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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역사

충남의 전통사찰 11. 세속의 번다함을 털어내는 공주 갑사(甲寺)

화엄십산 불교 문화유산의 보고

  • 위치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
  • 등록일자
    2025.05.20(화) 12:02:20
  • 담당자
    휘리릭 (mch7775@hanmail.net)
  • 명상학교 사용되는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의 간성장 풍광,

    ▲ 명상학교 사용되는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의 간성장 풍광,



    계룡산 줄기 흘러든 바람은 담장을 쓰다듬고

    연초록 첫 물을 품은 나뭇잎들은 조용히 흔들립니다.

    강당 위로 고요히 햇살이 내릴 때

    법당 앞 돌계단에는 연초록 햇살이 기도처럼 쌓이고

    대웅전 기왓장 사이로 스미는 초여름에

    양 갈래 계곡으로는 맑은 물소리가 흐르고

    그 물소리에 귀 기울이면 천년의 그림자 지나가듯

    고찰의 숨결이 더운 숨결보다도 먼저 마음을 맑히고

    그늘보다 깊은 그리움으로 세속의 번다함을 털어냅니다.

    황매화 꽃이 지고, 나무는 잎을 채우니

    갑사의 침묵에서 내 안의 오래된 소리를 다시 듣습니다.

    천년의 이름은 아직도 세세히 피어납니다.


    갑사(甲寺)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자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입니다. 계룡산 연천봉으로부터 서북쪽 탁 트인 자리에 양쪽으로 흐르는 계곡과 울창한 수목이 감싸 산사의 운치가 물씬 풍기는 곳입니다. 공영주차장 입구 야영장에서 시작되는 생태 길은 전국에서 가장 큰 황매화 군락지를 이루고 봄마다 ‘황매화 축제’로도 유명합니다. ‘춘 마곡 추 갑사(봄은 마곡사가 가을은 갑사가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듯 가을이면 계곡 사이 펼쳐지는 형형색색 단풍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사찰길이 열립니다.


    전국 최대 황매화 군락지인 공주 계룡산 갑사.

    ▲ 전국 최대 황매화 군락지인 공주 계룡산 갑사.


    갑사 창건에는 여러 설이 전해집니다. ‘갑사사적비(1659년 세운 갑사 창건과정과 역사를 적은 비)’ 등에는 6세기 신라 진흥왕 당시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혜명선사가 증축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420년(백제 구이신왕 원년) 아도화상 창건설과 556년(신라 진흥왕 17) 혜명선사 창건설도 함께 전해집니다. 삼국유사에는 갑사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밝히고 있습니다. 679년(신라 문무왕 19) 의상대사가 당우 천여 칸을 중수해 화엄종 10대 사찰로 번창했다는 기록이 신라 말기 문장가 최치원의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서도 해동 화엄대학(華嚴大學) 십산(十山)에 갑사가 포함됩니다. (화엄십산은 계룡산 갑사와 중악공산 미리사, 남악 지리산 화엄사, 북악 부석사, 강주 가야산 해인사와 보광사, 웅주 가야협 보원사, 삭주 화산사, 양주 금정산의 범어사, 비술산 옥천사, 전주 모악산 국신사 등입니다.) 따라서 갑사는 최소한 9세기 이전부터 존재하며 크게 번창했던 천년고찰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의 대적전의 화려한 공포.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의 대적전의 화려한 공포.

     

    이어 859년(신라 헌안왕 3)과 887년(신라 진성여왕 원년)에 중창 불사가 크게 이루어졌으며, 숭유억불을 국시로 추진했던 조선에서조차 국가적 비중은 오히려 상당해집니다. 1442년(세종 24) 토지 규모와 승려 수를 정할 때 예조에서 “원래 100결의 토지에 50결을 더해 70명의 승려를 거주토록 건의”했고, 이를 시행해 사세를 확장시켰습니다. 1583년(선조 16)에는 정문루를, 1604년(선조 37)에는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수했고, 1654년(효종 5)에는 관찰사 강백년의 도움으로 중창한 데 이어 1738년(영조 14) 표충원을 건립하고, 1797년(정조 21년) 원선사 중수와 1875년(고종 12) 중수, 1899년(광무 3) 적묵당 신축 등 대사찰의 명맥을 쉼 없이 이어나갔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의 역사를 품고 있는 사적비 전경.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의 역사를 품고 있는 사적비 전경.


    충남의 으뜸 사찰이자 대표적인 천년고찰 갑사는 불교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로도 유명합니다. 대웅전 삼신불 괘불탱은 국보로, 철당간과 승탑, 동종, 월인석보목판, 삼가여래삼세불도 및 복장유물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충남도 유형문화재는 석조약사여래입상과 석조보살입상, 사적비, 강당, 대웅전, 대적전 등 12점에 이릅니다. 충남 문화재 자료는 표충원과 삼성각, 팔상전, 중사자암지 삼층석탑, 천진보탑 등 5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의 가람 배치도,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의 가람 배치도,


    갑사의 가람배치는 대웅전과 대적전 구역으로 나뉩니다. 계룡산 국립공원 공영주차장을 지나 산책로를 걸어 계룡산갑사(鷄龍山甲寺)라는 현판을 내건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에 다다르면 본격적인 경내의 시작입니다. 참고로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서 불법 수호 호법신(護法神) 역할을 하는데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기 보검과 보당, 보탑, 용과 여의주, 비파 등을 들고 벌떡 부릅뜬 눈에 크게 벌어진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장군처럼 갑옷을 입고 발밑에는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일주문,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일주문(전면),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일주문(후면).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일주문(후면).


    사천왕문을 바라보고 좌측으로 남방 증장천왕과 서방 광목천왕이, 우측으로 동방 지국천왕과 북방 다문천왕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높이 4m의 거대한 크기인데 나무골격에 흙을 덧붙여 의자에 걸터앉은 모습입니다. 서방 광목천왕은 한 손에 보당을 다른 한 손에는 연잎 위에 공양물을 올려놓은 지물을 들고 있어 다른 사천왕상과는 차별성을 보입니다. 이 밖에 신체 비례와 독특한 눈꺼풀, 야위고 주름이 많은 얼굴, 작은 주먹코 등 재치와 개성 가득한 표현으로 직지사와 마곡사를 거쳐 예천 용문사로 이어지는 사천왕상 양식변화와 흐름 연구에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갑사의 사천왕상은 1683년 조성됐습니다. 지국천왕 몸에서 묵서가 나왔는데 조각승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형태적 특징과 1681년 조성한 갑사 영산전(靈山殿)의 칠불과 천불상의 제작자가 단응 유파인 점을 고려할 때 사천왕상 역시 이들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사천왕문.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사천왕문.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남방증장천왕(왼쪽)과 서방광목천왕.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남방증장천왕(왼쪽)과 서방광목천왕.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북방 다문천왕(왼쪽)과 동방 지국천왕.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북방 다문천왕(왼쪽)과 동방 지국천왕.


    본전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돌을 쌓아 올린 석축 사이 돌계단을 오르며 고풍스러운 현판과 마주하게 됩니다. 법문을 강론하는 강당으로 1887년 절도사 홍재희가 쓴 ‘계룡갑사(鷄龍甲寺)’입니다. 이 강당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불타 없어진 것을 재건한 것인데 전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에 배흘림기둥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늦봄의 햇살이 지붕을 비추면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서 아름다운 장식을 뽐냅니다. 한때 단청이 퇴색되어 흔적만 남았다가 새롭게 채색하는 과정에서 원래 모습을 일부 잃었지만, 기교를 절제하는 것이 특징인 조선 후기 건축물을 대표합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강당 전경.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강당 전경.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강당에 걸린 계룡갑사 현판.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강당에 걸린 계룡갑사 현판.


    갑사강당을 가기 전 왼쪽으로 화려한 단청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2층 누각은 범종각입니다. 건축물의 윤곽을 잡아주는 빼어난 선의 흐름에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고 카메라를 꺼내게 합니다. 불전 사물인 범종과 법고, 운판, 목어가 걸려 있습니다. 

    범종은 부처의 음성으로 사물의 으뜸입니다. 신성한 불음(佛音)으로 고통의 중생에게 번뇌를 벗어나 깨달음 주고 지옥의 영혼까지도 제도한다고 합니다. 법고는 땅에 사는 모든 중생과 축생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합니다. 북소리가 널리 울려 퍼져 불법이 전해지는 것으로 두 개의 북채로 마음심(心)자를 그리듯 두드립니다. 목어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로 조석 예불과 염불·독경에 사용하는데, 속이 빈 배의 양쪽 벽을 나무막대기로 쳐서 소리를 냅니다. 물속의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의미도 있지만, 밤에도 눈을 뜨는 물고기처럼 수행자의 정진을 촉구하는 의미입니다. 목탁이 이것의 변용입니다. 운판은 청동이나 쇠로 만든 구름 모양의 넓은 판으로 그 소리가 조류와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구제합니다. 본래 대중에게 공양 시간을 알리기 위해 사용됐는데 비를 머금은 구름 모양에 주술적인 의미를 담아 선종 계통 사찰은 방화 의미로 부엌 앞에 걸어두기도 합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범종각 전경.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범종각 전경.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범종각의 불전 사물.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범종각의 불전 사물.


    범종각과 오른편으로 대치한 종각에는 별도의 갑사동종(甲寺銅鐘)이 있습니다. 조선 선조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1584년(선조 17) 만들어진 높이 131㎝, 밑지름 91㎝ 크기에 무게가 8000근의 대종입니다. 어깨부터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 입 부분까지 직선입니다. 종 꼭대기에 음통이 없이 하나의 몸체로 이어졌는데, 서로 반대로 머리를 돌린 2마리 용 모양 고리가 달려 있습니다. 종의 어깨에 물결 모양 꽃무늬가, 밑에는 위아래로 나누어 위에 연꽃무늬, 아래에 범자를 둥글게 돌아가며 촘촘히 새겼습니다. 4곳의 사각형에는 연곽을 만들고 가운데가 볼록한 연꽃 모양 연뢰(蓮蕾) 9개씩을 두었습니다. 몸통 4곳에 종을 치는 당좌를 두었는데 그사이에는 구름 위에 석장을 들고 있는 지장보살이 서 있고, 종 입구 위로 덩굴무늬 띠를 둘렀습니다. 일제강점기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공출되어 뺏겼다가 광복 후 되찾았습니다.


    조선 선조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의 범종.

    ▲ 조선 선조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의 범종.


    강당 마당을 가로지르면 한층 높은 석단위에 서쪽을 향한 대웅전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직후 중건과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습니다. 현재 대웅전 위치는 창건 당시와는 다르다고 하는데 대적전 위치가 원래 대웅전 자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조삼세불(1617년), ‘갑사삼신괘불탱(1650년), 갑사사적비(1659년) 등 문화유산의 연대적 과정을 고려하면 대웅전 건립연대는 17세기 초로 전환기 건축의 특징을 지닙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 맞배지붕에 전면과 측면의 같은 공포 형식과 같은 간격은 조선 후기 건축적 경향의 유행 이전 상황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휘어진 나무 모습을 최소한으로 가공해 미학을 탐구하는 태도 역시 이 시대부터 새롭게 등장한 경향인데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며 크게 확장된 다포계 맞배지붕의 전형적인 형식과 건축적 경향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가치를 높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웅전과 공포.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웅전과 공포.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웅전에서 부처상에 감로수로 몸을 씻는 관불의식.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웅전에서 부처상에 감로수로 몸을 씻는 관불의식.


    법당으로 들어서면 불단의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塑造釋迦如來三佛坐像)과 사볼살입상(四菩薩立像)과 마주합니다. 불상은 1617년(광해군 9) 행사(幸思) 등 9명의 조각승이 제작한 7존(尊)으로 구성된 대단위 작품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성된 7존 형식 불상으로는 현존 최대, 최고작으로 진흙으로 만든 소조(塑造) 불상 평균 높이가 250㎝에 이르고 보살상도 200㎝ 이상으로 제작되어 매우 장중한 분위기를 줍니다. 제작기법은 17세기 전반 대형 불상에 널리 적용된 소조기법으로는 가장 빠른 사례에 속해 조선 후기 삼불상 및 사보살상에 기준작으로 평가됩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웅전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사불입상.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웅전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사불입상.


    불단의 후불탱화인 석가여래삼세불도는 18세기 호남을 중심으로 영남과 충청에서 활동한 대표 화사 의겸(儀謙)의 불화입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현존하는 불화는 21건 30점으로 이 가운데 길이 4m에 이르는 3폭 형식의 삼불도는 갑사와 운흥사, 화엄사 등 3건에 불과한데 조선 후기를 통틀어서도 희귀한 편입니다. 갑사 삼불도는 안타깝게 약사회 1폭이 없어졌지만, 450㎝의 초대형 화폭에 설법장면들을 세련되고 유려한 필치에 짜임새 있는 구도, 조화롭고 안정감 있는 색채로 부처의 세계를 장엄하게 묘사한 18세기 대표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의겸의 초기화풍에서 후반기 전환점의 작품인데 1730년대 불화 복장을 남겨 복장 의식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웅전 석가여래삼세불.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웅전 석가여래삼세불.


    소조관세음보살입상에서 발견된 복장 유산은 전적류 8건 8점입니다. 필사본 1종은 백지에 묵서로 적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이며, 그 외는 모두 목판본입니다. 조성 발원문은 명확한 제작 시기(1617년)와 참여 화공, 2300여 명의 시주자 등 시대의 역작임과 동시에 당시 최고 조각승의 하나인 행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불상은 역삼각형의 갸름한 얼굴에 우뚝한 콧날에서 행사 작품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장대하고 늠름한 자세와 안정된 비례, 기백이 넘치는 표현 등에서 임진왜란 이후 조성된 대형불상들의 시대적 특징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시주자 가운데는 금산사 중창 불사(1630년)를 주도한 수문대사를 비롯해 현진·응원·법령 등 당대 대표적 조각승들이 시주 화공으로 참여, 불사를 지원한 점에서 당시 조각승들의 교류와 협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석가여래삼세불과 소조관세음보상입상 복장유물.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석가여래삼세불과 소조관세음보상입상 복장유물.


    갑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유산은 삼신불 괘불탱을 꼽습니다. 중단의 삼신불을 크게 강조한 독특한 구성인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진리를 설법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괘불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던 그림으로 평소 직접 보기는 어렵습니다. 전체 크기는 세로 1270.4㎝ 가로 887.6㎝에 화면만 세로 1082.4㎝ 가로 844㎝의 초대형 괘불로 상·중·하 3단 구도를 갖췄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삼신불 괘불탱 전경 문화유산청 제공>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삼신불 괘불탱 전경. <문화유산청 제공>


    맨 윗부분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상, 제자상, 금강역사상이 배치되고 가운데 비로자나불, 석가, 노사나불의 삼신불을, 맨 아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 사천왕상, 사리불 등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가운데 비로자나불은 등 뒤로 광배가 보이는데 둥근 얼굴에 두 어깨를 옷으로 걸치고 오른손은 왼손을 감싼 지권인을 하고 있습니다. 몸의 크기에 비해 얼굴과 손이 크게 그려졌는데 어깨보다 무릎 폭은 넓습니다. 왼쪽의 노사나불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어깨까지 들어 올려 설법 자세를, 오른쪽 석가불은 악귀를 물리치는 손 모양의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의 기둥처럼 솟은 머리 모양이 이채롭습니다.


    갑사 삼신불 괘불탱의 비로자나불, 석가, 노사나불. 비로자나불과 석가의 기둥처럼 솟은 머리모양이 이채롭다

    ▲ 갑사 삼신불 괘불탱의 비로자나불, 석가, 노사나불. 비로자나불과 석가의 기둥처럼 솟은 머리모양이 이채롭다.


    이와 함께 윗부분 붉은색 두광의 관음과 세지보살, 십방제불, 나한 등은 화려한 빛깔의 구름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천상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맨 아래는 비교적 단순한 구성으로 사천왕과 문수보살, 보현보살, 사리불이 배치되고 채색은 녹색, 홍색, 황색 같은 중간 색조와 금색 등 화면 전체를 밝고 화려하게 표현했습니다. 제작연도는 1650년(효종 원년)으로 괘불 조성에 필요한 많은 물품의 시주자를 적어 17세기 중반 생활상과 사찰의 재정 규모 파악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갑사 삼신불 괘불탱의 관음보살(왼쪽)과 대세지보살.

    ▲ 갑사 삼신불 괘불탱의 관음보살(왼쪽)과 대세지보살.


    대웅전을 돌아 뒤편 오른쪽의 삼성각(三聖閣)도 독특합니다. 칠성·산신·독성 등 삼성을 모신 곳으로 칠성은 도교의 북두칠성이 불교화한 것으로 수명 장생을 주관하는 별입니다. 산신은 우리 민족 고유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난 만사형통의 신이며, 독성은 혼자 깨달은 성자를 말합니다. 보통 사찰마다 한 곳의 건물을 따로 지어 삼성 가운데 하나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갑사는 삼성각 안에 이들 삼성을 같이 모시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고로 사찰에서 불교 경전 이외의 신을 수용해서 모시는 건물에 대한 이름으로 ‘각(閣)’을 표기합니다. 기복신앙의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대신 대웅전처럼 불법을 모시는 곳은 ‘전(殿)’이라 표기합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삼성각 전경.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삼성각 전경.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삼성각의 삼성도.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삼성각의 삼성도.


    월인석보목판(月印釋譜木板)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불교대장경이라 할 수 있는데 제작시기(15세기) 당시의 글자와 말을 그대로 보존해 국어변천의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해 1459년(세조 5)에 편찬한 대장경으로 책으로 찍어내는 판각으로는 우리나라 유일한 판목입니다. 석보는 석가모니불의 일대기로 석보상절은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의 명복을 위해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불교서적을 참고해 지은 것이고, 월인천강지곡은 1447년(세종 29) 세종이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은 것입니다. 현재 권21의 46판(181장)만 남아있는데 이 판목은 1569년(선조 2) 충남 한산의 백개만이란 사람이 시주로 판각해 논산 불명산 쌍계사에 보관하다가 70여 년전 갑사가 입수해 소장하고 있습니다. 계수나무에 돋을새김으로, 판목의 오른쪽 아래에 시주자와 새긴사람의 이름이 있습니다. 일부 방점과 글자획은 닳아 없어지기도 했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월인석보목판 보존관.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월인석보목판 보존관.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월인석보목판 문화유산청 제공>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월인석보목판.<문화유산청 제공>


    갑사는 호국불교로도 유명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승병이 일으킨 곳의 하나로 당시 영규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참전해 청주성 탈환과 옥천전투 등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습니다. 의병장 고경명의 금산전투에 의병장 조헌과 참여해 최후까지 싸우다 중상을 입은 영규대사는 공주 유산에서 입적했는데 진위장군으로 추봉됩니다. 대웅전의 왼편 사당인 표충원은 당시 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 휴정, 사명대사 유정, 기허당 영규대사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1738년(영조 14)에 전면 3칸, 측면 2칸 이익공 맞배집 형태로 기단은 자연석을 60㎝ 높이로 축조하고 자연석 덤벙 주초에 원주를 올렸습니다. 사당 내 의승장영규대사기적비는 정인보(鄭寅普)가 지은 글로 1973년에 세웠습니다.

     

    갑사 가람배치의 또 다른 축인 대적전 방향의 갑사석조약사여래입상(甲寺石造藥師如來立像)은 갑사 동쪽 계곡 100m 지점 자연 동굴에 모셔져 있습니다.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 묶음이 큼직하고 얼굴은 긴 편에 양어깨에 걸친 옷은 가슴을 약간 노출하면서 무릎 아래까지 늘어져 있습니다. 가슴 아래 반원형 옷 주름이 표현되고 왼쪽 어깨 부근에는 한 가닥 주름이 어깨너머로 넘어가는 모습으로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래 사자암에 있던 것으로 전체적 구성미와 조각 수법 등으로 미뤄 고려 중기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석조약사여래입상 전경.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석조약사여래입상 전경.


    대적전(大寂殿)으로 향하는 길은 필자가 갑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로 추천해 드립니다. 건물도 주변 풍광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원래 금당지 옆에 설치되어 있다가 현재 자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전면 3칸, 측면 3칸 화려한 팔작지붕에 지붕 처마를 떠받치는 공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 모두에 설치된 다포식 건물로 엄숙하면서 화려합니다. 가운데 칸에는 2개, 양 끝칸은 1개씩의 공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적전 전경.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적전 전경.


    법당의 불단에는 석가모니·아미타불·비로자나불 등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木造阿彌陀三尊佛坐像)이 있는데 석가모니불 위 천장을 한단 올려 닫집의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삼존불에 대한 정밀조사에서 복장물은 거의 없었지만 몸안서 나온 신묘명다라니에 1651년(중국 순치 8)으로 기록되어 상한 연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다라니만으로 불상 제작연대를 결정하기에는 근거가 약하지만 중창 불사를 끝내고 세운 사적비(1659년)와 시기가 거의 일치해 이때 제작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화원은 당시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혜희’의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착의법을 달리하는 협시보살상, 복갑과 갑대를 찬 모습, 넓적하고 편평한 얼굴, 당당한 자세 등이 그의 작품 유형과 매우 유사합니다. 혜희는 1655년 법주사 원통보전목조여래좌상을 조성하는 등 17세기 금산 보석사, 부여 대조사 등 충청권역 불상 조성에 다수 참여했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적전의 목조아미타삼존좌불.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적전의 목조아미타삼존좌불.

     

    대적전 앞마당의 승탑은 고승의 사리를 담은 탑으로 나말여초(羅末麗初) 많이 만들어졌는데 갑사와 함께 대안사, 쌍봉사, 실상사, 보림사 등에서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갑사 승탑은 전체가 팔각 모습으로 3단의 기단(基壇)은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차츰 줄어듭니다. 맨 아래 받침돌에는 사자·구름·용을, 가운데 받침돌은 거의 원에 가까운 상태에서 귀퉁이마다 꽃 모양의 장식과 그 사이에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을, 뒷받침은 탑신을 받치며 두툼한 모양에 연꽃을 둘러 새겼습니다. 탑신(塔身)의 몸돌에는 4면에 자물쇠가 달린 문을, 다른 4면에 사천왕입상을 도드라지게 조각했는데 팔각 지붕돌이 기왓골을 표현하는 등 정교함을 자랑합니다. 상륜에 해당하는 머리 장식은 없어져 후에 새로 만든 보주(연꽃봉오리)가 올려져 있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적전의 승탑 전경.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적전의 승탑 전경. 뒤로 백일(100일) 동안 꽃을 피운다는 배롱나무가 보인다.  


    승탑은 전체적으로 조각이 힘차고 웅대하지만, 윗부분으로 갈수록 조각기법이 약해져 아쉬움을 주는데 지붕돌이 지나치게 작아져 전체적인 안정감과 균형을 잃고 있다는 평입니다. 그런데도 기단부 조각이 고려 시대 특징을 잘 드러내는 데다 전체에 조각된 각종 무늬와 기법은 고려 시대 승탑 가운데 수작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원래는 갑사의 암자인 중사자암에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쓰러져 있던 것을 1917년 현재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적전의 승탑의 네방향 전경.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적전의 승탑의 네방향 전경.


    공우탑(功牛塔)은 갑사의 중건과정에 헌신한 소의 이야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정유재란을 거치며 소실된 갑사는 1604년 국가적 지원을 받아 대웅전 등을 다시 세웠다고 앞서 밝혔는데요, 당시 주지 스님의 꿈에 황소가 나타나 절을 지어줄 것을 약속했는데 다음 날부터 소 한 마리가 절을 찾아와 목재 등 공사에 필요한 재목을 실어와 불사에 도움을 주었고 이를 감사히 여긴 스님들이 소의 공을 기려 탑을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천년이 넘는 역사에 참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여러 곳에 숨어 있습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공우탑.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공우탑.


    갑사의 철당간과 지주는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고,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합니다. 갑사 동남쪽 기슭의 당간은 통일신라 시대 조성된 것으로는 유일한 것입니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는데 원래 28개의 철통이 연결되었지만, 1893년(고종 30)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져 24개만 남아 있습니다. 당간을 지탱하는 두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선 꾸밈없는 소박한 모습으로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습니다. 680년(신라 문무왕 20) 세워진 것이라고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으며 양식상 통일신라 중기로 추정됩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당간과 지주.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 당간과 지주.

     

    이 밖에도 팔상전은 건물 규모는 작지만,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인 공포가 기둥 위와 사이에 모두 설치된 다포양식으로 격식과 화려함을 보여줍니다. 석가모니불과 팔상탱화,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습니다. 팔상탱화는 석가여래 일대기를 8개 부분으로 나눠 그린 것이며 산중 탱화는 불교의 호법신을 묘사한 그림으로 대개 우리나라 전통의 신들입니다. 대웅전 오른편의 갑사중사자암지삼층석탑(甲寺中獅子庵址三層石塔. 충남문화유산)은 갑사의 암자인 사자암에 있던 것을 대적전 뒤편에 세웠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사실 갑사의 문화유산과 콘텐츠를 모두 소개하려면 책 한 권이 모자랄 정도입니다. 그만큼 대웅전을 비롯해 문화유산의 내력과 유래를 알 수 있는 각종 기록과 문화유산이 잘 남아 있는 데다 민족사의 수난과 이를 극복한 이야기가 풍성한 콘텐츠의 원천입니다. 중건 당시인 17세기 다포 맞배건물의 특징으로 나타내는 평면구성과 공포의 구성수법, 상부 가구와 닫집, 불상과 불화 등 귀중한 소장 유산이 앞으로도 온전히 잘 보전되어 후손에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에서는 봄이면 황매화축제가 열린다.

    ▲ 천년고찰 공주 계룡산 갑사에서는 봄이면 황매화축제가 열린다.


     

    < 공주시 갑사 >

    ○ 위 치 : 충남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 567-3 (전화 041-857-8981)

    ○ 운 영 : 연중무휴 (일몰 이후 출입제한)

    ○ 주차장 : 국립공원계룡산 공영주차장

     * 취 재 : 2025년 5월 12일 등

     

    < 참고문헌 >

    김광희. (2018). 갑사 대웅전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 연구. 미술사학연구 (구 고

    고미술), (300), 167-195.

    김일림. (2017). 화엄십찰의 입지요인-갑사, 범어사, 해인사, 화엄사를 사례로. 경관과 지리,

    27(1), 187-200.

    김성순. (2019). 갑사 (甲寺) 사적 (史蹟) 을 통해 본 의병장 영규 (靈圭) 에 대한 두 갈래 시

    선. 불교문예연구, (14), 271-296.

    정은우. (2024). 계룡산국립공원 내 사찰과 불교조각. 국립공원연구지, 15(1), 120-130.

    전통사찰총서 12 - 대전·충남의 전통사찰 1, 사찰문화연구원, 1999년

    충남지역의 문화유적 2-공주편(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88)

    충청남도지정문화재해설집, 충청남도, 2001년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정보(https://www.khs.go.kr)

    충남디지털문화유산(https://www.chungnam.go.kr)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https://www.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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