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 동문동 서산동부시장 구두대학병원 강석란씨의 인생 36.5도씨 이야기
▲ 주인공 강석란씨의 구두대학병원이 자리잡고 있는 서산시 동부시장 도로변. 왼쪽에 구두대학병원 간판이 보입니다.
▲ 구두대학병원
▲ 자신의 구둣방 업소인 구두대학병원에서 작업중이신 강석란씨.
왼손으로 구두를 잡고 오른손으로 작업해야 하는데 왼손이 시원치 않다 보니 남들보다 몇 배 어려운 것입니다. 왼손은 새끼손가락 같은 엄지만 붙은 채 완전히 상했고, 그마저도 일을 하는 와중에 바늘에 찔리고 눌려서 피멍이 들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강석란씨는 이런 모든 고통이나 어려움 역시 신께서 주신 삶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며 오늘도 구두대학병원을 찾아오신 손님들을 맞아 반갑게 인사하며 고객들의 구두를 편하게 해주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오늘 도민리포터가 강석란씨의 인생이야기를 충남넷에 향기롭게 한번 옮겨 보겠습니다.
강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심한 화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때가 1960년대 초반이었는데 시골에서는 석유를 등잔에 넣어 불을 켜고 살았다죠. 그런데 그때 강씨네는 불을 좀 더 밝게 켜기 위해 석유에 휘발유를 조금 섞어서 썼는데 사고가 나던 그날 강씨는 언니 둘과 석유 통에 휘발유를 붓고 있었답니다.
그때 언니가 석유통에 휘발유를 넣던중 실수로 휘발유가 강씨의 등잔심지에 옮겨 붙으며 강씨의 얼굴과 목 그리고 심지를 들고 있던 왼손을 몽땅 태운 것이랍니다.
그 때부터 상처가 아물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지는 설명을 안해도 알 것입니다.
강씨는 그후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3년간 시골에서 화상을 치료했는데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했다면 현재보다는 훨씬 더 낫게 치료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버린 피부가 낫는 과정에서 피부들은 심하게 오그라들었고 예뻤던 얼굴도 누군지조차 모르게 변했다고 합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학교에 갔지만 친구들의 놀림을 못견뎌 목숨을 끊으려고 한적도 있었다네요.
하지만 꿋꿋이 참고 견뎌내 결국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구두를 닦는 분을 만나 결혼한 뒤 아들과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남편분이 10여년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강석란씨는 하루아침에 가장이 돼버린 것입니다.
▲ 남편께서 작고하신 후 본격적으로 구두수선에 나선 강석란씨.
하지만 삶의 의지는 강한 것,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엄마라고 했잖아요.
강씨는 그때부터 직접 구두 수선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평소 안하던 일을 하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더군다나 손도 편하게 사용할수 있는게 아니었으니 어려움은 말로 다 할수 없었던 것이죠.
▲ 왼손이 불편하지만 다 견뎌내신 강석란씨
▲ 망가진 구두에 본드를 칠하는 중
▲ 오늘날 위대한 어머니의 표상이 된 영광의 상처 '왼손'
그래서 때론 수선을 잘못했다고 욕설을 듣기도 했고 때론 세상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도 익히고 구두수선을 하느라 왼손 엄지손가락을 바늘로 찔리기를 수천 수만번 거듭거듭...
위대한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두 아들과 딸은 훌륭하게 성장해 현재 아들은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전도사로 활동중이며, 딸 역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답니다.
“장애는 다른 사람과 행동하는 방식만 다를뿐, 그리고 생활이 조금 불편할 뿐, 얼마든지 세상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강석란씨가 늘 머릿속에 지니고 있는 신념입니다.
▲ 자서전을 펴 보이시는 강석란씨
▲ 책 내용중...
강씨는 그의 삶을 기록한 ‘나의 왼손’ 자서전도 펴냈는데 이 책도 많이 판매되었답니다. 책에서 인생의 향기가 풍긴다고 하죠.
“누구든지 어려운 일에 닥칠수 있잖아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분, 진정 위대한 이 땅의 어머니이시며 자랑스러운 충남도민이십니다.
포기하지 말라는 강석란씨의 말씀을 거듭 진리로 여기며 행복한 마음으로 구두대학병원을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