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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4도민이 함께 사는 우리는 행복한 사투리 가족

2012.05.04(금) 11:52:01 | 이종섭 (이메일주소:dslskj55@hanmail.net
               	dslskj5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4도 사투리가 공용되는 엄청 재미난 가정이다.  아버님은 6·25때 북한에서 내려오셔서 고향이 함경도이고 나는 고향이 충청도고 아내는 전라도다.

내가 어릴적에는 아버지로부터 함경도 사투리를 적잖게 들었다.

아버님은 가끔 “아지방이 어찌 알고서리 찾아왔습매?(아저씨가 어찌 알고 찾아오셨어요?)” 라던가, 혹은 “그 안깐 고생으 하덩이 병이 나?슴!(그 안사람이 고생을 하더니 병이 났어요.)”라는 말들을 쓰곤 하셨다.  이럴때마다 나는 마치 달나라에 와 있는 외계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ㅎㅎ.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장성하여 나도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은 뒤 맞벌이 하는 우리가 당장 아이를 맡긴 곳이 다름아닌 경상북도 상주였다.

그곳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살고 계셨고, 아이를 맡기는 비용이라도 아끼자는 생각에 아이가 한참 말을 배울 시기인 3살때부터 무려 3년간이나 맡긴 것이다. 결국 아이의 말투는 완전 ‘겡상도 가시나’가 되었다.

“아따 추버래이(아유 추워).”

말을 곧잘 하는 다섯 살 딸내미의 춥다는 표현이 이정도이니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처음엔 배를 잡고 웃었다. 이렇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손녀의 언어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아이의 외할머니이신 나의 장모님이시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위와 딸을 대신해 손녀를 맡아 키우신 덕분에 이녀석 말이 온통 사투리다.

“할아버지 퍼뜩(빨리) 가자.”, “아이쿠 무시래이(무서워).”

다섯 살 꼬맹이가 하는 말의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보니 아이의 별명은 사투리 공주가 되어버렸다. 손자 키운 공은 없다고 했던가! 나는 사투리 쓰는 딸이 나중에 어린이집에 가면 놀림을 받는다며 걱정을 했다.

“아그야, 그렇게 사투리 써부리믄 또래 애덜이 허벌나게 놀려부러야”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섞은 아내의 걱정에 나는 기가막혀 하며 더 놀랜다. 아내 말투 자체가 전라도 토백이 사투리니 아이가 쓰는 경상도 사투리나 아내의 전라도 사투리나 오십보 백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는 완벽한 표준어를 쓰느냐? 그것도 아니다. 충청도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의  사투리 역시 만만치 않다.

“너, 그 사투리 외할머니한테 배웅겨? 그거 자꾸 쓰믄 안되는디. 나중에 학교 가믄 애덜이 놀릴거 아녀. 촌시럽다고.”하는 나의 말솜씨 역시 장난 아니게 사투리스럽다. ㅋㅋ

이제부터라도 조심해야지 하면서 표준말을 사용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아내가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 “아니지 아니지 아녀부러. 자꾸 이러면 애가 허발나게 놀림 당할거인디~잉” 그러면 “엄마 개안타(괜찮다)”라고 오히려 딸내미가 아내를 다독인다.

사실 딸 아이가 사투리를 쓰는 게 걱정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들은 말을 그대로 쓰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세련되고 바른 표준말은 아니지만 구수하고 투박한 사투리를 쓰는 우리 꼬맹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사투리라는게 뭔가. 엄밀히 따지면 나쁘고 촌스럽고 어법에 어긋난다는 의미가 강한 <사투리>란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냥 토속 지역언어일뿐이다.
 
지역언어와 방언은 그 시대,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오랜 전통과 사상을 담고 있기 때문에 소중한 문화재적 자산으로 인정 받는다.
 
과거에는 정말 표준어라는 무기로 사투리를 쓰지 말자고까지 했으나 그런 정책 자체가 무지한 발상이라는걸 뒤늦게 깨닫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역언어 자체를 인정하고 소중하게 보존하지는 쪽이다.
 
그 덕분에 우리 집은 아이들이 다 큰 지금도 항상 4도민이 서로의 사투리를 자랑하며 구수한 입담으로 하루를 화목하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도 어쩌면 우리집만이 가지고 있는 행복일지 모른다. 지역감정도 허무는 사투리 가정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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