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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충청인의 삶과 얼이 스며있는 곳, 충남역사박물관

2014.02.24(월) 14:19:03 | goood33 (이메일주소:goood33@hanmail.net
               	goood33@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청인의삶과얼이스며있는곳충남역사박물관 1

어떤 지역을 여행하다 보며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전통 등을 알 수 있는 박물관이 있는데, 이번 여행길에는 충청인의 삶과 얼이 스며있는 충남역사박물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충청남도역사박물관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산하의 박물관으로 충청남도에 관련된 역사유물과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지역에서 개인이나 단체에서 소장하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기증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충남 도민의 문화와 휴식의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충청남도역사박물관에서는 주로 조선시대 충청감영과 각 고을의 문서는 물론 옛 명헌의 발자취로부터 절의와 호국인물, 그리고 격동기였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근현대 시기까지의 역사자료와 생활민속품을 전시하고 있다.


충남역사박물관 관람안내

▲ 충남역사박물관 관람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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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역사박물관 관람안내>
개관시간 : 동절기 09:00~17:00 / 하절기 09:00~18:0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1일
관람료 : 무료(단체 관람시 사전예약을 하며는 안내 및 해설 가능)
충남역사박물관 가는 길 : 충남 공주시 국고개길 24 (중동 284-1)
충남역사박물관 전화 : 041) 856-8608


충청도관찰사 교지체험

▲ 충청도관찰사 교지체험

충청도관찰사 교지체험은 충남역사박물관에서 제일 재미있는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교지 체험 프로그램은 화면의 우측 하단에 있는 시작버튼을 누르고 다음화면에 따라 체험을 하는데 마지막으로 본인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며는 끝난다.


충남의 역사와 문화

▲ 충남의 역사와 문화

백제의 왕도 공주와 부여를 품안에 안고 있는 충청도는 조선시대 선비의 고장이기도 하며, 조선후기 학계를 대표했던 호서예학의 학문적 전통 아래 충청도에서는 사계 김장생 문하에서 우암 송시열과 명재 윤증 등 당시 대학자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선비정신은 평상시에는 예학을 중시하고 혼란기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호국의 의지로 행동에 옮겼다.


호패

▲ 호패

호패는 조선시대 신분증으로 16세 이상의 남자들이 차고 다니던 패이다. 신분에 따라 그 재질과 내용에 차이를 두었는데, 세종실록에 보면 종2품 이상은 상아와 녹각을 서인이하는 참나무나 소나무 같은 잡목을 쓰도록 라고 있으며, 신분이 낮을수록 이름뿐 아니라 사는 곳까지 자세하게 기재하였다.


관찰사 지방순시 모형

▲ 관찰사 지방순시 모형

관찰사 지방순시 모형으로 관찰사 본연의 업무는 수령 등을 규찰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즉 관찰사는 도내를 순력하면서 6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각 고을의 수령, 첨사(僉使)와 만호(萬戶) 등 군 지휘관, 그리고 교통과 통신 업무를 맡은 찰방(察訪) 등의 근무실적을 평가하였다.

순력(巡歷)은 수많은 수행원과 함께 행해졌는데, 전시된 축소모형은 그 일부를 보여주는 자료이며, 포폄목(褒貶目)은 포폄의 결과를 공개한 문서이다.


기호학파와 예학

▲ 기호학파와 예학

기호학파는 경기 및 충청지역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문인과 학맥을 말한다.
인조반정 이후에는 김장생, 송시열 등 충청지역의 기호학파가 정계 및 학계의 주도권을 차지하였다.

당시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여러 차례의 국난을 거치면서 사회가 혼란하였는데, 충청지역의 기호학파는 예학을 심화시키고 예를 생활화하여 사회질서를 확립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고, 사게 김장생과 관련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무안박씨 요여

▲ 무안박씨 요여

무안박씨 요여로 1871년 성삼문의 신주를 홍주의 노은서원에서 논산 당호재로
옮겼던 가마(도지정 민속자료 제20호)로 무안박씨 종중에서 기탁하였다. 이렇게 충남역사박물관에서는 소중한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를 위하여 개인 및 단체가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기증 및 기탁 받고 있다.


추사 김정희 초상화

▲ 추사 김정희 초상화

추사 김정희 초상화로 1857년 이한철이 그린 것으로 복제품이지만 여기서 추사 초상화를 보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초상화 아래에는 추사 김정희가 직접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직역을 하며는 "산과 바다는 높고 깊다" 이지만 의역을 하며는 "산이 높고 바다가 깊으니 금수강산"이라는 뜻이다.
 
 

신미통신사 죽리 김이교

▲ 신미통신사 죽리 김이교

신미통신사 죽리 김이교에 대한 이야기로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어서 역사를 공부를 하게 되었다. 김이교(1764~1832) 할아버지는 대사간 시찬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방행이며, 어머니는 심황의 딸이다. 김이교는 1789년 정조3년에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검열, 수찬, 초계문신, 북평사를 거쳐 1800년 겸문학(兼文學)이 되었다.

여기에 전시된 김이교 유물(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은 1876년 개항 이전 조선시대 일본과의 공식적인 마지막 사신 교환 시절이었던 1811년 신미 조선통신사의 정사를 지내고 후에 우의정에 오른 김이교의 유물이다. 김이교가 통신사 정사로 사향하면서 작성된 "신미통신일록"과 인장, 그리고 호패, 교지, 교서 등은 사료적이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노혁왕지

▲ 노혁왕지

이 문서는 1401년(태종 1년) 4월에 성균생원 노혁이동진사 제23인에 급제하여 받은 홍패, 즉 과거시험 합격증서로 소중한 문화재 자료이다. 노혁왕지는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시대 홍패 가운대 발급 연대가 가장 이른 문서이자 "조선왕보"가 찍힌 가장 늦은 시기의 문서로 문서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충남의 변화상

▲ 충남의 변화상

이곳에서 충남의 변화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소박한 추억이 깃든 옛 충남의 관광지와 생활의 흔적들을 볼 수 있는데 자동차를 이용한 가족의 주말여행이 일상화되었지만 30년 전만 해도 수학여행과 신혼여행으로 먼지를 날리며 산사와 해수욕장, 그리고 온천지를 찾았다.

정취를 느끼는 생활의 흔적으로 금강에서 얼음을 채취하였고, 소를 팔고 사던 우시장의 광경은 어른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다. 마치 영화 배경처럼 스쳐가는 옛 거리 풍경으로 옛 시가지 모습은 이제 풍물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고 문화재로 지정되는 상황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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