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딸의 결혼을 하루 앞둔 날의 일이다. 평소 애청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는데 문자메시지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자 담당 작가라며 전화가 왔다.
“결혼하는 따님에게 그러나 해준 게 없어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이 같은 내용을 방송코자 합니다. 잠시 전화 인터뷰가 가능할까요?” 그렇게 하여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작가는 이번엔 딸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그런 수순으로 이뤄진 인터뷰 내용이 어제 방송을 탔다. 다시듣기를 통해 청취하자니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핑~ 돌았다. 방송의 내용인즉슨 이렇다. 딸이 고교 2학년이던 지난 13년 전, 당시 딸은 열일곱의 생기발랄한 소녀였다.
반면 나는 만성가난에 찌든 비정규직의 출판물 세일즈맨이었다. 기본급은 커녕 건강보험료조차 지원이 없는, 오로지 판매수당만 받아서 생활해야 했던 실로 척박한 시절이었다. 따라서 항상 빈곤이 그림자로 따라붙었다.
그래서 아들에 이어 딸 역시 사교육은 시키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딸이 영어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러렴......” 이튿날 회사(개인)에서 가불을 하여 딸에게 주었다. 한데 딸은 사흘도 안 돼 그 돈을 도로 가지고 왔다.
“이게 웬 돈이냐?” “영어를 하루 들어봤는데 강사의 실력이 시시해서 안 다닌다고 환불받아 왔어요.” 그러나 13년이나 지난 이제 와서 밝혀진 사실인데 그건 당시 딸의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으로 드러났다.
딸은 내가 가불까지 하여 준 돈임을 알았다. 그래서 돈을 더 벌고자 동동거리느라 나의 퇴근시간이 더 늦어질 것을 우려하여 그처럼 의도적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다시듣기가 이어졌다.
“이번엔 홍경석 씨 따님의 사연을 들려드리겠습니다. - “아빠, 맞아요. 그때 학원 강의가 시시해서 못 듣겠다고 한 건 사실 거짓말이었어요. 아무튼 남들보다 두 배 더 노력한다는 각오로 공부한 덕분에 좋은 대학에 갔으니 된 거 아닌가요?
그리고 아빠는 제게 해준 게 없어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평소 제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열심히 사신 삶 자체가 저로선 크나큰 선물이자 제 인생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아빠에게서 배운 대로 저도 베풀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빠가 자랑스럽습니다!”- 아, 참 감동적이네요!”
이 대목에서 나는 참았던 눈물이 그예 수물수물 맺힐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는 경비원으로 일한다. 박봉이고 힘든 야근이 주근보다 더 많다. 그렇지만 아이들만 떠올리면 기운이 불끈 솟는다.
다이어트가 건강에 좋다는 건 다 아는 상식이다. 그래서 말인데 욕심도 다이어트를 하면 삶이 건강해진다. 13년 만에 밝혀진 어떤 진실 앞에서 나는 다시금 영락없는 딸바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