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307호 마애삼존불 알현의 혜택까지... 선조들의 호국혼 느끼며 행복한 답사
태안8경중 제1경 백화산(백화산성)을 아시나요?
태안8경은 제1경 백화산(백화산성)을 비롯해 제2경 안흥성, 제3경 안면송림, 제4경 만리포, 제5경 신두리사구, 제6경 가의도, 제7경 몽산해변, 제8경 꽃지해수욕장의 할미 할애비바위까지다.
그중 오늘 도민리포터가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제1경에 속하는 백화산, 그중에서도 백화산성((白華山城))이다.
태안8경중 하나로서 뿐 아니라 도민들께 백화산성의 존재를 알려드리고자 함이다.
충남도내에는 서산 해미읍성을 비롯해 공주 공산성, 부여 부소산성과 성흥산성, 천안 흑성산성, 예산 임존성 등 잘 알려진 성곽들이 몇곳 있다.
하지만 태안 백화산성의 존재에 대해서는 대개가 잘 모른다.
백화산성 역시 우리의 선조들이 나라를 방비하고 왜구들로부터 백성들을 지켜내기 위해 쌓았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고려시대에 축조한 탓에 워낙 장구한 세월이 흘러 비록 거의 다 허물어진 옛 흔적이지만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기에 도민리포터 코너에서라도 잘 알리고자 싶었다.
▲ 백화산성을 가기 위해선 이렇게 태을암 오르는 길을 먼저 지나야 한다.
▲ 태을암 대웅전
온화한 미소로 중생을 맞이하시는 삼존불. 오랜 시간을 묵묵히 견뎌 온 큰 바위에 새긴 삼존불상의 위엄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마애삼존불은 중앙의 본존불, 그리고 양쪽에는 협시보살이 있는데 당초 보물로 지정됐다가 뒤늦게 그 역사적 가치가 크다는게 판명되어 국보로 승격된거라 한다.
▲ 백화산성 오르는 길.
성벽의 축성 방식은 테뫼식 산성으로, 태안읍에 있는 관아와 가깝고 고려말 조선초 서남해안에 창궐했던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쌓았다. 원래 성벽은 백화산 정산부에 둘레 619m 정도로 쌓았으나 지금은 정상주변 약 100m내외의 성벽만이 남아 있다.
백화산은 해발 284m로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태안반도에서는 높은 봉우리 중의 하나로 봉우리 남쪽 아래로는 관아가 있던 태안읍과 천수만, 동쪽으로는 서산 지역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경치가 빼어난 태안반도 서해안, 북쪽으로는 태안읍 부근까지 연결된 가로림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려시대 산성은 조선시대에 거의 개축을 했기 때문에 당시의 본래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다. 조선시대에 한반도가 한덩어리가 되면서 아마도 국경이 비슷해져 그랬을것 같다.
반대로 삼국시대의 내륙 쪽에있던 산성들은, 조선시대에는 거의 쓸일이 없었기 때문에 폐성으로 남아있어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는것 아닐까 싶다.
석축은 잘 다음은 화강석으로 쌓았는데 성벽 한쪽에 이렇게 ‘쌍괴대’라고 석문(石文)이 씌어져 있다. 이 글은 1902년 태안군수 이기석이라는 분이 새긴 것인데 쌍쌍(雙) 홰나무괴(槐, 회화나무라고도 부름) 돈대대(臺)자를 써서 새긴 것이다.
내용상으로는 두 그루의 홰나무를 심어놓은 돈대란 뜻인데 회화나무는 오래전부터 길상목(吉祥木)으로 불려왔다. 이 나무를 심으면 큰 벼슬아치나 유명한 인물이 나온다 해서 집 주변, 사찰, 관아주변에 많이 심었다는데 글을 새긴 사람도 태안에서 그런 인물이 많이 나오기를 기원하면서 쓴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