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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숙,명재종가의 숨겨진 이야기 밝혀

‘어머니, 그리고 종가의 추억’ 통해 종가집 삶 토로

2015.05.28(목) 22:29:18 | 써니 (이메일주소:sun0910@hanmail.net
               	sun0910@hanmail.net)

26일 ‘일인일색 화요사랑방’이 충현서원에서 열리고 있다.

▲ 26일 ‘일인일색 화요사랑방’이 충현서원에서 열리고 있다.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이 주관하는 ‘일인일색 화요사랑방’이 26일 오후 7시 공주시 반포면 충현서원에서 열렸다.

이종태 전 KBS아나운서와 이상균 연구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일인일색 사랑방손님은 논산시 노성면 명재 윤증가 후손인 윤경숙 선생님의 ‘어머니, 그리고 종가의 추억’ 에 대한 이야기와 추정현 연주자의 ‘가야금 향기에 취하다’ 로 펼쳐졌다.

윤경숙 선생님

▲ 윤경숙 선생님


50여명의 참석자들은 이날 일인일색 사랑방손님인 윤경숙 선생님이 소곤소곤 들려주는 명재 윤증 종가집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윤경숙 선생님은 “종부로 시집온 어머니 양창호 여사(97세)는 19세에 시집 왔다”며 “그때 시어머니는 32세, 시할머니는 37세였으며, 증조할머니가 손을 보고 평가하여 혼인했고, 시집올 때 멍석을 깔아서 맞이해 주었다” 고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시집와 마루에서 도포입고, 갓 쓰신 당내 대소가 어른들께 폐백 시 절만 70번을 올렸고, 집안의 사랑어른도 안채를 들어올 때는 두루마기를 걸치고 흡사 손님처럼 격식을 차렸다”며 “당시 부부간에도 겸상은 생각하지도 못했으며, 합방도 사랑채에서 전갈이 있는 날만 가능했다”고 밝혔다.

또 “시집을 온 후 40세가 될 때까지 더운물 세수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으며, 삼복더위에도 발끝이 안보이게 내려오는 적삼을 받쳐 입고 통통한 솜버선을 신고 지내야 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종가 집은 1년에 쓰는 쌀 양도 300섬으로, 사랑에 손님이 들면 ‘사람이 왔으니 상을 차려 오너라’라는 전갈이 오고, 손님의 지체를 보아 외상인지, 겸상인지, 술상을 차릴 것인지를 따져 대접했으며, 시조부께선 안채로 나와 상을 받으셨는데, 그럴 때면 여인 3대가 모두 나와 식사시중을 들었다”고 말했다.

윤경숙 선생님은 그리고 “조상대대로 ‘사치를 말라’는 게 으뜸가는 가훈으로, 고기는 즐기지 못하게 했고, 국물만 먹었다”며 “조상제사도 분수에 넘치게 지내면 가세가 곤란해져 불효라는 훈계가 있어 1년에 9위 제사는 모두 3색 실과와 포, 적, 나물 3가지만 놓고 지냈다”고 밝혔다.

또 “가훈의 영향으로 사랑채 어른도 30세 이전에는 비단옷을 못 입었고, 여인 3대가 각기 신랑 옷을 밤새 바느질을 해서 옷을 지어 입었다” 고 전했다.

윤 선생님은 “어릴 땐 늘 배가 고팠다. 공주여중에 다닐 때 방학 때면 집에 와 있었는데, 당시 식구가 줄었어도 1주일에 100kg의 쌀이 들 정도였다”며 “동네 분들이 2~3명이 더 오시는 날에는 어머니께서 김치와 멸치를 넣고 쌀을 조절해 음식을 만드셨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 미꾸라지 같은 큰 멸치 비린내로 투정이라도 부릴라치면 어머니는 ‘너 내일 공주로 가라. 나는 너 같은 아이 열, 백이라도 난 그 분들 하나와도 안 바꾼다’라고 하셨다”고 밝혔다.

윤 선생님은 “내가 이를 서러워하면, 어머니는 내게 ‘없는 사람들 봐 줄지 모른다’ 고 나무라셨다”며 “그때는 그게 속이 아렸는데, 지금 머리색깔이 변하고 보니 우리 어머니가 정말 잘 하셨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 고백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나갈 때에도 ‘빈손으로 나가면 서운하다’ 시며 베푸는 것을 좋아 하셨고, 서울 외가에 가서도 올 때에는 헌 와이셔츠 등을 챙겨와 수선하여 고쳐 입거나, 마을사람들에게 나눠 주셨다”며 “어머니는 늘 말씀으로 하지 않고 우리에게 가르친 것 같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우리 집이 형편이 좋을 때는 새우젓, 조기젓을 많이 담아놓고 먹었는데, 동네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때면 연잎이나 토란잎에 담아 이를 퍼갔다”며 “그러면 어머니는 이를 나무라지 않고 얼른 피해 주었고, 그래서 6. 25때에도 무사히 지낸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윤경숙 선생님은 “종가 집 음식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고, 우리는 검소하기보다 빈약했다”며 ”종가음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전독간장인데, 간장 담는 시기가 중요하며, 가장 호사스럽게 먹은 음식이 간장게장이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또 “봄, 가을이면 손님들이 덮은 이불을 다 모아 빠는 빨래잔치를 열게 되는데, 이불에서 뜯은 실을 머리카락 땋듯 땋아 잘 간수해 딸들에게 봉숭아물을 들여 줄 때 쓰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증조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생신잔치를 하지 않으셨고, 생신날이면 남동생을 시켜 제일 어려운 서너 집을 사람들을 불러 밀가루 포대에 쌀을 부어 주셨다” 며 “그런걸 보아서인지 내 것이라고 해서 나만 잘 먹고 사는 사람을 보면 조금 업신여겨진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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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숙 선생님은 이날 어머니 양창호 여사에게 전하는 편지글을 낭독,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이상균 연구원은 “충남역사박물관에 윤증가문에서 기탁한 유물들이 1200점으로, 이는 우리나라 종가 집 중 최고 많이 기증한 것“ 이라고 밝혔다.

윤경숙 선생님은 1949년 명재 종택에서 태어나 어릴 때 논산 노성면 교촌리에서 종가에서 생활했고, 노성초, 공주여중, 공주사대 부고를 다녔으며, 결혼 후 주부로 생활하다 50대 이후부터 춘추서당 활동을 통해 청소년 교육을 했다.

요즘엔 안동국학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이야기 할머니로 유아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다.

추정현 연주자가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

▲ 추정현 연주자가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


이날 가야금을 연주해 준 추정현 선생님은 광주예술고등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올해 김해 전국가야금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편 명재윤증선생은 조선후기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으로, 여러 차례 임금의 부름을 받았지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수양에 힘쓰고, 후학을 양성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오는 6월 13일에는 ‘충남교향악단과 함께 하는 서원, 클래식을 만나다’를 열 예정이며, 6월 30일 ‘일인일색 화요사랑방’에는 화가 임립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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