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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았던 섬, 지금은 흔적만 고스란히 남아

[현장탐방] 광복절에 떠난 태안반도 섬기행

2013.08.20(화) 11:29:35 | 주간태안신문 (이메일주소:east334@hanmail.net
               	east334@hanmail.net)

가의도 독립문 바위와 돛대바위... 섬 기행의 마지막 코스로 들른 가의도 독립문바위. 이날이 광복절이어서 그런지 독립문 바위가 특별해 보였다. 때마침 갈매기도 사진에 운치를 더해줬다.

▲ 가의도 독립문 바위와 돛대바위... 섬 기행의 마지막 코스로 들른 가의도 독립문바위. 이날이 광복절이어서 그런지 독립문 바위가 특별해 보였다. 때마침 갈매기도 사진에 운치를 더해줬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보다 긴 530.8km의 해안선을 갖고 있는 태안반도.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지형인 태안반도는 해안선이 길면서도 굴곡이 심하며, 태안군에 딸려 있는 섬이 무려 119개에 이를 정도로 섬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119개의 섬 중 9개가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유인도이고, 나머지 110개는 무인도일 만큼 태고적의 천혜 자연경관을 자랑하기도 한다.

119개 섬을 모두 합친 면적은 10.985㎢로 태안군 전체 면적의 2.3%에 해당된다.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하는 섬은 9개의 유인도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근흥면 가의도로 현재 67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태안반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근흥면 신진항의 안흥유람선을 비롯해 고남면 영목항 유람선 등을 타면 해당 코스별로 기암절벽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섬을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유람선은 정해진 코스만을 운행하다보니 서해안에 실크로드처럼 펼쳐져 있는 태안의 섬들을 좀 더 많이 보는 것은 어부가 아닌 이상 쉽지 않다. 그런데 지난 15일 광복절을 맞아 태안문화원이 '태안의 섬 기행' 문화답사 행사를 마련해 그동안 신비에 쌓여 있던 태안의 섬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섬기행 떠나는 참가자들. 섬 기행을 떠나기에 앞서 유람선이 출발한 신진항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섬기행 떠나는 참가자들. 섬 기행을 떠나기에 앞서 유람선이 출발한 신진항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태안문화원 측은 60명의 지역주민을 모집해 "자연이 살아 숨쉬는 섬, 일상을 벗어나 자연이 주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더불어 태안의 소중한 자연자원에 대한 이해와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을 고취시킬 목적으로 '태안의 섬 기행'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섬 기행은 유람선 관광의 한계를 넘어서,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신도, 연도, 대도, 연돌도 등 원북면 방이 7도를 비롯해 안도등대, 예전에는 주민이 살았지만 지금은 무인도로 변해버린 흑도 등을 기행할 수 있다는 매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태안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바다에서 태안반도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는 게 흥미를 끌었다.
 

성난 파도. 하필 섬기행을 떠난 광복절의 바다는 섬기행 참가자들을 반겨주지 않았다. 파고가 높아 참가자 대부분의 멀미로 애를 먹었다.

▲ 성난 파도. 하필 섬기행을 떠난 광복절의 바다는 섬기행 참가자들을 반겨주지 않았다. 파고가 높아 참가자 대부분의 멀미로 애를 먹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장밋빛 청사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출발 전부터 속이 편치 않았던 것도 걱정이 됐지만 이날 따라 화창한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파고가 높아 유람선이 신진항을 빠져나가기도 전부터 심하게 요동치는 난항이 예상됐다. 평소 뱃멀미를 하지 않아 멀미약도 챙기지 않았던 객기가 섬 기행을 망칠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신진항을 출발한 유람선이 태안반도 해안선을 따라 이동한 지 30여 분쯤 흘렀을까. 심하게 요동치는 유람선의 움직임에 슬슬 멀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멀미 때문에 그동안 학수고대해온 섬 기행을 포기하고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광복절에 떠난 태안 섬 기행... 기름유출 사고 해상도 지나다
 

이곳이 바로 서해땅끝. 행정구역상 소원면으로 지금은 군부대가 위치하고 있어 민간인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흰색 원안이 서해땅끝 동판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란다.

▲ 이곳이 바로 서해땅끝. 행정구역상 소원면으로 지금은 군부대가 위치하고 있어 민간인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흰색 원안이 서해땅끝 동판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란다.


한참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함께 섬 기행에 나선 지역사정에 밝은 한 참가자가 입을 열었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곳이 소원면이고요, 저기 등대가 서 있는 곳 절벽이 1990년대 중반에 설치된 서해끝단 정서진 동판이 있는 곳이에요. 지금은 군부대가 위치하고 있어 민간인 출입이 금지돼 동판을 볼 수는 없지만, 당시 동판이 설치될 때 함께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이 말을 들으니 얼마 전(7월 18일) 소원면 파도리 주민들이 '서해땅끝마을 파도리' 선포식을 통해 서해안 최고의 명품마을 만들기에 나선 것이 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던 만리포 앞바다. 유람선이 다니지 않는 곳이지만 섬 기행이라는 특별한 문화답사가 마련돼 2007년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던 만리포 해상도 지날 수 있었다. 저멀리 보이는 육지가 만리포해수욕장이다.

▲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던 만리포 앞바다. 유람선이 다니지 않는 곳이지만 섬 기행이라는 특별한 문화답사가 마련돼 2007년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던 만리포 해상도 지날 수 있었다. 저멀리 보이는 육지가 만리포해수욕장이다.


이곳을 지나자 또 한 참가자가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시작했다.

"이쯤 될 거유. 저기 만리포해수욕장이 보이는 걸 보니. 요쯤이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던 해상인데…."

안타까움과 억울함에 잠시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이 참가자는 "원래 이곳은 유람선으로는 지나갈 수 없는 곳인데, 이번 섬 기행이 의미는 있네요. 해상에서 바라보니 또 다른 매력이 있네요"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섬 기행의 첫번째 경유지인 신도의 모습.

▲ 섬 기행의 첫번째 경유지인 신도의 모습.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유람선은 첫 번째 기행지인 신도(新島)에 도착했다. 이내 유람선 내 스피커에서는 태안문화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태안의 섬>을 엮은 이이자 전 태안문화원장인 정우영 향토사학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도는 원북면 방갈리의 학암포 항구에서 서남쪽으로 약 6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모습이 특이하게도 둥글게 생겼다고 하여 몽근뱅이라고도 불립니다. 동북쪽으로는 선박의 접안이 가능하지만 그 외의 지역은 바위줄기에 따라 사람이 진입할 수는 있지만 선박의 접안은 불가능합니다."

귀에 쏙 들어오는 설명이었지만 이미 시작된 멀미가 그칠 줄 몰랐다. 섬 앞에 머물러 있는 동안 유람선의 엔진이 꺼졌고, 배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임이 더해지고 있었다. 한켠에서는 섬 기행 초반임에도 멀미가 심해지자 "빨리 출발하자"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멀미와의 싸움은 3시간이 넘도록 더 해야 하는데 이미 참가자의 반 정도는 녹초가 돼 있었다. 파고만 조금 낮았어도 광복절에 정말 뜻깊은 섬 기행이 되었을 텐데 섬 기행이 끝난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신도를 거쳐 연도(鳶島) → 대(방)도(大防島) → 구도(龜島) → 대방도의 부속도서인 방행도(傍行島) → 연돌도를 경유, 등대가 있는 안도(鞍島)에 도착했다.
 

기암절벽을 자랑하는 안도 등대가 있는 안도. 안도는 나무가 많지 않고 기암괴석으로 둘러쌓여 있어 절경을 자랑한다. 자세히보면 예전 등대지기들이 오고 가던 오솔길도 눈에 띤다.

▲ 기암절벽을 자랑하는 안도 등대가 있는 안도. 안도는 나무가 많지 않고 기암괴석으로 둘러쌓여 있어 절경을 자랑한다. 자세히보면 예전 등대지기들이 오고 가던 오솔길도 눈에 띤다.


106년 만에 민간에 개방된 옹도 등대와 함께 태안의 바닷길을 훤히 비춰주는 안도 등대. 이번 섬 기행에서 본래 정박하려고 했던 곳이다. 하지만 사정상 정박하지 못하고 안도 부근에서 유람선의 동력을 끈 채 잠시 감상하는 데 그쳐 아쉬움을 줬다. 이곳 안도 또한 앞서 기행한 섬들처럼 행정구역상으로는 원북면 방갈리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며, 태안군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섬으로 일명 '질마뱅이'라고 불리운다.

등대가 서 있는 곳은 남쪽 봉우리로 알려져 있으며, 섬 전체가 대부분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다. 안도에는 한때 등대수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물이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우물이 없단다.

7세대가 살았던 흑도, 아직도 주민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섬
 

정상에 송신탑만이 우뚝 서 있는 흑도. 흑도에는 아직까지도 학교와 주민들이 거주했던 집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 정상에 송신탑만이 우뚝 서 있는 흑도. 흑도에는 아직까지도 학교와 주민들이 거주했던 집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람 거주의 흔적들. 과거 7세대가 거주했었다는 흑도. 안보상의 이유로 주민들이 철수해 지금은 무인도로 변했지만 아직까지도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 사람 거주의 흔적들. 과거 7세대가 거주했었다는 흑도. 안보상의 이유로 주민들이 철수해 지금은 무인도로 변했지만 아직까지도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안도의 절경을 뒤로하고 점심을 먹고 탐방할 옹도로 향하기 전에 과거 주민들이 살았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흑도(黑島)를 경유했다. 흑도는 유람선이 출발한 신진항으로부터 서북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삼축제가 열렸던 소원면 모항항이나 만리포해수욕장에서도 육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섬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나무가 우거져 유난히 검게 보이기 때문에 '검은섬'이라고 불렸지만 한자표기상 흑도가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7세대가 살고 있는 유인도서였지만 안보상의 이유로 주민들을 철수시켜 지금은 섬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철탑만이 섬을 지키고 있는 무인도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당시 살았던 주민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흑도를 뒤로 하고 또 다시 유람선은 마지막 목적지인 옹도를 향해 힘찬 엔진소리를 높였다. 조금만 가면 이제 흙을 밟겠구나 생각하니 4시간여 동안 섬 기행을 가로막았던 멀미가 사그라드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옹도에 정박하고 있는 유람선. 섬 기행의 마지막 경유지인 옹도에 정박하고 있는 유람선. 파도의 흐름에 따라 심한 요동을 치는 유람선을 보니 지금도 멀미가 나는 듯하다.

▲ 옹도에 정박하고 있는 유람선. 섬 기행의 마지막 경유지인 옹도에 정박하고 있는 유람선. 파도의 흐름에 따라 심한 요동을 치는 유람선을 보니 지금도 멀미가 나는 듯하다.


섬의 모양이 마치 옹기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옹도의 등대는 1907년 1월 최초 점등됐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근흥면 가의도리 산 510번지에 위치해 있다. 옹도 등대는 대산항, 인천항, 평택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안전운항 유도를 목적 설치됐으며, 높이는 25.4m로 우리나라 아름다운 등대 16경에 선정되어 국민에게 볼거리와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옹도의 옹기. 옹기를 닮았다하여 옹도라 이름붙여졌다. 옹도 정상에는 숙명여대 모 교수의 작품 옹기가 우뚝 솟아있어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옹도등대에서 바라본 옹도와 주변 섬들의 모습.

▲ 옹도의 옹기. 옹기를 닮았다하여 옹도라 이름붙여졌다. 옹도 정상에는 숙명여대 모 교수의 작품 옹기가 우뚝 솟아있어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옹도등대에서 바라본 옹도와 주변 섬들의 모습.


옹도는 지난 6월 2일 106년 만에 민간에 공개됐으며, 지금은 옹도를 관광하려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오는 18일까지만 하루 2차례 유람선을 운행하고 있다.

아침 8시에 출발해 4시간여 동안의 뱃길 섬 기행을 마치고 드디어 점심을 먹기 위해 도착한 옹도. 배에서는 이미 허기가 찾아와 점심을 먹기는 해야 하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맛본 지독한 멀미에 맛나게 차린 도시락은 그저 그림의 떡이었다.

지인들의 권유로 억지로 속을 채우기는 했지만, 이미 정상적인 생체리듬을 잃어버린 몸을 정상화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옹도의 비경. 옹도의 후사면 모습으로 입이 벌어질 정도의 절경을 자랑한다.

▲ 옹도의 비경. 옹도의 후사면 모습으로 입이 벌어질 정도의 절경을 자랑한다.


 

옹도의 상징 동백나무 숲. 옹도는 동백나무 군락지로 잘 알려져 있다. 옹도를 민간에 개방하기 전 기존의 길을 차단하고 동백나무 군락지를 경유하는 새로운 길을 내 옹도 정상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의 땀을 식혀주고 있다.

▲ 옹도의 상징 동백나무 숲. 옹도는 동백나무 군락지로 잘 알려져 있다. 옹도를 민간에 개방하기 전 기존의 길을 차단하고 동백나무 군락지를 경유하는 새로운 길을 내 옹도 정상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의 땀을 식혀주고 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다시 한 시간 반 동안의 옹도 탐방이 시작됐다. 옹도는 이미 한 차례 와본지라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또 다른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 참가자들과 함께 옹도탐방에 나섰다.
 
 

옹도등대에 게양되어 있는 태극기.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했다.

▲ 옹도등대에 게양되어 있는 태극기.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했다.


30도가 넘는 뙤약볕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오르고 옹도 정상에서 도착해서는 박물관을 둘러보고, 등대 정상에 올라서는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와 함께 주변에 펼쳐진 절경에 빠져들었다.
 
 

옹도를 마지막으로 섬 기행이 마무리됐다. 맑은 하늘을 드러냈지만 바다는 순탄한 바닷길을 내주지 않았다.

▲ 옹도를 마지막으로 섬 기행이 마무리됐다. 맑은 하늘을 드러냈지만 바다는 순탄한 바닷길을 내주지 않았다.


지독한 멀미와 불볕 더위, 높은 파도와의 힘겨운 싸움을 헤치고 무사히 섬 기행의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악조건이었지만 그래도 광복절을 맞아 떠났던 태안반도의 섬 기행은 평생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특히 옹도에서 본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와 돌아오는 길에 만난 독도의 코끼리바위를 연상케하는 가의도의 독립문바위를 바라보면서, 독도침탈을 꿈꾸는 일본의 야심을 꺾어버려야겠다는 애국심마저 든 뜻깊은 광복절의 섬 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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