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농작업의 기쁨을 노래한 노동요 - 부여 산유화가

백제 패망의 슬픈 전설도 담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노동요로서 더 큰 가치를 지님

2013.12.26(목) 11:20:06 | 남준희 (이메일주소:skawnsgml29@hanmail.net
               	skawnsgml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산유화가>
궁야평 너른 들에 논두 많고 밭두 많다
씨 뿌리고 모 윙겨서 충실허니 가꾸어서
성실하게 맺어 보세
 
산유화야 산유화야
오초동남 가는 배는 순풍에 돛을 달고
북얼 둥둥 울리면서
여기여차 저어가지 윈포 귀범이 아니냐
 
산유화야 산유화야
이런말이 웬말이냐
용머리를 생각하면 구룡포에 버렸으니
슬프구나 어와 벗님 구국충성 다 못 했네
 
산유화야 산유화야
임포에 남당산은 어이그리 유정턴고
매년 팔월 십육일은 왼 아낙네 다 모인다
무슨 모의 있다던고
 
산유화야 산유화야
사비강 맑은 물에 고기잡는 어옹들아
온갖고기 다 잡어두 경칠랑은 낚지마소
강산풍경 좋을시고
 
[후렴]
에-헤-에헤야 -헤헤 에-헤-에루야
상~사~뒤-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 4호인 부여‘산유화가’입니다. 일종의 노래죠.
지난번에 소개해 드렸던바와 같이 두레풍장과는 4촌지간이죠. 같은 마을에서 전승되어 이뤄지는 문화유산이고, 현재 보존회 사무실과 전수관도 함께 쓰고 계십니다.
 

산유화가와 두레풍장이 함께 쓰고 있는 전승보존회

▲ 산유화가와 두레풍장이 함께 쓰고 있는 전승보존회


산유화가는 부여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의 하나로 농부들이 벼농사 위주의 농사를 지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른 노동요입니다.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는데 ‘메나리’라고도 한다네요. 이는 산유화를 풀어서 ‘뫼놀이’라 한 것이 메나리로 되었다는 설과 옛 민요 ‘미나리꽃은 한철이라’하는 데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 민요는 노인분들에 의해서 토막토막 구전되어 왔는데 나라(백제)를 잃은 슬픔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데서 유래됐기 때문에 약간 구슬픈 느낌도 줍니다.
남녀가 주고 받는 형식으로 불리워지며 모심기, 김매기 등의 농요로서 뿐만 아니라 노동과 관계 없이도 불리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이신 조택구 선생님이 산유화가에 대해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 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이신 조택구 선생님이 산유화가에 대해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초대와 2대 예능 보유자 두분

▲ 초대 박홍남, 홍준기 예능 보유자 두분


2대와 현재 예능보유자 3분

▲ 초대 이병호(오른쪽), 2대 현재 예능보유자 조택구(가운데) 김영구(왼쪽) 선생님


부여문화원에서 발간한 산유화가 책

▲ 부여문화원에서 발간한 산유화가 책


산유화가는 서민들의 생각과 애환을 담고 있는 노동요로써 현재 조택구, 김영구 선생님 두분이 예능보유자이시고 또한 전수관이 마련되어 산유화가 보존회에서 다같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위에 적은 산유화가의 이 노랫말을 유심히 살펴보면 궁야평, 용머리, 구룡평, 입포, 남당산, 사비강, 왕당, 취영봉, 반월성, 부소산성 등 지금의 부여지방에서 쓰이고 있는 지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노래가사 속에 아주 먼 백제시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답니다.
 
그중에서도 패망한 백제유민의 슬픈 삶이 두장면 나옵니다.
 
하나는 "오초 동남 가는배"로 백제가 패망하던해 8월 왕족, 고관대작, 백성들이 배에 실려
당나라로 잡혀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날을 기려 100리 안쪽의 부녀자들이 백마강이 내려다 보이는 유왕산에 다 모여 한풀이를 하는놀이로 이를 "유왕산 놀이"를 라고하며 양화면 입포리 남당산에서도 같은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용머리를 생각하면 구룡포에 버렸으니 슬프구나 어와 벗님 구국충성 다 못 했네"라는 대목입니다.
이는 조룡대 전설과 관계가 있습니다.
조룡대 전설은 다 아시는바와 같이 당나라 소정방이, 용이 되어 백마강에 살면서 나당 연합군을 괴롭히던 백제 의자왕의 아버지인 무왕(용)을 낚시로 잡은 슬픈 전설이 있는 곳이죠.
 
이렇게 백제가 패망하며 망국의 한을 노래한 산유화가의 가사가 노동요로 발전하면서 오늘날 산유화가가 되어 계승 발전된 것입니다.

씨뿌리기

▲ 씨뿌릴 논 고르기


볍씨 뿌리기

▲ 볍씨 뿌리기


다같이 모심기

▲ 다같이 모심기


모내기가 끝난 뒤 흥겹게 즐기기

▲ 모내기가 끝난 뒤 흥겹게 즐기기 위해 아낙들이 술과 음식을 나름


축제

▲ 축제 "에헤야 디야~"


피 뽑기(일명 피살이)

▲ 피 뽑기(일명 피살이 - 잡초제거)


벼베기

▲ 벼베기


알곡 털기

▲ 볏단 세우기


볏단 새우기

▲ 볏단나르기


알곡 털기

▲ 알곡 털기


수학이 끝난 알곡 담기

▲ 수학이 끝난 알곡 담기


다만 오늘날에는 그런 슬픈 전설 대신 노동을 하는 농민들의 삶과 노동의 애환과 농작업의 기쁨 등을 함께 담아 축제로 승화시켜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1976년 제1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충남대표로 출연하여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한 적도 있습니다.
 

조택구 선생님께서 축제에 쓰이는 도구를 들어 보이십니다.

▲ 조택구 선생님께서 축제에 쓰이는 도구를 들어 보이십니다.


산유화가의 노랫말은 1931년 홍사준 부여박물관장이 채록하여 ‘부여군지’에 수록하면서 일반에게 공개되었고, 1974년 박홍남 부여국악원장이 산유화가의 명인 홍준기씨로부터 노래를 배우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군요.
 
슬픈 백제멸망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농민들의 노동에 대한 기쁨과 애환을 함께 담아 축제로 소중하게 전승되어 온 산유화가.
후렴구 넣어서 한번 불러 보실까요?
 

남준희님의 다른 기사 보기

[남준희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