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청년 장교시절 근무하셨던 곳
▲ 오천항 쪽에서 바라본 오천성 왼쪽 성곽
▲ 오천항 쪽에서 바라본 오천성 오른쪽 성곽
▲ 동서남북 4개의 성문중 유일하게 남은 서문 망화문(안에서 바깥쪽을 향해 본 모습)
▲ 망화문 밖에서 본 모습
▲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지 왼쪽으로 성곽이 둘러쳐져 있다.
▲ 성 안에 있는 진휼청
▲ 성곽에서 내려다 본 바다. 전망과 경계에 좋은 위치다.
▲ 성곽이 길다랗게 쌓여 있다
▲ 진휼청 왼쪽에서 바라본 바다.
▲ 성곽을 걷는 다른 관광객들
▲ 오천항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곽을 따라 돌아보면 해안가쪽으로 이어지는데 이렇게 전망이 우선 좋습니다. 바다를 관측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면서 오늘날에는 전망 좋고 경치 좋은 관광지 역할을 해 줍니다. 선조들 덕분에 말입니다.
오천은 백제때부터 회이포라는 이름을 가진 항구로 이용됐던 곳이라 합니다. 통일신라 당시에는 당나라와의 교역 창구로서 이름이 높았고 고려시대로 넘어오면서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오천항 일대를 지키는 수군이 주둔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수영이 설치된 것은 조선조 때입니다.
▲ 수영성 객사
▲ 객사의 삼문
▲ 더 가까이 다가가서 뒤에서 본 수영성 객사
▲ 객사 앞에 있는 역대 수사와 관리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들
앞서 본 서문에 해당하는 망화문과 진휼청이 있고 좀더 가면 길 건너편에는 수영성 객사가 남아있습니다. 객사 건물 앞에는 역대 수사와 벼슬을 지낸 관리들의 기리는 비석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천성은 성곽과 문화유물 뿐만 아니라 인접한 오천항으로도 유명합니다. 보령시의 어항 중 대천항에 이어 두번째로 규모가 큰 곳이고 전복, 바지락, 해삼을 비롯한 조개의 집합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으로 수출을 많이 하는 키조개의 산지로 유명하죠.
그래서 오천항에는 키조개잡이(일명 머구리) 배들이 많으며 한꺼번에 조개를 풀어놓으면 오천항은 파시가 열립니다. 오천항에 입항하는 키조개 물량이 1년에 70억원어치나 된다고 하니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가을철이 되면 억새가 유명한 오서산 등산을 즐기고 이곳 오천항에 들러 유명한 강개미회를 먹고 가려는 관광버스가 수시로 드나들기도 합니다.
의미 있는 역사 공부와 함께 먹을 것도 많고 볼것도 많고 친절하며 여유가 넘치는 보령입니다. 넓고 푸른 바다는 큰 가슴을 열어 여러분을 품에 안고 맞이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