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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향기]어머니의 도시락

2014.11.27(목) 03:30:26 | 충남포커스 (이메일주소:jmhshr@hanmail.net
               	jmhshr@hanmail.net)

딸그락 소리마저 들리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어머니께서는 6개의 도시락을 싸 차곡차곡 쌓아 올려놓으시고 새벽장사를 가셨습니다. 부지런한 어머니께서 뿌리고 가꿔 거둔 야채를 모두 먹을 수 없으니 읍내에 내다 파시는 것으로 할머니께 소고기도 사다드리고, 친구들이 모조리 고무신 신을 때 따각 따각 소리가 나는 예쁜 구두도 얻어 신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서울로 상경해 미처 자리 잡지 못한 작은집 사촌 언니 둘까지 맡아 도시락 싸고 교복을 빨아 입혀가면서 학교에 보내면서도 ‘내 자식도 많은데....’ 하고 불평할 법도 한데 단 한 번도 불평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불평하는 것은 도리어 철없는 자식들이었습니다.

“엄마, 왜 사촌 언니 도시락에만 있고 내 도시락에는 후라이가 없어? 치~”
설명할 겨를도 없이 삐져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언니를 바라보고 서 계시던 어머니의 눈이 촉촉해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리 없는 철부지들은 한 패거리가 되어 어머니를 원망하며 학교를 향했습니다.

큰엄마가 싸준 도시락 까서 친구들 앞에 보일 때 기죽지 말라고 사촌 언니들 도시락에만 올려준 후라이. 언니도 나도 그때는 어려서 내 자식 도시락에 후라이 냉큼 올려주고 싶은 그 마음 왜 없었겠는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살림이 넉넉지 못해 그런 것을.

지금 생각해보니 매일 어머니께서 정성들여 싸주신 도시락을 대하면서 단 한 번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엄마, 국물이 흘러서 책이 젖었다구요.”
“맨날 똑같은 반찬 지겨워요.”
철없는 자식들에게 도시락은 도리어 불평의 대상이었습니다.

“엄마, 우리학교 급식 담당하는 아주머니들이 비정규직이신데 처우개선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하신다네요. 그래서 목요일, 금요일 이틀간 도시락을 싸오라고 합니다.”

“뭣이라?~”

늦둥이 녀석 어쩌다 한 번 떠나는 현장체험 학습 때마다 싸야 하는 도시락에 대한 부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큰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이 녀석 등치만큼이나 큰 부담이 훅~ 밀려왔습니다.

날씨도 찬데 따뜻한 도시락을 싸줘야 하는 건가. 여기 저기 보온도시락을 구비하고 있는 집을 수소문 해봤지만 있을 리 없습니다. 그렇다고 두 어번을 위해 보온도시락을 산다는 것은 낭비입니다. 그래서 집안 여기 저기 파헤쳐 커피 사고 덤으로 달려있던 그 도시락을 어렵게 찾아냈습니다. 언젠가는 사용할 날이 오겠지 했는데 드디어 진가를 발휘할 때가 왔습니다. 고등학생 도시락 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지만 누굴 닮았는지 소탈하기 그지없는 녀석이 군소리 없이 통과시켜 줍니다.

D데이 이틀 전 부터 엄마들 여기저기서 웅성거립니다.

“우리 딸은 김밥 싸준다고 했더니 ‘뭐, 소풍가는 줄 아시느냐’면서 토를 달아서 미워서 대충 싸줄라구요.”

“뭘 싸줘야 할까 지금 메모를 해보고 있어요. 우리 애가 좋아하는 치킨까지 준비해서 싸 줄려면 새벽에 일어나야겠더라구요. 휴~”

“다행이에요. 이틀이어서. 이틀만 일찍 일어나자 각오하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 어머니는 오전수업만 하던 토요일을 제외한 매일을 각오하셨겠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매일 밭을 매고, 추수하고, 때로는 야채를 장에 내다 팔고, 과실나무마다 열매를 거둬들이는 바쁜 일상 중에도 내일은 또 어떤 반찬을 싸줘야 할까 고민하셨겠습니다.

나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반찬을 뭘 싸야 할지 적어봅니다. 권사님이 담아준 깍두기, 멸치볶음, 이 녀석이 좋아하는 오리훈제, 과일...., 다음날은 똑같은 메뉴 싸줄 수 없으니 닭을 삶아 무쳐 담고,.........

그래도 대략 적어놓고 보니 막막하게 만 느껴졌던 이 도시락 싸는 부담이 덜어졌습니다.

드디어 D데이. 평상시 같으면 이 녀석이 다녀오겠다는 인사에 겨우 이불 속에서 답만 해주던 엄마가 새벽 4시에 요란한 알람소리 도움 없이도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그놈의 책임감.......

모두가 고요하게 잠든 새벽, 딸그락 거리는 소리에 식구들 잠 깰까봐 조심조심 움직입니다. 도시락을 싸면서 그냥 눈물이 핑 돕니다. 우리 어머니도 할머니, 아버지, 우리들 잠 깰까봐 차디찬 부엌에서 그렇게 조심했겠습니다.

한참 먹을 나이에 도시락이 작지는 않은지, 찬 밥 먹으면서 체하면 어쩌나, 퍽퍽하면 어쩌나, 제 아무리 좋아하는 훈제도 식으면 맛없을텐데........
우리 어머니도 꼭 같은 마음이셨겠습니다.

“오늘 도시락 어땠어?”

“좋았어요. 엄마, 그런데 밥 양에 비해서 반찬이 부족했어요. 괜찮아요. 친구들이랑 함께 먹어서 넉넉했어요. 헤헤.”
이렇게 답해주는 녀석이 고맙습니다. 엄마보다 백배 낫습니다. 그때 나였다면 분명히 투덜거렸을테니까요.


금요일, 두 번째 도시락은 부족했다는 반찬을 넉넉히 준비해 싸 손에 쥐어 보내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헐~ 도시락 하나 싸는데도 오늘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당게요.
엄마는 매일 도시락 대 여섯 개씩 쌈서 얼마나 힘드셨으까이.”

“그런 것이 뭣이 힘들어. 힘들 것도 참말로 없든갑다.”

김칫국물이 책이랑 노트를 적셔 때로는 참 난감했던 어머니의 도시락.
고기반찬도, 후라이 하나도 없는 참 소박하디 소박한 내 어머니의 도시락을 까먹던 일이 이제 고스란히 추억이 되었습니다.

“엄마, 우리 옆반에서는 엄청 큰 고무다라에다가 반 전체 아이들이 가져온 도시락을 넣고 고추장을 넣어서 비벼 먹더라구요. 재미있어 보였어요.”

비정규직 파업으로 인한 이틀간의 도시락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없을 뻔 한 추억을 만들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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