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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4대에 걸쳐 독립운동과 호국정신이 깃든 수당기념관

2014.02.03(월) 18:30:02 | goood33 (이메일주소:goood33@hanmail.net
               	goood33@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4대에걸쳐독립운동과호국정신이깃든수당기념관 1
 

충남은 충절의 고장인 만큼 충남여행을 할 때마다 애국지사들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예산여행길에 우연히 수당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예산은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고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받치신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많은 곳이다.

충남 출신 많은 애국자들은 조국의 자주적인 독립과 자유를 위해 투쟁하였으며,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자신의 위치를 묵묵히 지겼으며, 우리는 이러한 선조들의 정신을 가슴 속 깊이 새겨 그 정신을 후대에 이어가야 하겠다.

수당기념관을 방문하면서 가슴에 와닿는 문구인 "선비는 죽일 수 있으되 욕 보일 수는 없다"라는 "사가살 불가욕(士可殺 不可辱)"을 실천한 수당의 절개를 느겼다.


수당기념관 전경

▲ 수당기념관 전경

왼쪽 건물은 관리사무실이자, 수당기념사업회 사무실로 운영하고 있으며 그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수당기념관이다.
<수당기념관 관람시간 >
하절기(3월~8월) : 오전 10시 ~ 오후 5시
동절기(9월~2월) : 오전 10시 ~ 오후 4시
휴관 : 매주 월요일, 1월1일 / 관람료 : 무료


수당 기념관 내부

▲ 수당 기념관 내부

수당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자 의외로 역사적인 자료도 많고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과 애국정신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수당기념관 가는 길 : 충남 예산군 대술면 상향리 335
수당기념관 전화 : 041) 331-4411


수당 이남규

▲ 수당 이남규

수당 이남규선생은 전통있는 선비 가문에서 태어나 조선시대 말기 일제침략이라는 민족적 위기에 맞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분이시다. 일제의 회유에도 끝가지 뜻을 굽히지 않고 결국 그의 아들, 가마꾼과 함게 일제의 칼날에 순국하셨다.


수당가의 얼

▲ 수당가의 얼

수당 이남규는 나라를 침략해온 일제의 사악한 칼날 앞에 의연한 죽음을 맞이 하였고, 수당이 마지막 길을 따르던 장남 이충구 역시 부친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으며, 또한 김응길도 주인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손자 이승복은 13세에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참변으로 애통해 하였지만 곧 국내외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선대의 정신을 이어났다. 한편 증손자 이장원은 6.25 전쟁 당시 해병장교로 원산 황토도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장렬하게 전사하여 호국정신을 이어나갔다.

이와같이 유례가 드물게 4대에 걸쳐 수당가의 독립과 호국활동은 예산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지금의 우리 세대에서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다.


4대에걸쳐독립운동과호국정신이깃든수당기념관 2

이남규의 건국공로훈장독립장과 훈장증(1962년)이며, 이외에도 김응길의 건국훈장애족장과 훈장증(2008년), 이충구의 건국훈장애국장과 훈장증(1991년), 이승복의 건국훈장애국장과 훈장증(1990년)이 전시되어 있다.


고종칙유(高宗勅諭)

▲ 고종칙유(高宗勅諭)

고종칙유(高宗勅諭)는 1986년 고종 황제가 안동부관찰사로 부임하는 이남규에게 내린 훈유(訓諭)의 글이다. 당시 이남규는 이 직임을 여러 차례 사양하였으나, 고종의 부탁이 너무도 간곡한 탓에 부임하여 왕명을 선포하고 백성을 초유(招諭)하고 돌아 왔다. 고종의 칙유를 받들어 시행한 관리는 내각총리대신서리 내부대신 박정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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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기념관 전시실에는 이남규가 남긴 일기와 인(仁), 인의(仁義), 이남규의 유묵을 모아놓은 책인 수당공유묵, 수당잡고, 수당집, 흥선대원군이 이남규에게 보낸 간찰, 이남규의 벼루와 벼루집, 이남규 호패, 이남규가 사용한 도장, 이남규의 관대, 이남규가 사용한 호수와 호수통 등 많는 전시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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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를 꾸짖고 가마에 올라타는 수당선생 모습과 일제에 항거하다 결국은 순국하시는 수당선생 부자 모습으로 수당 이남규는 끊임없이 이어진 나라 걱정의 상소와 의병을 모의하다 투옥하는 등 예산의 애국지사이시다.


이남규 홍패

▲ 이남규 홍패

이남규 홍패는 이남규의 문과 합격 증서로 홍패는 조선시대 문무과 합격자에게 내리는 증서이다. 붉은 장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으며, 1882년에는 정시문과, 별시문과, 증광문과 등 모두 3차례의 문과시험이 있었는데, 이남규는 정시문과에서 병과 2등으로 합격했다.


수당순절비

▲ 수당순절비

수당 이남규와 이충구 두 부자의 애국충절의 넋을 기리는 비로 현재 수당고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충남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에 위치하고 있다.


수당고택 모형

▲ 수당고택 모형

수당고택은 수당기념관 바로 옆에 위치히고 있으며 충남유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당고택은 1637년 이구의 부인인 전주이씨가 지었으며, 1825년에 중수하였다.

남향집으로 "-"형의 사랑채와 "ㅁ"형의 안채가 있고, 모두 5량의 굴도리집으로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별당이자 사랑채인 "평원정"을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일찍이 수당은 이곳에서 일제의 만행에 격분한 상소를 올렸고 홍주의병장 민종식을 숨겨주기도 했던 의병 활동의 장소이기도 하다.


4대에걸쳐독립운동과호국정신이깃든수당기념관 5

수당기념관은 수당이 실천한 "사가살 불가욕(士可殺 不可辱)"의 고귀한 정신을 널리 알리고 이를 계승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또한 수당 4대(이남규, 이충구, 이승복, 이장원)로 이어진 애국정신과 호국활동을 소개하고 이를 통하여 수당가의 독립정신과 호국정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념관을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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