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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스토리가 있는 보령 웅천 석재 단지

2017.03.20(월) 09:55:06 | 논두렁 리포터 (이메일주소:yunsangsu63@gmail.com
               	yunsangsu63@gmail.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스토리가있는보령웅천석재단지 1

보령에는 남포오석이 조선전기 벼루 생산의 전국 80퍼센트를 생산하였으며 남포 하면 벼루가 특산품이었다. 추사 김정희, 이율곡, 신사임당이 쓰던 벼루가 예산, 강릉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남포벼루임을 확인할수 있다. 돌 이야기를 하자면 중생대로 시간여행해야 한다.

스토리가있는보령웅천석재단지 2

중생대 백악기에는 홍성, 보령, 청양, 서천 지역이 호수였다고 한다. 연대는 2억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생대의 소철류의 식물이 탄화되고 변성과 압력을 받아 지금의 탄이 되었다. 그중에 가장 좋은 탄이 무연탄이다. 연탄이라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렇게 고운 입자가 굳어서 암석이 된 것을 쉘이라고 한다.

스토리가있는보령웅천석재단지 3

1억 년 전에 운석 충돌로 인한 공룡의 멸종과 더불어 지구의 지각변동 및 빙하기를 거쳐 오늘날 한반도의 차량 산맥의 한줄기인 성주산 일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다 보니 수평층이었던 석탄층이 수직 측으로 구조가 변경되어 갱도를 만들기에 수월하게 되었다. 그중에 무연탄은 우리에게 구공탄 즉 연탄으로 연료로써 8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스토리가있는보령웅천석재단지 4

남포 오석은 갯벌을 파면 까만 쉐일이 굳어져서 생긴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암과 사암이 변성 과정을 겪으면서 남포 오석으로 탄생했다. 땅속에 고구마처럼 덩어리로 존재한다. 가장 좋은 것을 청석이라 하여 지금의 용두해수욕장에서 나오는 돌을 최상급으로 친다. 용도는 왕릉이나 묘지석으로 사용되며 요즈음은 예술작품이나 글귀를 적는 비석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 개화공원에 가면 돌의 종류와 쓰임새를 알 수가 있다.

스토리가있는보령웅천석재단지 5

과거 웅천이 석재산업의 성지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지금도 그 명성이 자자하여 각종 시연회를 하며 옛날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고석산 장인이다. 무형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는 석수장이이다.지금은 기계로 대량생산이 가능하지만 옛날 망치와 정만으로 돌을 다루었었다. 작품으로 보려면 석재 단지 맞은편에 있는 돌문화 공원에 가면 쉽게 작품들을 감상할 수가 있다.

스토리가있는보령웅천석재단지 6

돌 가공하는 곳을 직접 가보니 소음이 장난이 아니다. 위험하여 가까이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위 사진은 돌가루가 언덕을 이루었다. 얼마나 많은 돌을 갈았을까?

스토리가있는보령웅천석재단지 7

거리에는 돌 작품들로 가득 차있어서 도로변까지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장례풍습이 있는 한은 계속해서 돌의 수요가 있을 것이다.석재 단지 맞은편에 돌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약속이 잡혀서 다음에 들르기로 하였다.돌아오는 길 석재 전시품을 감상하면서 웅천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웅천에서 바라다보이는 산들은 채석으로 산언저리까지 훼손되어 보기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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