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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 여사울성지를 찾아서

한국순교자들의 모태가 되신 이존창 루도비꼬

2014.04.10(목) 01:38:02 | 도희 (이메일주소:ass1379@hanmail.net
               	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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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목련이 만개한 봄날에 한국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인 여사울성지(예산군 신암면 신종리)를 찾았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조선 학자들의 학문적(중국의 서학)인 연구를 통해 천주교를 처음 받아들였는데요. 여사울성지는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꼬(1759~1801)가 태어난 곳입니다. 사도 이존창은 서울에서 스승 권일신로부터 천주학을 배우고 세례를 받은 후에 고향으로 내려와 전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과거 공부를 하며 꿈을 키우던 청년 이존창은 그 당시 유교적 신분 차별사회의 모순에 회의를 느끼고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진리의 빛을 발견하고 천주학에 심취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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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존창은 1759년 여사울에서 태어나 1784년에 영세를 받고 천주교 신앙의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존창 사도의 깊은 학문의 경지와 아름다운 덕행을 본 사람들은 그를 따라 천주교에 입문하게 되었는데요. 더욱 놀라운 점은 우리나라 최초 신부인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도 이존창 사도의 전교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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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존창 사도가 활동하던 당시에 여사울 마을에는 300여 가구의 마을 주민이 살았는데요. 여사울이란 뜻은 여기도 서울이란 말로 서울의 부자들이 여사울 나루터에 배를 타고 와서 이곳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별장으로 짓고 살았습니다.


여사울은 한국천주교회의 초기 신앙공동체로 시작하여 이존창의 전교로 최양업 신부와 김대건 한국 최초 신부가 탄생했고 1866년 병인박해로 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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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울 성당 앞에는 올해 8월 14일~18일까지 한국을 방문 예정인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습니다. 교황님은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대전교구  주최)에 참석하시고 천주교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식을 거행합니다.
여사울성지~ 합덕성당~ 신리성지~ 솔뫼성지는 성지순례 코스인데요. 이번 방문에 교황님 이곳을 순례하시면 좋겠습니다. 솔뫼성지에서 아시아 청년들과의 대화 이후 해미읍성 청년대회 폐막식 순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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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입구에 있는 성수물을 찍어 성호를 긋고 조용히 앉아서 명상과 기도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2,000년 전의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어 사람들에게 전파한 사랑의 메시지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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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길, "마리아 너는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할 것이니라." 라고 전했을 때 마리아께서는 "저는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 라고 했습니다. (성서 말씀 中)

성모상 앞에서 성모마리아의 기도를 올립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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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울 성당 앞에 있는 낮은 언덕을 올라가면 내포의 사도 이존창 유적비가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수많은 열매를 맺듯이 이존창 사도의 작은 믿음의 씨앗이 한국의 거룩한 순교자들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1984년 교황 바오로 2세 한국방문 때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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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앞길을 돌아가면 야외 십자가의 길 산책로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란 예수 고난의 길이라고도 하는데요.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신 날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십자가의 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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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하시어 가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인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부모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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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는 이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받으시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온갖 모멸과 조롱 속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지켰습니다.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에 대한 용서를 청하며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셨습니다. 주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은후 3일만에 다시 살아나 부활의 영광에 이르렀다고 성서에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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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따스한 햇볕에 돌 틈에서는 작은 민들레가 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작은 생명으로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인간의 삶도 햇살 같은 벗이 되어주고 빗물처럼 생명을 키워주는 존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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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존창 유적비가 있는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모습입니다. 삽교 댐을 건설하기 전에는 저 아래 굴다리 쪽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배들이 들어왔습니다. 서양 신부님들이 꽃다운 나이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망망대해를 조각배에 몸을 싣고 으슥한 이곳 육지에 내렸습니다.

수심이 얕고 갈대와 수풀이 우거진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던 시기에 신변을 위해서입니다. 내포에 배의 닻을 내리고 숨어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며 전교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사울 성당을 지키는 노인의 말에 의하면, 1900년 이전에 이곳 여사울에 들어오던 한양 사람들은 저 굴다리 쪽에서 배를 타고 들어오면, 여사울 사람들이 큰 나무에 묶어놓은 밧줄을 배에 탄 사람들에게 던져주어 육지 사람들이 끌어당겨 들어왔다고 합니다. 노인은 그의 아버님에게서 전해 들은 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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