시 별신제 사진을 가리키고 있는 현재의 무형문화재 씨.
▲ 1937년 당시 별신제 사진을 가리키고 있는 현재의 무형문화재 박창규 선생.

일제 강점기 행사후 사진.
▲ 일제 강점기 은산별신제 행사를 마친후 사진.

1939년 별신제를 마친후 촬영한 사진.
▲ 1939년 별신제를 마친후 촬영한 사진.

당시 일제강점기임을 증명하는 중앙의 일본군이 보인다.
▲ 당시 일제강점기임을 증명하는 중앙의 뒷짐진 일본군이 보인다.

왼쪽 뒤엔 일본 군국주의 상징 깃발이 보인다.
▲ 왼쪽 뒤엔 일본 군국주의 상징 깃발이 보인다.

위와 같은 사진 뒷쩍에는 우리 태극기도 보인다. 당시 은산별신제를 일제도 함부로 하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위엄있는 모습이다.
▲ 위와 같은 사진 뒷쪽에는 우리 태극기도 보인다. 당시 은산별신제는 일제도 함부로 하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위엄있는 모습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은산별신제를 버리지 않고 천년 세월동안 면면히 이어오고 지켜 온 부여군 은산면 주민들의 노력에 대한 가치, 전승 공동체의 자율적인 행사와 지역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관심, 전승주체들의 위상에 대한 새로운 의미도 부여했다.

이번 학술포럼을 전후해 부여군에서는 T/F팀을 별도로 꾸려 더 치밀하고 조직적인 준비를 해 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은산별신제가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업과 관련해, 전북 익산과 경북상주가 공동으로 힘을 합쳐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일본과도 함께 손을 잡고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일본이 여기에 왜 연관성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백제의 멸망 당시 그 전후사와 백제-일본과의 관계, 거기서 파생되어 나온 별신제의 유래 등을 이해해야 한다.
 
백제가 망한 후 의자왕은 중국으로 볼모로 잡혀간다.
이후 복신(의자왕의 사촌) 장군과 흑치상지, 도침 등이 일본에 구원병을 요청하는 한편 일본에 가 있던 의자왕의 아들 풍 왕자를 왕으로 받들고 백제 왕조의 부흥을 선언한다.
백제 부흥군이 조금씩 백제의 영토를 되찾아 나가자, 위기를 느낀 신라는 다시 당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지만 백제 부흥군을 지휘하던 풍 왕자와 복신 사이가 갈라지면서 백제부흥 노력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간다.
 
현재 일본 돗토리현에는 일야정이라는 사당이 있는데 이것은 복신장군 아들(귀실집사)의 사당이라 한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귀실집사가 백제가 백강 전투에서 패하기 1년 전인 662년 백제 남녀 유민 400여 명을 데리고 일본으로 가서 정착했다.

은산별신제와 27년째 교류중인 일본 돗토리현의 복신장군 사당인 일야정.
▲ 은산별신제와 27년째 교류중인 일본 돗토리현의 복신장군의 아들 귀실집사를 모신 사당인 일야정.

 
사당의
▲ 일야정 사당


일야정 사당의 모습
▲ 일야정 사당의 모습

일야정 주민들의 복신장군 추모 행사.
▲ 일야정 주민들의 복신장군 추모 행사.

그리고 귀실집사는 그곳에서 관직도 받았으며 이때 정착한 백제 망명자는 모두 1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후손이 인근 산맥 아래에서 촌락을 이루고 살면서 귀실집사를 모시는 귀실신사를 관리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신사가 돗토리현의 일야정이다.
일본서기에는 귀실집사가 일본에 이주하여 26년 동안 살다가 688년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백제와 일본, 그리고 백제 멸망후 부흥군을 이끌었던 복신등과 일본의 관계 등을 종합해 보면(일본 서기에도 기록이 남아있는 正史) 그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돗토리현의 일야정과의 관계를 빼놓을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백제부흥기를 전후해 생겨난 은산별신제를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있어서 이 복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야정의 역사적 사실이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어쩌면 일본 돗토리현의 일야정 주변 사람들은 당시에 백제에서 건너간 유민들의 후손이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역사란 참 아이러니 한 것이다.
 
어쨌거나 부여군에서는 그래서 은산면을 중심으로 지난 1990년 이후 복신장군의 아들 귀실집사의 묘가 있는 일본 일야정과 자매협정을 체결한 이후 27년간 다방면의 상호교류를 통해 우호와 친선을 다져왔다.
그리고 해마다 이곳 일본의 일야정 사람들은 은산별신대제 친선교류를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부여군 을 찾았다.
참고로 금년도에도 일야정 방문단이 찾아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능산리 고분군, 부소산성, 정림사지 등을 방문하고, 관내 주요관광지 관람한 후 은산 별신대제 본제행사에 참가했다.
 
은산별신제 기능보유자인 박창규(오른쪽) 선생과 송병일 선생.
▲ 은산별신제 기념관에서 이번 취재를 도와주신 은산별신제 기능보유자인 박창규(오른쪽) 선생과 송병일 선생.


그동안 무형문화재에 대해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고, 특히 부여의 은산별신제는 백제부흥운동기에 죽은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는데서 유래했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그 전후과정에서 일본의 특정지역이 이렇게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점은 새롭게 안 사실이다.
우리 도민들께서도 그동안 잘 몰랐던 일이라면 이번 기회에 은산별신제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져봄은 물론, 그 깊은 연관성이 있는 일본의 돗토리현 일야정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이미 1990년부터 27년간 꾸준히 상호 교류하며 친선을 다져온 부여군 은산면 사람들에게도 많은 격려와 관심을 나눠 가졌으면 좋겠다.
 
이런 노력들을 바탕으로 우리 은산별신제가 하루빨리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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