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수영성 심층취재
▲ 아름다운 벚꽃길
벚꽃길을 좀 지나다보면 '보령수필 해안경관전망대'가 보이고 '오천항동문낚시'라는 점포 뒷편이 바로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 )입니다.
▲ 보령수필 해안경관전망대
'충청수영성'이라는 표식을 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오천이라는 이정표밑에 '충청수영성'이라는 표식을 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오천에 많이 왔으나 고작 회를 먹고 오는게 전부였으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에 띠는 충청수영성이라는 표식을 몇 군데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어디가 충청수영성인지 관광객들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냥 지나치는 일반국도일 뿐입니다.
▲ 유형문화재 제36호 오천현 관아
우리고장 최고의 가치있고 소중한 문화재를 직접 접하니 감회가 남 다릅니다.
▲ '유형문화재 제36호 오천현 관아' 표지석
역사적인 문화유적인 사적 제 501호 '충청수영성' 표지석이 있지만 도로 옆에 자리하여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 '충청수영성' 표지석
▲ '충청수영성' 표지석 뒷면
'충청수영성' 표지석 뒷면에는 '충청수영성' 설치부터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충청수영성은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위해 돌로 높이 쌓아올린 석성(石城)입니다. 조선 중종 4년(1509)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이장생이 축성, 충청수영의 외곽을 두른 1,650m의 장대한 성(城)으로 자라(鱉)모형의 지형을 이용 높은 곳에 치성(稚城) 또는 곡성을 두어 바다와 섬의 동정을 살폈고 해안방어의 요충지였습니다.
세조 12년(1466년)수영(水營)을 설치, 충청수군의 최고사령부로 서해안을 방어하였습니다.
오천항(鰲川港)은 백제때부터 중국과 교역하던 항구로서 회이포(回伊浦)라 불리었습니다.
▲ 소성마을의 역사
소성마을의 역사의 향기도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곽이 시작되고
▲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곽의 웅장한 모습
▲ 추모비 사적비 불망비
추모비(追募碑), 사적비(事蹟碑), 불망비(不忘碑) 등 비석이 일렬로 서 있습니다. 오래된 비석은 형태만 있을 뿐 글씨도 알아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합니다.
▲ 계단 위의 오천현 관아
▲ 훼손된 관아 내부
훼손된 관아 내부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만 일었습니다.
▲ 관아 밑에 있는 '공해관'
▲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비석들
역사 깊은 문화유적이 있는 보령,
보령시는 충청수영성 내 대표 시설이었던 ‘영보정(永保亭)’(유실되고 현재 없음)이 최근 문화재청의 설계 검토 및 승인이 완료됨에 따라 복원이 본격 추진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영보정 복원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충청지역 수군 지휘부였던 충청수영성을 2018년까지 국비를 지원받아 중창(복원)할 계획이라니 기쁜 소식이 아닐수 없습니다.
충청수영성은 영원히 보전되어야할 가치 있고 값진 문화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