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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관에 참배하다

[도민리포터] '호국 보훈의 달' 홍성의 장군 기념관·생가지 찾아

2013.06.02(일) 14:01:11 | 이영희 (이메일주소:dkfmqktlek@hanmail.net
               	dkfmqktlek@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꼭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아니라 해도 우리에게 애국지사들은 이 땅을 지켜낸 간성이시기 때문에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당신의 고귀한 정신과 자세를 배워야 할것이다.

 견위수명 (見危授命),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

 항일 독립군과 그 지도자인 애국지사들이 몸소 실천한 항일운동 정신이 바로 이런것이라 생각한다.

 어제, 홍성으로 뜻 깊은 발걸음을 했다.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관과 생가지를 방문해 참배하고 돌아왔다.

 장군님의 기념관에는 당시에 장군께서 활약했던 청산리 대첩등을 비롯한 여러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고, 바로 옆 생가도 잘 보존하고 있었기에 가정에 학생 자녀가 있는 분들은 이번달에 꼭 한번 찾아 들러 보실 것을 권해 드린다.

 기념관에 들어가 보니 당시에 독립군들이 사용하던 총과 무기, 그리고 장군께서 독립운동과 함께 일본군과 맞서 전투를 벌이면서 활동했던 여러 자료와 문서, 유물들이 보관돼 있어서 큰 공부가 되었다.

 장군께서는 당시에 주로 만주에서 독립군을 만들어 활동 했기 때문에 그때 사용했던 훈련교범을 비롯해, 서신, 전투결과보고서 같은 소중한 자료들이 눈에 띄였다.
 그리고 항일 무장투쟁활동과 관련된 여러 문서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을 들러 보며 장군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장군을 도와 항일 투쟁을 전개했던 독립군의 업적을 다시금 돌아보는 의미도 컸지만 만주에서 일제에 항일 무장투쟁을 벌렸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돌아 볼수 있었다.

김좌진 장군 기념관

▲ 김좌진 장군 기념관


기념관 정면에 세워져 있는 장군의 흉상

▲ 기념관 정면에 세워져 있는 장군의 흉상


 먼저 기념관은 이렇게 기와지붕의 널찍한 건물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김좌진 장군의 늠름한 흉상이 서 있었다. 감사하고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90도 숙여 인사를 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독립군들이 사용했던 총기

▲ 독립군들이 사용했던 총기


독립군들이 쓴 권총

▲ 독립군들이 쓴 권총


 총이다. 독립군들이 사용한 장총인데 무기류는 이렇게 장총과 바로 옆의 권총 두종류와 칼이 전시돼 있었다.

공보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
 

대한독립

▲북로사령부 직원 명단


대한독립선언서

▲ 대한독립선언서


 여기엔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와 대한독립 선언서, 북로사령부 직원명단, 대한독립선언서  등 여러 문서들이 있었다.

청산리대첩 전투결과 보고서

▲ 청산리대첩 전투결과 보고서


 특히 그중에 너무 반갑고 눈에 띄이는 문서는 바로 장군의 위대한 업적인 청산리전투결과 보고서였다. 

  독립군을 막기 위해 1920년 10월에 일본군이 간도에 침입하자, 장군은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연합해 부대를 합치고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게 청산리대첩이다.

 이후 일본군의 반격을 피하여 만주 밀산으로 부대를 이동한 북로군정서는 대한독립군 등과 연합하여 대한 독립군단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전시관에는 이밖에도 많은 자료가 있지만 다 설명드리기는 어렵다. 직접 오셔서 참배하시기를 바라며, 이어서 장군의 생가지로 발길을 옮겼다.

생가 기와집

▲ 생가 기와집


장군께서 직접  쓰신 서한

▲ 장군께서 직접 쓰신 서한
 

장군의 초상화와 병풍이 둘러져진 방

▲ 장군의 초상화와 병풍이 둘러져진 방


 생가는 기와집 안채와 행랑채가 있었다. 집 안에는 장군의 서한과 안방에는 사진, 그리고 병풍이 둘러쳐져 있는 모습으로 보존돼 있었다.

 행랑채 한쪽에는 옛 농가 모습 그대로 멍석과 대 빗자루 같은 것들이 있었다.

 생가지 관람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다시 멀리 바라보니 푸른 맑은 하늘 아래 잘 가꿔진 잔디밭속 너머에 있는 생가가 보였다. 이런 평화로움 역시 장군같은 애국 지사들의 견위수명 정신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행복 아닐까 생각한다.

장군의 우국충정어린 시 '단장지통'

▲ 장군의 우국충정어린 시 '단장지통' 시비


 단장지통, 장군의 우국충정이 그대로 서린 시다.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칼끝에 찬서리가 고국생각을 돌구누나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말인가
단장의 아픈마음 쓰러버릴 길 없구나


 나라를 잃은 애통함, 그 참을수 없는 울분을 어찌 못하여 시로써 쓴 이 글을 보면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다.

장군의 기념관 건립기

▲ 장군의 기념관 건립기


 마지막으로 김좌진 장군 생가지 성역화기를 읽으며 더 자주 찾아 뵙지 못한 못난 후손의 부족함을 반성했다.

 장군은 1930년에 만주 중동선 산시역 부근의 정미소에서 작업을 하시던 중 일제의 사주를 받은 자객 박상실이라는 사람에 의해 통한의 암살을 당하셨다.

 이 땅에 큰 별 백야 김좌진 장군. 
 이번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 충남이 낳은 위대한 민족영웅을 다시금 생각하며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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