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언론에서 대서특필한 해미읍성 '공사책임제'

[도민리포터] 조선시대 부실시공 막은 놀라운 '각자석'

2014.04.16(수) 02:21:50 | 권순도 (이메일주소:djshsjshsywy@hanmail.net
               	djshsjshsywy@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오래전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의 붕괴사건 등이 기억나실 것입니다. 또한 지난 겨울에는 리조트 지붕이 무너져 그곳으로 오리엔테이션을 받기 위해 참석했던 부산외대 대학생 여러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는 참사도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세종시에서 짓고 있는 어느 아파트에 철근이 규정대로 박히지 않아 아파트 붕괴위험이 있다며 분양받은 사람들이 입주거부 운동을 벌이는 일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입주하기가 얼마나 겁나겠습니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건의 공통점은 부실시공과 부실 관리감독이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부실에 의해 애꿎은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볼때 부실시공과 부실감독은 너무나 큰 죄악입니다.
 
 

해미읍성

▲ 해미읍성


그런데 이런 부실시공을 막기 위해 조선시대에 해미읍성을 축조하면서 ‘공사 책임제’를 시행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공사를 담당한 행정 책임 관리와 그 아래에서 공사에 직접 임했던 부역자들에게 책임을 지우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일.
놀랍죠? 이거 사실입니다.


읍성 정문격인 진남문

▲ 읍성 정문격인 진남문


바로 3주전쯤 서산의 해미읍성에서 공사책임제를 시행했던 사실을 기록한 ‘각자석’이라는게 발견되었습니다.
아주 큰 의미여서 온나라 신문과 방송에도 크게 보도되어 도민리포터가 해미읍성에 다녀왔습니다.
 
서산시가 해미읍성의 성벽 기록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 구간에 새겨 넣은 각자석(刻字石 : 성곽 돌에 축성 관련 글을 새겨 넣은 것)을 발견했다는게 그 요지입니다..
즉 조선 전기인 1491년(성종 22년)에 축조된 해미읍성의 축성방법과 동원된 주민들의 규모 등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가 새롭게 확인된 것이죠.
 

공사책임제를 실시한 해미읍성 각자석 발견 위치도

▲ 공사책임제를 실시한 해미읍성 각자석 발견 위치도


각자석과 공사책임제를 쉽게 설명드리자면 이렇습니다.
해미읍성이 둥근 원의 형태인데 현재 정문 역할을 하는 진남문을 기준점에 두고 그 왼쪽에 3곳, 그리고 오른쪽으로(동쪽) 돌아가면서 일정한 구간(짧게는 10m안팎, 길게는 20~30m 안팎의 거리)마다 성벽 축조 공사에 참여한 백성들의 거주지 지명을 표기해 둔게 총 19곳이나 발견된 것입니다.
 

진남문 왼쪽 공주(公州)의 公자가 선명히.

▲ 진남문 왼쪽 공주(公州)의 公자가 선명히.


공주 바로 옆에 청주(淸州)의 淸자도 선명히.

▲ 공주 바로 옆에 청주(淸州)의 淸자도 선명히.  해미읍성 심민택 선생님이 직접 나와서 각자석 위치를 알려주시며 설명해 주셨습니다.

실제로 진남문 왼쪽으로 5m쯤만 가면 제일먼저 公州와 淸州의 지명이 적힌 각자석이 있습니다.
 

공사 책임자였던 李씨 성을 가진 아무개라는 의미의  李자도 선명히.

▲ 공사 책임자였던 李씨 성을 가진 아무개라는 의미의 李자도 선명히.


 또한 그 옆에는 李씨 성을 가진 아무개라는 각자석도 있습니다. 이사람이 그 구간 공사책임자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

▲ 공주
 

주

▲ 이건 판독 불가라 합니다
 

주

▲ 여기도 각자석이 있는데 각자석의 위치는 대체로 성곽 밑에서 위로 3~5번째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주

▲ 충주
 

주

▲ 이곳도 충주
 

주

▲ 임천


이어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청주, 공주, 충주, 면천, 부여, 서천, 회덕 등 우리 충청남도 각 고을의 이름이 한문으로 적혀 있습니다.
 
각자석은 대체로 성벽 밑에서 위로 3∼5번째 돌에 지역 명칭을 공사시점 구간과 끝지점에 새겨 넣었습니다.
이 해당 구간은 각자석에 적힌 지역의 담당자들이 공사에 참여 했다는 기록이며, 이 기록을 통해 당시 그 구간 공사를 지휘한 관리가 누구인지도 파악할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즉 읍성 축성에 동원된 주민들의 거주지역을 성벽에 새긴 것으로 각 구간을 어느 지역에서 쌓았는지 각자석을 새겨 넣어 성벽이 무너지거나 하자가 생길 경우 이를 책임지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서천

▲ 회덕(현재의 대전 신탄진쪽)
 

이곳도 임천

▲ 이곳도 임천
 

서천

▲ 이것도 부여
 

서천

▲ 이곳도 부여
 

서천

▲ 서천


총 19곳의 지명은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 보면 충남, 충북, 대전시 등 3개 시도, 11개 시군의 주민들이 읍성 축조에 동원됐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참 대단한 기록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성 축조 구간에서 책임시공제 개념으로 축조됐다는 각자석이 발견되기는 보기 드문 사례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합니다.
 
특히 서두에 지적한 것처럼 눈만 뜨면 부실시공 문제로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는 요즘, 이번 해미읍성 각자석 발견은 역사적 가치 차원을 넘어 우리 모두 크게 본받아야 할 교훈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본 해미읍성 평면도

▲ 하늘에서 본 해미읍성 평면도


 

교황 방문을 환영하는 현수막

▲ 교황 방문을 환영하는 현수막


 

읍성 내부 전경

▲ 읍성 내부 전경


 

잔디밭과 화사하게 핀 벚꽂

▲ 잔디밭과 화사하게 핀 벚꽂


 

활짝 핀 수선화

▲ 활짝 핀 수선화


 

푸르게 자란 청보리

▲ 푸르게 자란 청보리


앞으로 서산시에서는 해미읍성 각자석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관광콘텐츠를 개발해서 활용할거라 합니다.
 
우리 선조들이 공공시설을 건설하면서 부실을 막기 위해 철저한 대책을 마련했음을 보여주는 해미읍성의 각자석을 가정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보여주시고 선조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권순도님의 다른 기사 보기

[권순도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