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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말하다

15일 예산 추사고택에서 유홍준 교수 특별 강연열려

2012.09.17(월) 02:02:04 | 계룡도령춘월 (이메일주소:mhdc@tistory.com
               	mhdc@tistory.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추사김정희의삶과예술을말하다 1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대행 김정섭]은 2012 기호유학 인문학 포럼 제4차 행사를 15일 토요일 오후 6시 30분부터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소재 추사묘소 앞 잔디밭에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로 유명한 유홍준 명지대 교수를 초청해 특별강연회를 가졌습니다.

 

추사 김정희선생의 묘역에서 열린 유홍준교수의 특강

▲추사 김정희선생의 묘역에서 열린 유홍준교수의 특강


명품으로 잘 알려진 맛있는 예산사과가 익어가는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들녘을 바라보며 시작된 이번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열린 강연회는 충청남도와 예산군,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주최하고 충남역사발물관이 주관[관장 오석민]한 행사로 이날 유홍준 교수는 조선후기의 실학자이자 예술가인 김정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풀어놓았는데 열정이 담긴 특강은 종료 예정시간이었던 8시를 훌쩍넘기고 9시경에야 추사의 벗 초의선사의 추모시 낭독으로 아쉬움을 남기고 끝맺음을 했습니다.

 

추사김정희의삶과예술을말하다 2

 

추사 김정희의 묘소를 바라보며 자리한 300여명의 청중은 숨을 죽이고 특강을 들으며 한반도 최초의 한류인 추사 김정희를 서예가만이 아닌 시인, 예술가로 알아가는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추사 김정희 기념관에서 유홍준교수와 함께 한 2012인문마당 관계자들

▲추사 김정희 기념관에서 유홍준교수와 함께 한 2012인문마당 관계자들


역사와 유물, 그리고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예산의 지역역사를 톺아보는 예산관광시설사업소[소장 이무희]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그리고 충남역사박물관 팀의 열정으로 이루어진 시간으로 작은 움직임도 없이 함께 한  청중들의 훌륭한 경청자세 또한 결실의 계절 가을을 한층 더 보람찬 시간으로 만들며 추사 김정희와 함께 함에 커다란 감동으로 자리했습니다.

 

청중들에 둘러싸여 저서에 사인을 해주는 유홍준교수

▲휴식시간에도 청중들에 둘러싸여 사인을 해주는 유홍준교수

 

특강 중 잠시의 휴식시간에도 유홍준교수의 저서인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를 들고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서는 등 잠시 쉴 틈도 주지 않는 등 유홍준교수의 인기를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특강 중인 유홍준 교수

▲특강 중인 유홍준 교수

 

유홍준 교수는 지난 2002년에도 이곳 추사고택에 특별강연회를 갖은 바 있어 이번이 두 번째로 알려졌는데 이날 강연에 나선 명지대 미술사학과에 재직 중인 유홍준 교수는, 성균관대 대학원 예술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 영남대 박물관 관장, 3대 문화재청장 등을 역임했으며 주요 저서로는 베스트셀러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6’, ‘조선시대 화론연구’, '화인열전' 등이 있습니다.

 

늦은 시간임에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귀담아 듣고 있는 청중

▲늦은 시간임에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귀담아 듣고 있는 청중


[추사 김정희의 발자취]

1786년   6월초 : 예산에서 이조 판서 김노경의 큰아들로 태어나다. 손이 귀한 터에 태어나서 가족들이 몹시 기뻐함

1793년   7세때 : 집 대문에 '입춘대길'이라고 쓰다. 이 글씨를 보고 지나가던 영의정이 집에 들러 감탄을 표하다

1800년 14세때 : 북학의 대학자 박제가로부터 한문과 서예를 배우다.

1081년 15세때 : 사촌 형 교희의 부인인 한산 이씨의 사촌 형제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다.

1806년 20세때 : 부인 한씨가 죽다. 그후 3년이 지나서 예안 이씨를 부인으로 맞이하다.

1810년 24세때 : 생원 시험에 합격하다. 아버지 김노경이 동지 부사로 임명되어 연경으로 가자, 자제군관으로 아버지를 따라가다. 연경에서 옹방강, 완원 등 대학자를 만나 사제지의를 굳게 맺다.

1816년 30세때 : 새로운 고증학적인 경학관을 담은 '실사 구시설'을 짓다. 이 글은 옹방강과 완원의 이론을 참고하여 나름의 학문적 성과를 정리한 것이다.

1817년 31세때 : 북한산에 올라가 진흥왕 순수비를 확정하고, 이를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다

1826년 40세때 : 충청 암행어사가 되다. 아버지 김노경이 예조 판서가 되다.

1827년 41세때 : 의정부 검상을 거쳐, 예조 참의에 오르다.

1830년 44세때 : 아버지가 탄핵을 받아 고금도로 귀양을 가다

1835년 49세때 : 초의 선사와 편지로 사귀기 시작하다.

1837년 51세때 : 50세에 병조참판,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을 거쳐, 이 때에 형조 참판이 되다.

1840년 54세때 : 중상과 모략을 받아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다. 9월 2일, 서울을 떠나서, 9월 27일에 제주로 가는 배를 타다. 배를 탄 지 하루만에 제주의 화북진에 도착하다.

1845년 59세때 : 헌종이 원하여 편액을 써서 보내다.

1848년 62세때 : 귀양에서 풀려 나오다.

1851년 65세때 : 함경도 북청으로 다시 귀양을 가다.

1852년 66세때 : 귀양에서 풀려 나오다.

1856년 70세때 : 10월 10일, 과천에서 숨을 거두다.

 

[조선왕조실록 졸기]

철종 7년, 10월 10일 갑오. 전(前) 참판 김정희가 죽었다.

 

김정희는 이조판서 김노경의 아들로 총명하고 기억력이 투철하여 여러 가지 책을 널리 읽었으며, 금석문과 그림과 역사에 깊이 통달했고, 초서·해서·전서·예서에서 참다운 경지를 신기하게 깨달았다.

 

때로는 하지 않아도 될일을 잘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비판할 수 없었으며, 그의 작은 아우 김명희와 더불어 훈지처럼 서로 화답하여 울연히 당세의 대가가 되었다.

 

젊어서부터 영특한 이름을 드날렸으나 중도에 가화(家禍)를 만나 남쪽으로 귀양가고 북쪽으로 유배가며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혹은 세상의 쓰임을 당하고 혹은 세상의 버림을 받으며 나아가기도 하고 또는 물러나기도 했으니 세상에선 (그를) 송나라의 소동파에 비교하기도 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서 열고있는 '2012년 기호유학 인문마당'은 다섯번째 마당으로 10월 13일(토) 논산 돈암서원 박범신(소설가)의 '왜 인문학을 말하는가?' 특강을 진행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문의 : 041-856-8608(충남역사박물관 박물관운영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http://www.cih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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