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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과유불급의 교훈

반면교사의 도둑, 술(酒)

2015.09.15(화) 06:21:57 | 홍경석 (이메일주소:casj007@naver.com
               	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그러니까 지난 1990년에 출간된 화제작으로 <호모 비불루스> (박석기 지음 / 학연사 펴냄) 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술에 얽힌 동서고금의 에피소드와 술에 관한 상식, 그리고 속설과 안주 등 술에 관한 모든 것을 재미있게 엮은 책이다.
 
‘술을 즐기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이 책은 흥미진진함이 남다른데 우선 그 재미있는 장면을 몇 개 살펴보자. 우선 <조선의 주당(酒黨) 10걸>이 눈에 콕 들어온다.
 
저자는 여기서 주당 10걸의 선정을 주량과 마시는 스타일, 스케일과 지구력에 더하여 평생 술을 즐기는 끈기와 아울러 사람을 감화시켜 주당 인구를 늘린 기여도 등을 그 기준으로 평가하였다고 했다.
 
여기에서 1위엔 서화담,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리었던 황진이가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2위엔 수주 변영로 교수가, 3위엔 조지훈 시인 겸 고대 교수가 올랐는데 그는 밤새 눈 한 번 붙이지 않고 통음을 해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고 한다.
 
4위엔 방랑시인 김삿갓이, 5위엔 생육신의 한 사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작가인 매월당 김시습이랬다. 6위엔 일생을 술로 벗 삼으며 봉건적인 권위에 저항하는 가운데 시문(詩文)으로서 인간미가 돋보이는 저서 <백호집>을 남겼다는 임제(林悌)이며 7위는 김동리(金東里) 선생이다.
 
8위는 임꺽정(林巨正)인데 신출귀몰의 의적으로 관가를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재물을 털면서도 유유히 한양에 나타나 술을 마셔댄 그를 두고 혹자는 “심장에 털 난 주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니 그 배짱이 실로 대단해 보였다.
 
9위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올랐다. 당시 막강한 세도가들을 의식하여 철저히 파락호(破落戶)로 위장해 술로써 야망을 숨기며 전의를 불태운 그의 지난날은 영화와 드라마로도 많이 소개된 바 있다.
 
마지막 10위엔 원효대사와 연산군, 마해송과 심연섭, 박종화 등이 같이 오르는데 이는 이들의 술 실력이 그야말로 막상막하였음의 방증이라 하겠다. 조선의 주당 10걸 중 당당히 3위에 오른 조지훈은 술을 마시는 데도 엄연히 등급이 있다며 술꾼의 등급을 바둑에 비유한 글을 썼다.
 
이런 관점에서 40년 동안 술을 마셔댄 나는 이제 겨우 2단인 주객(酒客), 즉 술의 맛에 반하기 시작하여 퇴근 무렵 술친구를 기다리는 사람일 따름이다. 마실 때는 천국이지만 깰 때는 지옥인 것이 바로 술이다. 이를 잘 알면서도 사람은 술을 마신다.
 
그제와 어제가 꼭 그랬다. 거푸 쉬는 날이라고 작심하고 소주를 엄청 마셨다. 덕분(?)에 비몽사몽으로 정신을 못 차렸다. 겨우 심신을 추슬러 야근을 나갔으나 고생이 막심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참회의 마음으로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여 쉬는 오늘은 경건한 자세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곁에는 라디오를 틀어놓았는데 애청자들의 문자 소개 내용은 지난 주말에 성묘(省墓)를 다녀왔다는 것이 주를 이뤘다.
 
수년 전 선친의 산소를 이장하면서 수목장으로 바꾸었다. 따라서 이젠 성묘를 할 일도 없어졌다. 그래서 서운한데 아무튼 선친께서 저 세상으로 가신지도 어언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선친께선 생전에 거의 매일 술을 드셨다.
 
가장이라는 완장조차 내동댕이치고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술만 탐닉하셨다. 그로 말미암아 조지훈 선생의 표현대로라면 폐주(廢酒), 즉 술로 말미암아 저 세상으로 간 사람이 되셨다. 선친께선 또한 그 술을 과도하게 드심으로 하여 이 아들을 중학교에도 진학치 못 하게 하셨다.
 
숙부님께서 두 번이나 주신 나의 중학교 등록금을 술과 바꿔 드신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나의 미래를 훔쳐간 도둑은 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했기에 나는 애초 술을 아예 안 마시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나의 의지가 약한 탓도 있었지만 너무나 나를 속이는 이 풍진 세상에 분개하여 결국엔 나도 입에 술을 대게 되었다. 그렇긴 하되 이튿날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까지 마시는 일은 없다.
 
그렇게 마시는 술은 직장생활의 종식 뿐 아니라 인간관계마저 중단케 하는 단초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아버님을 너무도 일찍 타계하게 만든 주범은 단연코 술이다. 그렇지만 그 술은 반면교사(反面敎師)의 도둑이기도 했다.
 
중학교조차 보내주지 않은 야속한 아버지였기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곤 내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 ‘맹모삼천지교’의 수십 배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둘 다 원하는 대학을 마칠 수 있었고 현재 근무 중인 직장 역시 안정적이어서 걱정이 없다.
 
선친께서도 남들처럼 아내(나로선 어머니)가 곁에 있었다면 그처럼 속절없이 일찍 저 세상으로 가시진 않았을 것이었다. 또한 이순신과 최영 장군처럼 천의무봉형(天衣無縫型)으로 하루 종일 마셔도 끄떡 안 할 정도로 술이 센 분이었다면 지금껏 건강하셨으리라!
 
다시금 선친의 이야기를 쓰자니 마음이 짠해지면서 미뤘던 술이 빼꼼 인사를 건네 온다. “또 한 잔 마실 테유?” “아니다. 당분간은 멀리 하련다. 지금도 속이 아파 죽겠다!” 뭐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술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 가장 적나라하게 대입(代入)되는 부분이지 싶다.
 
 

최근 있은 집안 잔치. 술은 언제나 가깝지만 멀리 해야 하는 경우도 잦습니다.

▲ 최근 있은 집안 잔치. 술은 언제나 가깝지만 멀리 해야 하는 경우도 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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