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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극심한 가뭄때 초월적 존재에 비를 구원했던 전통 기우제

충남무형문화재 제 32호 금산군 부리면 평촌리의 ‘농바우끄시기’

2014.10.06(월) 12:38:25 | 남준희 (이메일주소:skawnsgml29@hanmail.net
               	skawnsgml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천수답이라는 말이 사라졌습니다. 하늘에서 비를 뿌려줘야만 농사를 지을수 있는 것을 가리켜 천수답 논이라 말했고, 그런 말이 나온 것은 가뭄이 닥쳤을때 물을 댈 대책이 없던 70년대 초반까지의 일이었죠.

하지만 본격적인 새마을 운동이 일어난 70년대 이후 천수답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바둑판처럼 깔린 수로에 양수기와 지하수까지 끌어 올려 농사를 짓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천수답 논에 가뭄이 닥쳤을때 우리 조상님네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기우제(祈雨祭)를 지냈습니다. 말 그대로 하느님께 ‘비좀 뿌려주세요’라며 제사를 지낸거죠.
 

농바우끄시기 전수관

▲ 농바우끄시기 전수관


충남 금산에는 이런 기우제가 ‘농바우끄시기’(충남무형문화재 제 32호. 2000년9월20일 지정)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소중하게 전래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우제 이름이 왜 농바우끄시기?
 
예전에 두 부인을 둔 장수가 있었는데, 전쟁을 하고 집에 돌아오자 장수의 갑옷을 놓고 두 부인이 싸움을 했답니다.

이를 보고 화가 난 장수는 갑옷을 바위로 된 단단한 농 속에 넣고 다시는 꺼내지 못하도록 뒤집어 놓았는데, 그 뒤로 날이 가물면 아녀자들이 힘을 모아 농바우(바위를 바우라고 불렀음)를 끌어 내리려고 줄을 당겼다고 합니다.

만약에 이 농바우가 밑으로 떨어지면 천지개벽을 한다고 믿었으므로 하느님이 이를 보고 농바우가 밑으로 구르기 전에 비를 내려준다고 했다네요.
 
무엇을 ‘끌다’라고 할때 충청도 사투리는 ‘끌다’를 ‘끄시다’고 표현합니다. 지금도 시골에서 어르신들은 곧잘 끄신다는 말을 쓰십니다.
그래서 농바우 끌기가 농바우끄시기가 된 것입니다.
 
농바우는 어제리 시루봉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천연바위입니다. 크기는 가로 3.7m, 세로2.7m. 거대한 바위벼랑 위에 농바우가 당기면 떨어질듯이 놓여있습니다.
 
이것이 모티브가 되어 그 후로는 비가 오지 않는 가뭄이 닥칠때마다 이곳 금산군 부리면 어재마을을 중심으로 하여 인근 마을은 물론 제원면 일대까지 여러 마을이 모여 농바우끄시기 기우제를 지낸거라 합니다.
 
농바우 끄시기 행사를 오래전 역사를 더듬어 가듯 흑백 사진으로 볼까요?
 

극심한가뭄때초월적존재에비를구원했던전통기우제 1


먼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농바우를 끌어 당길 굵은 동아줄을 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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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게 꼬아 낸 동아줄을 들고 흥겨운 타령을 부르며 행사장으로 들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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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농바우끄시기 행사를 시작하기 전, 행사를 잘 치르도록 해달라는 산신제를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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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동시에 한쪽에선 행사의 신성성을 지키기 위해 금줄을 동시에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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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대문 앞에 빨간 황토를 고루 뿌립니다. 이유는 이것이 피를 상징하기 때문에 잡귀를 막는다는 주술적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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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비를 내려 주소서”
마을 부녀자들이 모여 비를 뿌려 달라는 간곡한 청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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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본격적인 줄 끄시기 행사를 시작합니다. 모든 부녀자들이 다 나와서 짚으로 꼰 동아줄을 끌어 당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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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바우 끄시기 산제가 끝나면 다같이 선소리와 받음소리로 구성지게 흥겨운 풍장을 치며 한바탕 신나게 놀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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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 농바우 아래 흐르는 계곡의 물에 떼지어 들어갑니다. 알몸으로 날궂이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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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 지금 개울에서 어린아이들처럼 물놀이를 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부녀자들이 옷 벗고 개울에서 물장구 치며 노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늘은 부녀자들이 하는 짓을 보고 너무 상스러워 빨리 옷 입고 들어가라며 비를 내린다는 것입니다. 재미있고 신기하죠.
 
농바우끄시기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부녀자들이 주관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극심한 가뭄이 있을 때만 행했다는 것이죠.
당시 ‘남존여비사상’이나 조신함이 미덕이었던 당대의 풍습에서 볼때 여성이 주관하는 민간행사는 흔치 않은 일이었는데 금산 농바우끄시기는 여성들이 주관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웬만한 가뭄에는 나서지 않고 비가오지 않으면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대 절명의 시기에 여성들이 나선 것이랍니다.

문화재로서 농바우끄시기를 발굴하던 1999년 당시 이 마을 80세 가량 다수의 노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평생 4~5회 밖에 농바우끄시기를 못 보았다는 증언이 그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농바우 끄시기 보존회장님이신 양철규 선생님

▲ 농바우 끄시기 보존회장님이신 양철규 선생님


농바우 끄시기 보존회장님이신 양철규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놀라운 실화가 한가지 있습니다.
 
“7~8년전쯤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이 닥쳤을때였어요. 가뭄은 충남도 마찬가지였죠. 그때 충남도청에서 농바우끄시기 행사를 공식 요청해왔어요. 우리도 필요하다 싶어 열심히 준비해서 농바우끄시기 행사를 치렀는데... 놀랍게도 진짜 비가 왔다는거 아닙니까.”
 
실로 놀랍네요. 농바우끄시기의 진가를 알수 있는 실화입니다.
 

농바우 끄시기 행사 전 연습을 하는 전수관의 넓은 공간

▲ 농바우 끄시기 행사 전 연습을 하는 전수관의 넓은 공간


현재 농바우끄시기 전수관에는 행사에 필요한 장비와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극심한가뭄때초월적존재에비를구원했던전통기우제 13


그중에 이것은 두름병이라고 부르는데, 농바우 끄시기 행사 1주일 전에 부녀자들이 이 두름병을 들고 금강변 ‘강종모랭이’라는 곳에 가서 물을 떠다가 대문 옆에 놔둔다고 합니다. 이 강종모랭이라는 곳은 100년이 가도 한번도 물이 마른적 없는 곳이라고 하네요.
 

양철규 보존회장님께서 전수관의 꽹과리로 흥겨운 농바우끄시기 뒤풀이 장단을 쳐 주셨습니다.

▲ 양철규 보존회장님께서 전수관의 꽹과리로 흥겨운 농바우끄시기 뒤풀이 장단을 쳐 주셨습니다.


자연의 재해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초월적 존재나 여러 주술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마을 공동체적인 집단의식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충남 금산의 농바우끄시기뿐만 아니라 동서고금 다 마찬가지인 인류사의 공통된 일이었죠.
 
그런 전통의 민간신앙적 행사가 이렇게 면면히 우리 충남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서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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