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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유생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천안의 3대 향교 '목천향교'

2016.01.12(화) 19:40:25 | 쭌 (이메일주소:blupi2000@naver.com
               	blupi200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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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는 공자와 우리나라 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받들며 유학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는 제향과 교육의 두 가지 기능을 담당하는 조선시대 지방 최고의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성균관이 대학에 해당하는 중앙 최고 교육기관이라면 향교는 초등교육기관이라 할 서당을 마친 유생들이 중등교육을 받는 지방 교육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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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기록을 살펴보면 천안 지역에 고려 시대 이전에 존재하였던 교육 기관은 문헌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조선시대 부터는 대표적인 교육기관인 향교, 서원, 서당 등의 교육 기관이 설립되어 학생들을 교육시킨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중 성균관의 규모를 모방하여 설치한 향교가 지방 교육의 대표적 역할을 하였는데요. 1군현 1향교의 원칙에 따라 오늘날 천안 지역에 설립된 대표적 관학 기관인 향교는 유량동에 위치한 천안 향교, 직산읍 군서리에 위치한 직산 향교 그리고 목천읍 교촌리에 위치한 목천향교가 있습니다. 이 세 곳의 향교 중 목천향교를 찾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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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목천향교는 전면에 강학 공간을 두고 후면에 묘당을 두는 전형적인 전학 후묘식의 배치를 하고 있는데요. 경사지에 위치한 목천향교는 홍살문을 지나 많은 계단을 오르면 그 내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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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동재 한 칸을 출입문으로 한 이 문을 들어서면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던 좁고 긴 강당인 명륜당을 볼 수 있는데 유생과 학생의 수가 많아서 였는지 다른 향교에 비해 더 큰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뒷마당을 지나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과 양무를 볼 수 있습니다.
대성전은 임진왜란 직후 지어졌는데 지금까지도 공자를 비롯해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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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앞에는 내삼문과 또 다시 높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그 계단을 올라 목천향교의 모습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생들이 학문을 익혔으나 임진왜란 후 피폐해진 향교의 건물은 보수되었으나 다시 학문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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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봄과 가을에 석전을 지내고 초하루와 보름에는 분향을 올리는 게 전부이지만 충청남도 기념물 제108호인 만큼 잘 보존되어 우리나라의 과거를 알 수 있는 많은 문화재들이 후손에게까지 잘 전해지길 바래 보았습니다.

천안 목천향교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교촌6길 7에 위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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