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사 고택
추사 김정희가 태어나고 자란 곳입니다.
김정희의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 대왕의 사위가 되면서, 예산과 서울에 저택을 하사받았는데
예산은 조상의 터전이 있는 곳이라 성묘와 독서를 위해 자주 왕래하며
이곳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 대문에서 바라본 안채와 사랑채
▲ 세한도
평생 고생을 모르고 살았던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생활에서
오직 제자 이상적이 보내주는 책을 벗 삼아 지내면서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자신도 어려운 지경이 되어서야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이상적에게 고마운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그린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
이상적의 의리를 칭찬하며 겨울에도 늘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는 내용과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라는 뜻의 인장을 찍어 보낸 세한도
▲ 기둥마다 걸려 있는 칠언절구
▲ 안채
안채는 ㅁ자 모양으로 6칸 대청에 안방, 건넌방, 부엌, 광 등을 갖추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안채 내의 부엌은 난방용으로만 쓰이고
요리를 위한 부엌은 따로 두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왕실주택 구조로서, 화순옹주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랍니다.
▲ 우물
가문 대대로 이용해 온 우물입니다. 민규호가 쓴 '완당김공소전'에 따르면 어머니 유씨가 임신한 지 24개월 만에 김정희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무렵 우물물이 갑자기 마르고 뒷산인 팔봉산의 나무들이 시들었다가
김정희가 태어나자 우물물이 다시 샘솟고 나무들이 생기를 되찾았다는 우물입니다.
▲ 추사 김정희 인보
▲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입니다.
추사 김정희는 금석학 연구에 몰두하여 금석 자료를 찾고 보호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북한산순수비(北漢山巡狩碑)를 발견하고 해독하였다는 기록도 있답니다.
▲ 추사 김정희와 판전
추사의 마지막 작품, 봉은사에서 화엄경 목판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전각의 현판으로
추사는 71세의 병든 몸을 일으켜 마지막 기력을 쏟아 완성하고
3일 뒤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 고택 돌담길
고난의 생활에서도 굴하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켜
추사체(秋史體)라는 새로운 서체를 창안한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을 찾아
불후의 명작을 남긴 추사 김정희 선생의 오묘한 조화 속으로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