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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조선말의 의병장 최익현 선생묘

2016.11.08(화) 11:23:55 | 맛난음식 (이메일주소:linecplan@naver.com
               	linecpl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소고기로 유명한 광시에서 대흥 방향으로 가다보면 왼편에 익숙한 이름이 나옵니다.
면암 최익현이라는 조선말의 의병장이면서 근대 한국사에서 빠지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죠. 조선 말의 인물이면서 거대권력과 싸우면서 뒤로 물러서지 않았던 사람이기도하죠. 

서슬퍼런 권력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었을까요.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측근 들에 맞서 싸우다 관직에서 삭탈되고 제주도와 흑산도 유배길에 올랐던 사람 최익현은 당시 일제가 한반도를 지배하자 대마도에 유배 가게 되고 단식하다가 끝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최익현 묘소 안내
▲ 최익현 묘소 안내

항상 당당했던 사람 최익현이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원래  1907년 논산군 상월면에 세워졌으나 참배객이 많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멀리 떨어지 이곳 예산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면암 최익현 묘소
▲ 면암 최익현 묘소

면암 최익현 묘소를 아이들도 알기 쉽게 풀어서 써놓았습니다.  최익현의 흔적은 이곳 저곳에 있지만 묘소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구요. 

최익현 묘소 재실
▲ 최익현 묘소 재실

최익현 선생의 묘소가 있는 아래쪽에는 민가가 두채 있는데 이곳이 재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옛날 방식으로 지어진 한옥은 재실로 사용되었고 최익현 선생의 위패와 영정은 청양군의 모덕사에 모셔져 있습니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더군요. 제가 찾아가니까 몇몇 사람들이 밖으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최익현 묘
▲ 최익현 묘

조선말의 의병장이지만 묘소는 아주 소박한편입니다. 다른 의병장들의 묘소를 보면 생각외로 큰 편이었는데요. 최익현 묘소는 이정표가 없다면 아마 눈치채지 못할 듯 합니다.  

최익현 선생은 1895년 을미사변이 발발하고 단발령이 단행되자, 상소를 통해 시폐의 시정과 항일척사운동에 앞장섰으며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6년 74세의 고령으로 의병을 일으켜 진충보국(盡忠報國)하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적지 대마도(對馬島) 옥사에서 순국하였죠.   

재실 구조
▲ 재실 구조

재실은 조선시대 전통가옥 배치형태로 ‘ㄱ’자형의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 ㅡ’자형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건축구조나 양식적인 측면에서 조선후기의 건축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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