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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보부상의 역사' 청소면 원홍주등육군상무사

2017.05.23(화) 19:23:08 | 논두렁 리포터 (이메일주소:yunsangsu63@gmail.com
               	yunsangsu63@gmail.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보부상의역사청소면원홍주등육군상무사 1

보부상이라고 하면 장돌뱅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소설 상도에도 나와 있듯이 보부상들이 연합하여 행단을 만들고 그리고 곳곳에 통신망이 있어서 스파이 역할도 수행하였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안고 보령 청소면 죽림리에 원홍주육군상무사의 유적지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어서 역사적으로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보부상의역사청소면원홍주등육군상무사 2

죽림리에서 철도를 따라 200미터를 걸어 죽림리의 보부상 유적 좌측 산 쪽으로 50미터 걸어오면 원홍주등육군상무사 비를 찾을 수가 있다. 전국에 보부상 조직의 유적이 전무한데 보령에 이렇게 보존 상태가 좋고 시대의 스토리에서 원홍주등육군상무사의 이야기를 엿볼수가 있다. 남아 있는 땅의 주인이 1000명 정도 된다고 하니 후손들의 재산권 때문에 많이 다투었을 거라 추정한다. 현재의 법 때문에 보부상의 유적지가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보부상이란 봇짐으로 싸서 장사하는 보상, 즉 상무 우사와 지게에 짊어지고 등짐으로 장사하는 부상 즉 상무 좌사를 통칭하는 말이다. 보부상의 연원은 조선건 국초에 충성을 바친 배달원이라는 사람이 태조로부터 상단으로의 공인을 받으면서 비롯됐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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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홍주등상무사 비석 아래 공터에는 귀여운 토끼들이 있었다. 몇 마리는 탈출하여 대나무숲으로 도망가는 모습이 우습기까지 하다.내용인즉 직책별로 이름이 적혀 있었으며 중요민속문화재 30-4호로 지정된'원홍주등상무사'의 중요한 기록임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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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공터에 컨테이너 사무실이 있을 뿐 형식적으로 관리가 되고 있는 것 같다. 훌륭한 관광자원이 있는데도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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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은 태조로부터 인가를 받아야만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보부상은 주로 상품의 매매를 위주로 하는 것이었으나, 나라에 환란과 위기가 닥칠 때에는 적지를 정찰하거나 의용군에 참여하여 공훈을 세우기도 했다. 자유품들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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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눈에 띄는 지게 봇짐의 크기로 봐서 200킬로그램의 물건을 지고 다녔다고 하니 장돌뱅이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를 짐작하게 하네요. 출정식을 해야 하는데 이 지게를 안 매려고 생략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존 상태가 좋다고 하니 어이가 없습니다. 원홍주등육군상무사 유품들은 조선 말기 이후 상무사의 여러 기능과 활약상을 알아보는데 귀중한 민속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보부상의역사청소면원홍주등육군상무사 7

땅이 얼마나 넓은지 만여 평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하네요. 후손들이 1000명 정도 되니 요즘 법으로 일일이 도장을 받아야 매매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밭과 산 중간에 선대의 비석들이 여러 개가 보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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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원홍주등육군상무사의 단체가 있어서 매년 한식 때 보부상과 관련된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요즘은 이마트니 홈플러스만을 이용하는 시대입니다. 이곳에 들려 조선시대 이래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선조들의 상단의 숨결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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