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애국선열의 발자취를 찾아서...

2016.06.14(화) 23:29:06 | 계룡산 (이메일주소:ccy6645@hanmail.net
               	ccy664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친 위대한 애국선열들의 그 값진 희생을 높이 기리고 감사하며 그 숭고한 뜻을 받들어 나라사랑의 커다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난 4월 말 서산문화원 임원 17명은 아주 특별하고 의미있는 여행을 다녀왔다.

이국만리 타국에서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활동해 온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를 방문하고 홍커우공원과 신라시대 대문장가인 최치원선생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문화유적 답사를 서산문화원에서 기획한 것이다.

 

20여년전 백두산 촬영 여행시 상하이 임시정부와 홍커우공원을 다녀왔지만 이번 여행은 그 목적과 의미가 달라 나에게는 처음 방문처럼 설레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 대한민국 임시정부유적지 현판
 

애국선열의발자취를찾아서 1


애국선열의발자취를찾아서 2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수립되어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임시정부청사로 사용한 곳으로, 현대 중국 경제의 중심지이며 문화, 산업, 금융의 중심지로 눈부시게 발전하는 화려함속에서 너무나 대조적인 낡은 아파트 골목에  초라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한 때 철거의 위기에 놓였으나 한국과 중국정부의 노력으로 재개장되어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3층 건물에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사항과 그 당시 집무실과 임시정부 당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층 영상관

▲ 1층 영상관
 

김구선생 집무실

▲ 김구선생 집무실
 

부엌과 식탁

▲ 부엌과 식탁
 

전시관

▲ 전시관


전시관

▲ 전시관
 

전시관

▲ 전시관
 

역대 대통령 방명록

▲ 역대 대통령 방명록 

 

미로같이 좁은 계단과 열악한 구조, 나라잃은 설움과 독립을 위해 이 좁은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굴욕을 감내했을까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음날 윤봉길 의사가 일본 사라가와 대장을 살해한 곳으로 유명한 역사의 현장 루쉰공원(홍커우공원)을 찾았다.
 

홍커우 공원 입구

▲ 홍커우 공원 입구


기공 운동하는 사람들

▲ 기공운동하는 사람들


공원 곳곳에는 음악에 맞춰 기공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과 산책나온 사람들, 홍커우 공원은 과거의 아픈 역사를 잊은채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윤봉길의사 기념관 입구

▲ 윤봉길 의사 기념관 입구
 

윤봉길의사 업적비

▲ 윤봉길 의사 업적비
 

공원 한켠에 위치한 윤봉길의사 기념관 역시 초라하기 그지없다.

20여년전 찾았을 때는 아무런 기념물도 없었고 이 곳이 윤봉길 의사의 거사 장소라는 가이드의 설명 뿐이었다.

 

조그만 기념관에는 윤봉길 의사의 흉상이 모셔져 있고 윤 의사의 거사 자료와 생전 활동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흉상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전시장을 돌아 보았다.
 

흉상 앞에서 묵념

▲ 흉상 앞에서 묵념
 

전시장 내부

▲ 전시장 내부
 

애국선열의발자취를찾아서 3


1932년 12월19일 윤봉길의사 순국

▲ 1932년 12월19일 윤봉길의사 순국
 

기념관 앞의 윤의사 활동 자료

▲ 기념관 앞의 윤의사 활동 자료
 

윤봉길의사 기념관 앞에서 기념촬영

▲ 윤봉길의사 기념관 앞에서 기념촬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국무령이 조직한 한인애국단의 단원 윤봉길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히로히토 천황 탄신일(천장절) 기념 행사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의 주요 요인들을 암살하였다.

 

이 사건은 장제스 총통이 "우리 중국사람들도 하지 못한 일을 한 명의 조선 청년이 했다"고 감탄할 만큼 조선인의 항일 정신과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리는 사건이 되었다.

 

25살의 젊은 나이로 일제를 향해 주저없이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품었던 회중시계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상하이 홍커우공원 폭탄투척 거사를 준비한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는 폭탄 도시락를 건네 받으면서 김구 선생의 낡은 시계를 보며 “선생님, 제 시계와 바꿉시다. 제 것은 6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입니다. 저는 이제 한 시간 밖에 더 소용이 없습니다.”

시계를 바꿔 찬 김구선생은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후일 지하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거사를 성공시킨 윤봉길 의사의 애국애족 정신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해외여행을 떠난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유명한 문화유적, 맛있는 음식을 선호하고 택하게 된다.

하지만 한번쯤 애국 선열들의 발자취를 찾아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 감사하는 역사 현장의 여행을 감히 권하고 싶다.

 

 

계룡산님의 다른 기사 보기

[계룡산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