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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뉴스

[사람향기]여행

2015.04.02(목) 03:24:17 | 충남포커스 (이메일주소:jmhshr@hanmail.net
               	jmhshr@hanmail.net)

지난 주말은 맘 맞는 서너 가정이 함께 1박2일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두 가정씩 차를 나눠 타고 가면서 사는 것이 바빠서 한 동네 살아도 서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보따리도 맘껏 풀어놓으며 유쾌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봄 풍경은 꼭 발로 밟아보지 않아도, 내려서 만져보지 않아도 감동 그 자체입니다. 대한민국 작은 땅덩어리도 이동할 때마다 풍경이 달라집니다. 우리 서해안지역은 그냥 활짝 핀 산수유, 진달래꽃만 발견해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게 되는데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왠만한 꽃은 그냥 ‘여기도 폈구나! 저기도 폈네!’ 감동의 내성이 생기고 말지만 행복한 기분만큼은 숨길 수 없습니다. 여행 내내 찍은 사진 쭉 훑어보니 사진마다 어김없이 입이 쩍 벌어져 있는 걸 보면 그렇습니다.

다들 직장생활 하느라 시간을 내고 맞추는 일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양보하고 저렇게 양보해서 네 가정이 함께 떠난 여행.

모름지기 여행이라면 한 삼십분이라도 좋으니 비행기라도 슬쩍 한번 타줘야 여행가나부다 싶은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태어나 처음 가보는 문경새재니, 안동하회마을은 정말 거짓말 한 점 보탬 없이 그동안 다녀본 해외 어떤 곳보다 좋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맨발로 걷고 싶은 충동이 일만큼 참 잘 조성된 길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조화를 이루는 문경새재는 어느 때든 기회가 된다면 또 찾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듭니다. 과거시험을 보려는 양반들이 한양을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했다는 문경새재. 한양을 향해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올 만 한 문제 써머리 해놓은 서적이라도 펼쳐들고 걸었을까. 산적이라도 만나 다 뺏기고 나서도 목적지를 향해 가던 길 계속 갔을까. 나약한 마마보이 양반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는지.
이런 저런 엉뚱한 생각들을 하면서 걷는 것 자체가 힐링입니다.

문경새재 구석구석을 누비고 안동하회마을에서 하룻밤 묵는데, 예약을 안 한 탓에 하인들이 자는 문간방이 일행에게 배정되었습니다. 이 방에서 하인들 밤이 늦도록 새끼줄 꼬았겠구나 싶습니다. 같은 집인데 미리 예약한 손님들이 본채에서 씻으러 나오는데 그분들이 안방마님으로 보입니다. 어쩐지 위엄도 있어 보입니다. 순간 향단이가 된 기분입니다. 왠지 허리 굽신거리며 세수대야에 물 받아다가 씻겨드리고, 볏짚 가져다가 새끼줄이라도 꼬고, 마당이라도 살살 쓸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룻밤 향단이가 된 기분 그닥 나쁘지 않습니다.

날이 밝아 마을을 돌아보는데 중국말로 설명해대는 가이드를 따라 수 십 명이 줄을 지어 다니며 감동하는 모습을 볼 때면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제아무리 오지랖이 넓어도 중국말은 배운 적 없어 말한디 못 건넵니다.

노랑머리, 작은 얼굴, 그런데 몸은 글래머러스한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몰려다니며 감동하면서 곳곳을 사진에 담는 모습을 볼 때는 그나마 좀 배웠다고 어디서 왔느냐고 괜시리 말붙여 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관광하면서 도대체 어떤 느낌을 갖는지 참 궁금해 죽겠는데 못 물어봅니다. 어떻게 질문은 한다고 해도 말 많은 이분들이 답을 장황하게 해댈까봐,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미리 겁먹고 인터뷰는 못했습니다. 이럴 때는 참 많은 생각이 교차합니다. ‘학창시절에 회화공부 좀 더 열심히 할걸‘부터 해서 ’학교 가느라 못 따라온 큰아들눔이 있었더라면 도움 좀 받을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까지.

비록 유창한 인터뷰는 못했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살펴보니 굳이 인터뷰 하지 않아도 무슨 기분인지, 어떤 느낌을 갖는지 느껴집니다. 사람 마음은, 보는 눈은 다 똑같을테니까요.

낙동강이 휘돌아 나가는 하회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보니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서 얼마나 자주 들으셨는지 외워진 그 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낙동강 강바람에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군인 간 오라버니를 대신해 늙은 부모님을 부양하느라 남자도 힘든 노를 저었을 처녀뱃사공의 애환이 적잖이 빠르게 흐르는 강물 속에 녹아져 있는 듯 합니다.

향단이도 되어보고, 뱃사공도 되어보고, 기와 담장 너머로 뻐꾸기 소리 내가며 몰래 연애하던 뭇 선남선녀도 되어보면서 요즘 해가 길어졌다는데 하루해가 짧기만 합니다.

옛추억을 되살리며 하회마을을 돌아보시는 어르신들이 유독 많습니다.
“할머니, 다리 안 아프세요? 저도 지금 무릎이 시큰거리고 아픈데...”
“젊어서 많이 다녀. 늙어지면 여유롭게 여행이나 다니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일만 열심히 했는데 잘못 생각했어. 늙으면 다리가 아파서 못 다녀. 현실이야.”

할머니의 말씀에서 여행은 늙어져 다니는 것 아니고, 내 발로 걸어다닐 수 있을 때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교훈을 얻고 돌아오는 길. 집 찾아 서쪽으로 향해 달리다보니 또 하나의 바다가 하늘 위에 펼쳐진 듯 화려한 석양이 자꾸만 자꾸만 이어집니다. 서해안에 사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혜지 싶습니다.

다리는 쑥쑥 아리고, 허리도 아프고, 뒷목도 뻣뻣한 것 사실이지만 참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여행, 굳이 호텔방이 아니어도, 따뜻한 물이 펑펑 나오지 않고, 새벽 화장실을 갈 때 남편을 불러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어도 좋습니다. 돌아온 날 잠자리에서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며 행복한 웃음을 미리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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