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입구부터 보이는 돌담이 이곳이 맹씨행단이 위치한 마을임을 보여준다.
들어가는 입구에 문화재명칭때문에 웃지못한 맹씨문중의 설명문이 하나 붙어 있다.
문화재명칭에 지역을 붙이게 되어 있어 "아산 맹씨행단"이라고 쓰는데
사람들은 아산을 본관으로 오해한다고 맹씨의 본관은 신창이라는 설명문이 적혀 있다.
맹씨행단 들어가는 입구이다. 저기 보이는 안내판 밑에
위에 말한 설명이 써져 있다.
▲ 맹사성 기념관
대문옆에 있는 청백리 맹사성 기념관, 이른 아침이라서 보지는 못했다
맹사성고택이라 어떤 곳일까? 호기심과 함께 대문을 들어선다.
행단이라 그런지 대문부터 향긋한 은행냄새가....바로 이넘이 냄새의 범인이었구나
그 옆에 메주까지!! 현재 안채는 관리사로 사용되고 있다.
조선전기 가옥이라...몇번의 보수가 있었겠지만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견디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등좌쇠에 걸려 있는 분합문
공사중인 정면을 찍을 수 없어 찾다가 찍은 문창살
불을 지피고 있어서 굴뚝에서 연기!!
옛날에는 집집마다 밥할때 연기를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이젠 정겨운 광경이 되었다.
양반가에서 꼭 볼 수 있는 사당, 세덕사
신창 맹씨 선조인 맹유, 맹히도, 맹사성 3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를 덕을 이어가자는 뜻인가?
행단 전체를 두르고 있는 돌담
보통 황토흙과 함께 돌담을 쌓은데 초기양식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성
처럼 돌로만 담을 쌓았다.
맹사성이 직접 심었다고 하는 은행나무 두그루, 600백년 세월을 이기고 서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좋아하던 은행나무, 은행처럼 제자가 번성하길,
그리고 은행나무처럼 벌레가 끼지 않길 바랬던 선조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바로 5분 거리에 외암민속마을이 있으니 가는 길에 들려서
은행나무처럼 깨끗하길 바랬던
조선초 청백리 맹사성에 대해서 조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