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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충남의 자랑 소론의 영수 명재 윤증을 찾아

충남교육연수원과 함께하는 2013 기호유학 인문마당

2013.06.11(화) 14:01:19 | 계룡도령춘월 (이메일주소:mhdc@tistory.com
               	mhdc@tistory.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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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고등학교 교사 역사 창의체험 직무연수팀 30명이 충남역사박물관 그리고 충남교육연수원과 함께하는 2013 기호유학 인문학 포럼 '명재 윤증을 찾아 떠나는 인문학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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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대행 김정섭) 충남역사박물관(관장 오석민)은 충남교육연수원(원장 김한겸)과 함께 충남에 있는 중등학교 사회.역사과 선생님 외 30명과 6월 8일 부터 1박 2일간 제1기 역사 창의체험 직무연수가 2013년 기호유학 인문학포럼 '명재 윤증을 찾아 떠나는 인문학 여행'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전체 6회의 문화.문학.역사 창의 체험 직무 연수 중 4번째인 이번 행사에는 충남의 역사,사회과 외 30명의 증등학교 교사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날 탐방 프로그램은 충남교육연수원 제1기 역사 창의체험 직무연수팀 30명이 논산의 명재 윤증선생 고택에서 1박 2일의 고택스테이를 하며 충남 기호유학 관련 향교와 서원을 들러 명재 윤증선생의 흔적을 찾아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탐방이 주를 이루는 프로그램으로 사회.역사과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있어서 그 의미가 더 컸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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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충청의 기호유학 문화와 소론의 영수였던 명재 윤증선생이 있게 한 파평윤문 노정공파의 가계를 알아가며 유교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이번 행사는 공주에 위치한 충남역사박물관 민정희 운영팀장의 안내로 역사박물관 관람을 시작으로 충청의 명가인 논산 명재고택에서 윤완식선생과 논산문화원 류제협원장으로부터 고건축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과학적인 고택의 모습과 그 배경에 대해 듣고 공주이씨정려, 노성향교, 궐리사 이삼장군고택까지 탐방하고 종가음식만들기체험과 전통 매듭 공예 체험(브롯지)을 한 후 고즈넉한 한옥 고택에서 펼쳐지는 2013기호유학인문마당 두번째 마당 공연을 보는 시간을 가진 후 고택에서의 하룻밤 을 보낸 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종손과의 대화를 통해 윤완식 선생이 들려주는 고택과 생활 예절 등 종가의 삶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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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전통놀이 체험에서는 쌍육놀이를 통해 1등을 한 팀에게 양반가의 독상 체험을 할 기회를 주는 등 흥미롭게 진행되었고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은 2011년 12월 보물로 지정된 노강서원 강당에 들러 서원의 역활과 유교의 영향에 대해 듣고 보았으며 파평윤문 노종파의 사학이었던 종학당에 들러 설립 배경과 운영, 결과 등에 대해 알아본 후 전체 일정을 마쳤습니다.
 
이날 연수단은 충남역사박물관에서 모여 박물관의 유물을 살펴 근.현대사와 당시대의 자료들을 보며 새삼 추억도 떠 올려 보고 새로운 모습들에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는데 박물관 관람 후 각자 선생님들의 소개가 있고 공주시내에서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고 난 뒤 시작된 유적 답사는 제일 먼저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한 윤증 명재선생의 고택인 명재고택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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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 윤증선생은 사실상 기호유학을 대표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며 소론의 영수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열린 공간으로 대한민국 건축학도들의 성지이기도 한 이곳 명재고택은 300여년전 건축된 건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과 비교해도 오히려 더 과학적이랄 수 있는 건축 기법들이 총 동원되어 지어진 한옥으로 당시의 실학적 가치와 과학적 수준, 예술적 취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살아있는 건축학 박물관이라고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지금 선생님들이 모여 있는 머리위로 열린 창은 팔베개를 하고 마루에서 내다 보게되면 잘 자란 소나무와 정자나무위로 흐르는 구름이 보여 마치 선계에 있는 듯 착각에 빠질 정도로 풍경을 보여주는데 요즘의 풀 HD 화면인 16:9의 황금비율로 만들어져 있고 바깥에서 누워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배려한 창턱은 가히 예와 실학이 겸비된 최상의 공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과학적이고 인본주의적 배경을 깔고 있는 건축물의 개소 하나하나에 대해 논산문화원 류제협원장님으로부터 설명을 듣는 내내 선생님들의 탄성이 그치지 않았고, 기술관련 선생님들은 횡재라도 한 듯 신기해 하는 모습이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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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협논산문화원장과 함께 시작된 명문가 탐방은 명재고택의 입구에 자리한 소론파 거두 윤증(尹拯 1629~1714)선생의 모친이자 윤선거의 처인 공주이씨(1607~1637)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인 열녀 공주이씨정려각에 들렀는데, 병자호란 때 남편 윤선거를 따라 시어머니와 함께 강화도로 피난 갔던 공주이씨는 강화도가 청군에 의해 함락되자 오랑캐의 손에 죽지 않겠다 하여 그 시대 최초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입니다.
 
공주이씨정려 탐방을 마친 일행은 윤증선생의 제자였던 이삼장군고택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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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장군고택은 작년에 문화제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고택체험 시설로 활용되고 있는데 백일헌 이삼장군은 누구일까요?

이삼(李森, 1677~1735)은 자는 원백(遠伯), 호는 백일헌(白日軒)이며 본관은 함평인데 지금의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서 태어나 명제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숙종 때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정주목사를 거쳐 함경남도병마절도사를 지내면서 군제 개혁에 관심을 기울였고, 경종 때 소론으로서 우포도대장, 총융사, 어영대장을 역임하였으나 영조 때 노론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풀려나 훈련대장으로 승진하였고, 이후 어영대장이 된 사람으로 이인좌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2등공신에 책봉되었고, 영조 5년(1729년)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이삼의 사후 영조가 “충관백일지의(忠貫白日之義)이니 백일헌(白日軒)”이라 하여 손수 글을 내렸다고합니다.

또한 이삼은 지리의 이용과 기계의 제조, 여러 무술에 두루 능통하였으며, 저서로는 [관서절요(關西節要)]가 있는데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51에 위치한 백일헌 이삼장군고택은 1985년 충남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어 있고 2012년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삼장군이 이인좌의난(1728)을 평정한 공으로 영조로부터 함은군(咸恩君)에 봉해지면서 건립비가 하사되어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삼장군 고택을 나와 간 곳은 명재고택과 이웃해 있는 노성 궐리사[魯城 闕里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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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 궐리사 [魯城 闕里祠]는 1978년 충청남도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된 곳으로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294에 있는 공자(孔子)의 유상(遺像)을 봉안한 영당(影堂)으로 궐리[闕里]는 노나라의 곡부(曲阜)에 공자가 생장한 ‘궐리촌’이라는 명칭에서 유래된 것으로, 국내에서 '궐리'라는 명칭을 쓰는 곳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곳은 충청도의 이산(尼山 현 노성)과 경기도 수원(水原 현 오산) 그리고 진주(晉州)에 있으며, 노성(이산)의 궐리사의 경우 유생들에 의해 건립되었고, 수원의 궐리사는 공자의 후손인 공씨(孔氏)가 우리 나라에 건너 와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라 하여 정조 16년(1792) 10월 정조가 궐리사를 짓도록 명하여 지어진 곳이고 진주 궐리사는 연대가 불명확하다고 합니다.
 
원래 노성의 궐리사는 1687년(숙종 13) 송시열(宋時烈)이 궐리사를 건립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뒤 1716년(숙종 42)에 권상하(權尙夏), 김만준(金萬俊), 이건명(李健明) 등 제자들이 노성산 아래 궐리촌(闕里村:현 위치의 서쪽)에 궐리사를 건립하고 이듬해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였으며 1791년(정조 15)에는 송조5현(宋朝五賢)의 영정을 봉안하였으나 1805년(순조 5) 관찰사 박윤수(朴崙壽) 등에 의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의 건물은 중건, 이건 당시 규모가 축소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명 춘추사(春秋祠)라고도 불렸다고 하는데 궐리사 외부에는 공자의 중국 후손들의 청에 의해 부지가 조성되어 공자외 석상 등이 한국으로 왔으나 석상받침의 석질이 좋지 못해 파손되어 한국에서 다시 제작해 지금의 모습으로 석상들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유림에서는 선인들을 높이 받들고 가르침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모여 석전(釋典)을 봉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충남에만해도 몇 곳의 자리에서 개별적으로 제례가 봉행된다고 하는데 같은 날 치뤄지는 제례가 왜 한곳에서 통합되어 집행되지 않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국가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제례가 통합되어 한 곳에서 제대로 된 모습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해 보았습니다.
 
이어 윤증고택 안채마당에서 가진 떡 전골, 가지소박이, 국말이, 타래과 등 명재가문과 이삼장군가문의 전래 종가음식 체험은 선생님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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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날 함께 한 선생님들 중 남자 선생님들만 따로이 모아 가지소박이 김치 담그기를 실시했는데 강사인 윤증가 종부의 설명이 좋아서 였는지 의외로 좋은 솜씨들을 발휘해 주변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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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으로 완성된 오이 아닌 가지소박이(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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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팀이 만든 타래과와 떡전골, 그리고 가지소박이는 저녁식사 시간에 상에 올려진다고하여 남겨 두고 노서서재로 향했습니다.
 
초연당(超然堂)이라는 현판이 붙여져 있는 노서서재에서는 우리 전통 매듭 방법 중 하나인 가락지 매듭을 응용한 브로치 만들기가 이삼장군의 후손인 이지영선생님과 성함을 모르는 선생님 한분이 함께 지도를 해 주셨는데 모두들 처음 하는 매듭이라 자주 묻고 또 하고를 반복해 한동안 학생처럼 진지하게 배워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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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매듭 체험을 마치고 명재고택에서 마련한 천연의 재료로만 만든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뉘엿뉘엿 해가지는 시간 시작된 2013 기호유학 인문마당 두번째마당인 "기호유학 인문마당 '행복'을 노래하다" 공연을 감상하는 특별한 기회를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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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다큐멘터리 영화로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국립전통예고 청소년 합창단 두레소리’(함현상 지휘)가 문을 연 1부 ‘마음 씻기’, 국악인 김영길(아쟁), 김경아(피리), 추정현(가야금), 윤호세(장구)와 재즈피아니스트 송지훈이 흥괌 ㅓㅅ을 돋운  2부 ‘행복한 소풍’, ‘어우러짐’의 미학으로 관객과 함께 호흡한 가·무·악(歌·舞·樂) 일체의 경지를 추구하며 연희의 새 장을 열어가는 청배 연희단의 3부 ‘희망을 새기고...’를 끝으로 2시간 여 자연 속에서 숨쉬며 박수치고 환호했던 공연이 막을 내리고 난생처음 고택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게 된 선생님들은 들든 듯 갖자의 방으로 이동하고, 좋은 공기 속에서 이룬 단잠이라서 일까요? 다들 새벽같이 일어나 노성산성 등 이곳 저곳 주변을 다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고택을 유지하며 종손으로서의 역활을 다하고있는 윤완식 종손으로부터 예와 절이 사라져 버린 지금의 세태를 되돌아 볼 바른 생활과 마음 자세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종손과의 대화 '윤완식 선생이 들려주는 고택이야기'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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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식 선생이 둘째로 태어나고 자라서 종손이 되게 된 연유, 명재고택을 국가와 도에 헌납하고자 했으나 무산된 이야기 등 윤완식 종손이 고택을 지키기 위해 쏟은 열정과 매년 중어드는 서울집의 규모와 이로 인한 가족간의 갈등 등 300년이 넘은 씨된장과 씨간장을 사용해 맛을 이어오는 된장과 간장을 판매하게 된 사연 등 책으로 써도 몇권은 넘을 종가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명재고택에서 판매하고 있는 된장과 간장은 교동 전독간장(校東전독간장)이라고 부르는데 윤증(尹拯, 1627~1714)선생 종가에서 300여년 전부터 전해 오는 장류이며 교동(校東)이라는 명칭은 노성향교가 고택 옆으로 이전해 오면서 향교의 동쪽에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붙여졌으며, 전독간장은 항아리(독)째 전해져 내려와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판매를 하게 된 이유가 맛의 나눔에도 의의가 있지만 고택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작으나마 보탬이 되길 희망해서라고 합니다.
 
이날 간장과 된장은 함께 한 선생님들의 다양한 재치에 맞게 날개 돋힌 듯 팔렸다는 전설과 함께 그 중 가장 확실한 지혜는 자신이 담근 장에 부어 300년된 씨간장의 맛과 같이 만들어 대를 잇겠다는 것이었는데 살림꾼 선생님 다운 훌륭한 생각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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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손과의 대화를 마치고 다시 노서서재에 모인 일행은 우리의 전통놀이라 일컫는 '쌍육'놀이를 배웠습니다.
 
충남역사박물관 조민희선생으로부터 배워서 직접 하게된 이 놀이는 백제 때부터 존재 하였다고하고 놀이 방법도 여러가지라고 하는데 처음 해 보는 놀이라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 지를 모르겠지만 아무튼 선생님들은 말을 거구로 보내기도 하는 등 폭소를 자아내며 하긴 했지만 금방 배워서 잘 하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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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쌍육놀이는 위 사진의 좌측 젊은 여선생님 팀이 우여곡졸끝에 1등을 하였고 그 부상으로 사랑채 마루에서 별도의 상차림으로 식사를 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사진 찍느라 참여도 못한 계룡도령은 마냥 부럽 부럽이었습니다.
 
전통놀이 체험과 맛있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역사 창의체험 직무연수팀은 명재고택의 종손과 함게 기념촬영을 하고 2011년 12월 강당이 보물로 지정된 노강서원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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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뿔.싸...
한창 공사중입니다.

무슨 공사냐구요?

보물에 걸맞게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해 감시카메라 시설과 소방시설을 설치하는 것인데 강당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것만해도 커다란 행운이랄 수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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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강서원[魯岡書院]은 1974년 9월 1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 12월 30일 보물 제1746호로 지정된 곳으로 윤황(尹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김수항(金壽恒)의 발의로 1675년(숙종 원년)에 창건하였으며 1682년(숙종 8)에 ‘노강’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윤황의 위패를 모시다 석호(石湖) 윤문거(尹文擧)를, 그후 1723년(경종 3)에는 명재(明齋) 윤증(尹拯)과 윤선거(尹宣擧)를 추가 배향하였다고합니다.
 
1717년(숙종 43) 사액현판이 철거되었다가 1722년(경종 2)에 회복되었고 1781년(정종 5)에 나라에서 중수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보존되었던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라고 하는데 강당은 지붕의 형태가 2중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건물의 측면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지붕은 겹처마의 맞배지붕이지만 박공 아랫부분에 내림지붕을 덧붙여 둔 것이 특징입니다.
 
강당 중앙의 3칸이 대청으로 꾸며져 있고, 그 좌우에 각각 2칸 규모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고 툇마루 밑으로는 함실아궁이를 두고 있는데 아래 사진의 하얗고 큰 문이 바로 온돌방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사진에 보이지 않지만 반대편으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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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지만 흐르는 땀을 훔치며 열심히 설명해 주는 류제협논산문화원장과 함께 일행은 파평윤문 종친 학교인 종학당으로 향했습니다.
 
종학당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파평윤씨의 문중서당으로 글자 그대로 일가(宗) 사람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던(學) 집(堂)으로 인조 후반기에 윤증의 큰아버지인 윤순거(尹舜擧)가 세운 일종의 집안 학교로 일반 서원이나 서당과는 다르게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을 두고 학칙도 정하여 시행하였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이곳에서 중인들까지 교육을 했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까지 포용하던 파평 윤씨 노종윤문 집안의 학문 창달에의 깊은 뜻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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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창립 연대는 최근 숭정 원년의 상량문이 발견되어 1628년경 童土 尹舜擧(1956-1688)가 건립한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으며 16세기 중반 니산에 터를 잡은 파평윤씨 노종윤문이 불과 2-3세대 만에 일약 조선의 명문가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바로 종학당의 문중교육에 힘입은 바 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평윤씨 노종윤문의 사립학교인 종학당에서 끝을 맺은 충남교육연수원 역사 창의체험 직무연수 제1기 2013 기호유학 인문학 포럼 '명재 윤증을 찾아 떠나는 인문학 여행'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서 주관한 것으로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충남역사박물관이 충남교육연수원과 함께 충남에 산재한 기호유학 관련 역사문화자원의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의 교육에 임하고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하면서 이를 통해 자라는 학생들에게 되 알림되게하여 충청권 문화와 인물 그리고 유적에 대해 제대로 알려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하는 행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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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이야기가 있는 충남 명가 탐방'의 경우 충남역사박물관 측에서는 매 주말에 진행되는 연수라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휴일을 반납한 채 하루의 쉼도 없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강행군인데 충청남도교육연수원과 함께 학생들로 바로 이어지는 초.중.고 교사들의 '2013 역사ㆍ문화ㆍ문학 창의체험 직무연수'라 더 큰 빛을 발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한층더 의욕을 돋우는 모습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충남교육연수원에서 교사의 수업 능력 및 창의적 체험활동 지도 능력을 함양하고 직무연수로 학교 현장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방편으로 참여 중심의 체험식 연수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개인 역량 강화를 통해 창의적 체험 활동 지도 역량 강화로 학교에 대한 교육가족의 만족도를 제고하기 위한 활동인데 프로그램을 함께 한 중등학교 역사 사회과  교사외 30명은 "충남에 이렇게 훌륭한 인물과 가문이 있고, 조선시대를 이끈 유학의 문화적 유산들이 산재해 있는지 미처 몰랐다며 충남의 곳곳에 다양하게 자리한 고택과 그 고택 속에 살아 숨쉬는 기호유학과 유학자들의 실천적 삶의 모습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안타깝기도 하며 반갑기도 하다며 이번 연수를 계기로 학생들에게 보다 폭 넓은 충남의 문화와 정신에 대한 긍지를 일깨워 훌륭한 충청인, 더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재목으로 자라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기여하겠다"며 입을 모았습니다.
  
수업 능력 및 창의적 체험활동 지도 능력을 함양을 위한 '2013 역사ㆍ문화ㆍ문학 창의체험 직무연수'에 참여한 모든 선생님들과 휴일조차 반납하고 충남의 바른 문화를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충남역사박물관 운영팀의 노고에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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