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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우리나라 최초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교회는?

강경 북옥교회와 골목길 벽화 이야기

2013.08.07(수) 16:16:13 | 권순도 (이메일주소:djshsjshsywy@hanmail.net
               	djshsjshsywy@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제는 뉴스를 들어 보니 일본이 항공모함급 헬리콥터 호위함을 진수시켰다고 합니다. 말은 호위함인데 갑판 위에 전투기만 갖다 놓으면 언제든지 항공모함으로 작전이 가능하다는게 어제 뉴스에 나온 전문가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장 큰 구조함인 독도함보다도 훨씬 크더군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눈 뜨고 보고만 있으려니 착잡한 마음이었습이다. 더군다나 8.15 광복절이 코앞인 지금 말이죠.

 그런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있던 시기에 가장 먼저 우리 국민들을 내선일체라는 명목으로 정신개조를 실시했던게 바로 신사참배 강요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자행된 일본의 강제적인 신사참배 강요에도 최초로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교회가 어디인지 아시나요?
 바로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북옥교회라고 합니다.

 

강경읍 북옥리의 근대문화유산인 북옥교회

▲ 강경읍 북옥리의 근대문화유산인 북옥교회


충청남도 논산, 그중에서도 강경은 옛부터 상권이 아주 크게 형성되면서 수많은 근대문화유산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현재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에는 옥녀봉이 있고 그 바로 아래로는 북옥감리교회가 있습니다.

북옥감리교회는 현재 남아있는 국내 유일의 개신교 한옥교회로도 유명합니다. 이미 오래전인 1923년에 이인법 목사가 설계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교회건물은 그냥 교회로서만이 아니라 다른 역사적 사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향해서 가려면 신작로에서 교회로 들어가는 골목길을 지나야 하는데 이 양쪽 골목에는 수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골목길의 벽화

▲ 골목길의 벽화
 

친근하고 정겨운 느낌

▲ 친근하고 정겨운 느낌

낡은 골목길의 이미지를 확 바꿈.

▲ 낡은 골목길의 이미지를 확 바꿈.
 

정겨운 소달구지 벽화

▲ 정겨운 소달구지 벽화
 

엄마 손 잡고 장날 5일장에.

▲ 엄마 손 잡고 장날 5일장에.
 

아이들

▲ 아버지들은 탁재기 한잔
 

우리나라최초로신사참배를거부한교회는 1

▲ "뻥이요" 뻥튀기
 

겨울철엔 윷놀이

▲ 겨울철엔 윷놀이



 골목 벽화는 보기 좋은 꽃과 소달구지 같은 정겨운 그림, 그리고 농촌 풍경도 그려져 있어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하나같이 정겹고 우리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들입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일본군과 거기에 저항하는 그림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게 웬 벽화일까요?
 다음주 목요일이 광복절입니다. 그래서 이 북옥교회 골목길에 그려진 벽화가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만세를 부르는 우리 국민들에게 총칼을 겨누는 일본군

▲ 만세를 부르는 우리 국민들에게 총칼을 겨누는 일본군
 

영국인 존 토마스 목사를 연행해 고문함

▲ 영국인 존 토마스 목사를 연행해 고문함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는 토마스 목사

▲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는 토마스 목사
 

일본군의 만행

▲산사참배에 대한 거부와 일본군의 만행


 일제 강점기, 그 때 삼일운동이 한참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던 시점에 영국인 목사 존 토마스는 강경 옥녀봉에 올라 교회를 어디에 지을까 궁리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중 느닷없이 일본군 헌병에게 연행되어 심한 폭행을 당하게 되었고, 아무런 죄도 없이 저항 한번 제대로 못한채 투옥이 되었다는군요.

 그러자 머리가 깨어있던 영국인 목사는 이 일에 대해서 일본 정부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게 되었고, 영국과 국가적인 감정을 소요할 필요가 없었던 일본은 신부에게 사과하고 배상금을 지불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그 배상금을 받은 영국인 목사는 배상금을 개인 돈으로 쓴게 아니라 그 돈으로 현재 남아있는 이 북옥교회를 지었다 하네요.

이후 1924년 10월11일 신사참배를 공식 거부하게 되었고, 그와 관련된 목사와 신도들이 일본군에 끌려가 적잖은 고초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후 교회는 건립 이후로도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지나면서 많은 역사적 기억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한국전 발발후 포화속에서도 예배를 걸르지 않음

▲ 한국전 발발후 포화속에서도 예배를 걸르지 않음



 그 중 하나가 앞에서 적은 바 처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교회였고, 한국전쟁이 발생한 뒤에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한번도 예배를 걸르지 않은 교회라고 합니다.

 지금은 교회 신도들을 이 조그만 교회에서 다 감당할 수 없어 교회를 새로 지어 그곳에서 예배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강경에 가시거든 근대문화유산인 이 북옥교회와 함께, 누군가가 그려 놓은 소박한 벽화들을 함께 감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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