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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고려시대 산적들 퇴치 위해 세워진 보호사찰

국도1호선 길목에 자리잡은 국보 제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2017.02.08(수) 15:03:16 | 마패 (이메일주소:faron@hanmail.net
               	faron@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천년전 고려시대에 창건된 봉선 홍경사터는 고려의 수도인 개성으로 가는 길목으로 상인들과 부자들의 재산을 노리는 도둑들이 들끓어 이를 막기 위하여 충남 천안시 성환읍에서 평택으로 가는 국도 1호선 길목에 세워진 보호 사찰이었다.

고려시대산적들퇴치위해세워진보호사찰 1

고려 태조의 여덟 번째 아들이었던 안종이 도둑들을 진압하고 상인들과 여행자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하여 봉선홍경사가 건립을 시작하였는데 홍경사 준공을 보지 못하고 안종이 서거하자 아들인 현종이 부왕의 유지를 받들어 완공하였다.

고려 왕족이자 부왕있던 안종의 유지를 받들어 현종이 형긍 득총 장림 등에게 홍경사 건축을 명하고 강민청 김등 등이 별감사로 감독하여 200여칸의 건물이 현종 12년 (1021년)에 완공되었다. 

고려 현종은 사찰 이름을 아버지를 그리고 그 덕을 알리기 위하여 봉선 홍경사 라고 명명하고 최충이 봉선홍경사의 기공부터 준공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봉선홍경사기를 짓고 백현례가 글을 써서 봉선홍경사 갈기비에 새겼다.

고려시대산적들퇴치위해세워진보호사찰 2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 국보 제7호로 지정된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봉선홍경사가 세워진 5년뒤인 고려 현종17년(1026년)에 세워졌는데 고려시대 해서체로는 제1급으로 손꼽힌다. 

갈비는 일반적인 석비보다 규모가 작은 비석을 부르는 명칭으로 봉선홍경사갈기비는 2.4m 높이로 보호각에 보호 되어 있는데 용의 머리 형상의 거북받침돌과 물고기의 지느러미같은 날개를 머리 양쪽에 새기고 머릿돌을 갖추고 있어 석비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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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선홍경사와 준공과 맞추어 서쪽에는 광연통화원 이라고 불리는 객관이 세워졌는데 80칸의 건물이 들어서고 마구간이 지어져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숙식과 말먹이를 제공하면서 안전을 보호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로 숭상되었기에 사찰이 정치 경제 사회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 절을 중심으로 시읍이 번성하기도 하였는데 고려 인종 8년 묘청의 진언으로 다라니를 외워 재난을 물리치기를 기원하는 법회인 아타파구신도량이 개최되었고 강종때에도 개최되어 이규보가 지은 도량문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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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명종7년(1177년) 망이의 난때 봉선 홍경사가 불타고 승려 10명이 죽임을 당하는 수난을 당하면서 사세가 기울어져 조선 초기에 절이 폐허가 되면서 절기능은 약해지고 숙박 기능만 남아 홍경원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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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산적들퇴치위해세워진보호사찰 6


충남 천안 문화재  
국보 제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3길 77-48
충남 천안시 성환읍 대홍리 319-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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