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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뉴스

세 아이 키우며 박사학위 도전 성공 "기뻐요"

청양읍 이연숙 씨, 주경야독으로 꿈 이뤄

2017.03.30(목) 09:20:19 | 관리자 (이메일주소:ladysk@hanmail.net
               	ladys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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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숙(사진 오른쪽) 씨는 친구 한혜경 씨가 있어 언제나 든든했단다. 한혜경 씨는 학원에서 수학을 담당하고 있으면 둘은 청신여중 동창생들이다

오늘은 청양군에서 GnB 영어전문학원을 운영하는 이연숙(44) 원장을 소개한다. 그는 청양 청소년들의 영어실력 향상을 도와주고 있는 사람이다. 학생 지도에 더해 권현용(48·정산정수장) 씨의 아내 세 자녀의 어머니로서 1인 다역을 하는 바쁜 중에도 학업을 계속해 최근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열정도 보여줬다. 이 원장을 소개한다. 

 

효성 지극했던 막내딸 
그는 비봉면 중묵리에서 이병조·이종순(87)씨의 4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문박초와 청신여중을 마쳤고 유학을 떠나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다.
고교 졸업 후 그는 대학 입학 예정이었다. 합격통지도 서너 곳에서 받았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집으로 왔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간호를 위해서였다.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어요. 막내라서 더 그랬나 봐요.”

이후 그는 어머니 간호와 함께 틈틈이 공무원 시험공부도 했다. 그러다 23살 때인 1996년 권씨와 결혼하고, 세 아이 출산 후인 2002년 6월에 GnB영어전문학원을 시작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영어에 관심이 많았어요. 텔레비전도 영어 프로그램만 봤죠. 그러던 중 프랜차이즈 영어 전문학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특히 우리 세 아이를 가르치면서 운영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도전했죠.”

1인 다역하며 박사학위 취득   
야심 차게 학원 문을 열었지만, 운영이 쉽지 않았다. 강사수급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강사들이 낸 이력서를 조회해 보면 학력 경력 등이 거짓인 경우가 많더군요. 지역에서 강사를 구하는 것은 더 어려웠죠. 개원 당시 제 학력은 고교 졸업이었기 때문에 직접 가르칠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직접 하자 마음먹고 대학에 진학해 영문학 공부를 시작했죠.”
그렇게 그의 바쁜 일상이 시작됐다. 학원을 운영하며 대학에 다녔고,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또 세 아이의 어머니 역할도 해내야 했다.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2007년 영문학 학사, 2010년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공부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친김에 2011년 박사과정에 도전했고, 2013년 수료 후 지난해 12월 글로리아 네일러의 주요소설을 중심으로 한 ‘흑인 여성의 상처와 치유’를 주제로 한 논문이 통과되면서 학위를 취득했다.
“학원 개원 당시는 초등학생만 해도 1000여명이 넘었어요. 하지만 학생은 계속 줄고 학원은 계속 늘었죠. 강사수급도 어려웠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원장이 직접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한 것이고, 일하면서 다닐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충남대학교를 선택해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모교 강단에 꼭 서보고 싶어요
그가 이처럼 박사학위까지 도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대학 강단에 서기 위해서다. 
“영문학과는 박사학위가 있어야 강단에 설 수 있답니다. 꼭 한번 서보고 싶어요. 2학기부터나 아니면 내년부터 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는 시어머니 이영우(83) 씨와 남편이 아니었다면 현재에 이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가족들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거예요. 시어머니께서 아이들도 키워주시고 반찬도 해주셨죠. 막내 10개월 때부터 제가 일을 시작했거든요. 또 학원 일을 함께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었답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싶어요.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도 감사하고요.”
그는 가슴 먹먹한 이야기도 전했다. 뇌출혈로 쓰러졌던 친정어머니가 건강 회복 후 본인 때문에 막내딸이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며 2008년 대학원 진학 시 입학금을 내줬는데, 곧 다시 쓰러져 지금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박사 학위를 딴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도 건강이 안 좋으세요. 지금 둘째 오빠와 함께 계신데 저는 퇴근해 목욕을 시켜드리는 일뿐이 할 수가 없네요. 더 나빠지시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루를 48시간처럼 살았던 이연숙 원장.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마음으로 학원생이 미래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한다.
“빠른 영어가 들리지 않는 이유는, 뇌에서 소음으로 받아들여서랍니다. 하지만 반복하면 뇌가 받아 들인데요. 문자 교육이 아닌 소리를 계속 감지할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어요.”
이연숙 원장은 권현용 씨와의 사이에 태영(상지대 한의대 1)·민석(공주고 3)군과 민지(홍성여고 1)양 등 2남 1녀를 두고 오늘도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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