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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독립기념관이 왜 천안 흑성산 아래에 건립됐는지 아시는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국내 사진찍기 좋은 곳 25선, 금계포란형의 흑성산에 올라

2014.10.15(수) 16:02:42 | 오선진 (이메일주소:dhtjswls17@hanmail.net
               	dhtjswls1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위도 37도47분, 경도 127도 12분, 고도 조망점 454, 해발고도 519m.
이는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에 자리잡고 우뚝 솟아있는 ‘흑성산’의 지리적 표시다.
 

독립기념관이왜천안흑성산아래에건립됐는지아시는분 1


흑성산을 취재한 이유는 지난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해 생태, 문화, 역사적 자원이 풍부하고 경관이 우수한 지역을 관광 명소화하는‘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국내지역 25곳을 선정 지역을 최종 선정했는데 당시에 이 흑성산이 충청남도에서는 보령시의 보령호수와 함께 단 두곳만 뽑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흑성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볼때 서울에서는 외청룡이 되며‘금계포란형’의 명당 길지로 알려져 다름 아닌 독립기념관이 이 산을 올려다 보며 지어지게 된 계기가 된 곳이라는 사실.
 
독립기념관 이야기는 뒤에서 하기로 하고 산부터 둘러보자.
 

흑성산성

▲ 흑성산성


독립기념관이왜천안흑성산아래에건립됐는지아시는분 2



성에서 바라본 중계탑

▲ 성에서 바라본 중계탑
 

독립기념관이왜천안흑성산아래에건립됐는지아시는분 3


독립기념관이왜천안흑성산아래에건립됐는지아시는분 4


흑성산 이름은 본래 검은성이라 불렀다고 한다. 검자에는 거룩하고 신성하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 큰 산을 말한다.
그러나 소리 나는 대로 검은색을 한자화 한 것이 오늘날 흑성산이 된 것이라는 설도 있고, 또한 산 정상에 올라가면 성벽이나 바닥이 검은 돌로 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흑성산에는 산성이 함께 만들어져 있다. 당연히 외침을 막고자 축성했을터.
복원된 성루와 흑성문이 있고 산 정상에 포토존이 있어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다.
 
목천면 서리에서 산 정상까지 군용도로를 개설해 놓아 흑성산성까지 차량으로 편하게 갈 수 있다.
 
 

독립기념관이왜천안흑성산아래에건립됐는지아시는분 5


 

독립기념관이왜천안흑성산아래에건립됐는지아시는분 6


 

성곽 너머 공심돈이 보인다

▲ 성곽 너머 공심돈이 보인다


산 위에 축조된 성은 조선시대 목천현의 서쪽, 험하고 가파른 산 정상에 만든 석축산성으로 흑성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다.
성의 둘레가 570m로 본래 모습을 찾기는 힘들지만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성벽의 높이가 6척이며 가운데는 우물이 하나 있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이 지역은 풍수지리상 서울에서 외청룡이 되며‘금계포란형’의 명당 길지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연유로 해서 흑성산성 바로 아래에 독립기념관이 건립돼 있다.
 
흑성산은 남쪽으로 뻗은 차령산맥 줄기이면서 구릉성 지형이다. 북쪽으로는 태조봉, 남쪽으로 백운산과 취암산 등이 있고 서쪽은 아홉싸리고개와 유랑리고개, 그리고 장고개 등이 있는데 이들 고개와 산 서쪽 기슭의 승척골은 매우 아늑하여 전쟁 때에는 피난처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여러 지형적 조건은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태의 최고 길지라 일컫는‘금계포란형’으로서 오늘날 독립기념관도 그런 풍수적 특성을 감안해 이곳에 지어진 것이다.
 
이곳은 또한‘좌우동천승적지’라고도 불렀다.
좌우동천승적지란 석천리와 지산리의 승적골을 말하는데 석천리의 승적골은 5목(덜목, 제목, 칙목, 사리목, 돌목)의 사이에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 있기 때문이며 지산리의 승적골 역시 매우 아늑하여 예로부터 피난처로 알려져 왔다.
 
 

산자락 아래로 보이는 독립기념관

▲ 산자락 아래로 보이는 독립기념관


또한 이곳 산자락 아래에 독립기념관이 들어서게 된 배경과 관련해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비밀의 문’에 나오는 어사 박문수의 일화가 전해진다.
 
영조때 암행어사였던 박문수가 죽자 그의 묘소를 지금의 독립기념관자리에 정했는데 이때 어느 유명한 풍수가가 나타나 이 곳은 앞으로 200~300년이 지난 후 나라에서 요긴하게 쓰일 땅이므로 그때 가면 이장(移葬 : 묘를 옮겨 쓰는 일)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길터이니 아예 십여리 동쪽으로 묘터를 잡으라고 일러줬다고 한다.
 
그래서 박문수의 묘는 현재 북면쪽의 은석산에 자리잡고 있다.
 
 

노대

▲ 노대


흑성문에 들어서면 우측에는 성밖의 사정을 성안의 군사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노대가 서있다.
 
 

독립기념관이왜천안흑성산아래에건립됐는지아시는분 7


 

독립기념관이왜천안흑성산아래에건립됐는지아시는분 8


중계탑 아래 계단을 올라 사주문에 들어서면 천안시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쌍안경과 누각이 지어져 있다.
산 정상이라 바람이 거세고 구름이 끼어 청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천안 시내를 조망할 수 있어 좋았다.
 
 

공심돈

▲ 단풍잎 사이로 보이는 공심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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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홍보관에서 내려오면 공심돈을 맞는다. 이곳도 적의 동정을 살피는 일종의 망루로서 수비와 공격을 겸할 수 있도록 설계 된 것이다.
참으로 많은 외침을 받아 지난한 역사를 간직한 세월의 흐름이 여실히 드러난다.
 
천안에서 사진 찍기 좋은 곳이면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위국 헌신하신 선열들을 모신 독립기념관 자리가 있기까지의 중요한 풍수지리적 특징까지 갖추고 있는 흑성산과 흑성산성.
 
파란 하늘에 날씨가 좋은 날 올라 가서 민족의 얼과 염원이 담긴 독립기념관을 내려다 보는것도 좋은 추억여행이 될수 있을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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