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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천년 사비 백제의 영광이 숨쉬는 곳 부여를 방문하다

2023.09.29(금) 01:24:03 | 정림의환경이야기 (이메일주소:sjl8544@naver.com
               	sjl8544@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천년 사비 백제의 영광 숨 쉬는 곳
백제의 후손들이 사는 부여의 부활 


천년사비백제의영광이숨쉬는곳부여를방문하다 1


백제의 미소는 모나리자의 모습보다도 편안하다
어린이의 순수함과 모든 잘못도 그저 웃어넘길 것만 같은 어머니 같은 포용감이 느껴져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오며 기분이 좋아진다.

실제 백제인들의 삶도 그처럼 평안하였을까? 궁금해진다
나는 요즘 우리 고유의 전통과 문화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특히 삼국시대의 치열한 영토싸움 시나리오는 고구려의 용맹함으로 시작하여 더욱 박진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한강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싸우는 삼국의 이야기가 진흥왕의 술수로 백제의 성왕이 관산성전투에서 전사하는 부분부터 흥미가 떨어진다.
마치 요즘 사회의 치열한 권모술수가 판치는 모습과 흡사한 듯한 느낌이어서 더욱 그렇다.

 

다만 변하지 않고 흥미가 높아지는 주제는 전통문화이다일본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는 칠지도의 모습을 볼라치면 어깨가 으쓱해지지도 한다최근에는 지역의 박물관과 전시관에서도 특별 전시회를 자주 개최하여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만의 문화 특징을 확인하고 배우는 과정을 은근한 이야깃거리로 즐기고 있다.

여름도 끝나가는 9월에 충남도민 리포터로 백제의 모습을 취재할 기회가 생겼다. 취재를 신청하였던 리포터 한 분이 포기하여 차례가 온 것이다

나는 2년 전 친구들과 부여를 방문하여 정림사지 5층석탑의 위용에 가슴이 먹먹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부여 중앙박물관 금관대항로 진품을 감상할 기회를 놓친 아쉬움이 생각나서 망설임 없이 찬란한 사비 문화를 취재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나는 부여에 대하여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문헌을 살펴보니 
부여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백제의 숨결이 서려있는 유적과 유물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성왕의 위엄이 서려있는 사비궁 왕궁터를 재현한 백제문화단지를 찾아낸 후 박물관과 더불어 2곳을 방문하기로 마음먹는다.

1,400년전 찬란한 백제의 숨결은 유난히 후덥지근한 여름의 열기가 아직도 한창인 9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 20일에 이렇게 나에게 미소지으며 다가온 것이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딸과의 여행에 들뜬 마음이다9시에 서울에서 출발하니 환한 태양이 벌줌이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환하게 웃는 듯하다.
 

부여백제 휴게소

▲ 부여백제 휴게소


2
시간여를 달렸을까? 잠깐 쉬는 휴게소의 이름이 부여백제이다. 휴게소 한 켠에 설치된 돌조각이 부여의 기상으로 충청권을 웅비하라는 의미인가? 생각하게 해준다.

휴게소 한 켠의 조각품

▲ 휴게소 한 켠의 조각품


잠시 후 부여에 도착했다
. 널따란 대로변 옆으로 대백제전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즐비하게 바람이 살랑이고 있다. 그 모습들이 리포터인 나를 환영해 주는 듯하여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백제문화단지 입구에 들어서니 초현대식 롯데리조트 건물과 반대편에 한옥 처맛 모양 롯데 아울렛 간판이 시선을 붙잡는다초현대식 고층 롯데 리조트 건물 앞에 한옥 소슬 대문의 아울렛 매장이 묘하게 어울린다.

마치 왕조의 품격을 느끼며 여유 있게 여행하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듯하다.
 

롯데아울렛 정문 사진

▲ 롯데아울렛 정문 사진


여행객들이 백제 문화 향취를 마음껏 느끼고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아울렛에서 구매도 많이 하도록 설계한 센스가 재치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백제문화단지 홈페이지를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백제문화단지 전경

▲ 백제문화단지 전경


3,299
(100만평) 규모를 자랑하는 백제문화단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374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공시설인 사비성(왕궁,능사,생활문화마을 등), 백제역사문화관, 한국전통문화학교와 민자시설인 숙박시설(콘도,스파빌리지), 테마파크, 테마아울렛, 체육시설(대중골프장) 등으로 1993년 백제문화권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고 1998년 백제문화단지 기공식을 거행한 이래, 현재 공공시설은 완공하였고 테마파크 등 일부 민자시설은 2017년까지 준공하여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역사 테마파크로 육성할 계획이며 국내 최초로 삼국시대 백제 왕궁을 재현한 곳으로 검색되었다. 특히 2006년 개관한 백제역사문화관은 전국 유일의 백제사 전문박물관으로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보여주는 상설전시실을 비롯하여 기획전시실, 금동대향로극장, i-백제 체험장 등 다양한 전시ㆍ교육시설을 갖추고 1,400년 전 백제의 문화를 16년간 고증으로 검증한 전국 최초의 백제 문화 박물관이라는 것이다.

대백제전 관광 안내도 

▲ 대백제전 관광 안내도


도착 당일에는 박물관 주위에 체험 부스가 몇 개 설치되어 있었으나 방문객이 그리 많지 않아 안타까웠다
. 장시간 차를 타고 온 우리는 시원한 궁사를 먼저 방문하기로 하였다.
 

박물관 앞 한가한 체험 부스장

▲ 박물관 앞 한가한 체험 부스장
 

체험부스 모습

▲ 체험부스 모습


백제인의 의복 입어보기

▲ 백제인의 의복 입어보기


박물관 오른편을 돌아보니 커다란
2층 건축물이 시선을 붙잡는다사비성으로 향하는 관문 정양문(正陽門)이다. 축제를 위해서인지 입구에는 백제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들이 조각되어 포토존으로 눈에 들어온다.

정양문 앞 포토존

▲ 정양문 앞 포토존
 

포토존의 모습

▲ 포토존의 모습


나는 기품 넘치게 시작하는 백제인의 문화적 우수성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먼저 사비궁 정문인 정양문 正陽門 앞에는 산수문전 山水文塼의 무늬가 그려져 있다

정양문과 산수도 그림

▲ 정양문과 산수도 그림


출처에 의하면
, 산수문전은 1937년 충남 부여군 규암면 외리의 옛 절터에서 출토된 산수화가 새겨진 백제시대 벽돌로 구름과 산 냇물이 흐르고 신선이 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8종의 그림이 새겨진 벽돌과 함께 출토되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출처] 충남 부여 - 6. 백제문화단지의 사비궁 (1)|작성자 송파>
 

나는 불교문화의 대표적 건물에 산수화가 더해진 모습을 보고 불교와 도교가 융합된 백제의 너그러움이 백제의 민족성임을 느끼고 백제의 미소가 탄생되는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양(正陽)은 해가 가장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밝고 환하게 비추어 모든 기운이 왕성할 때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말의 유래는 가장 강성한 백제를 이루었던 근초고왕이 일본의 왕에게 하사했던 칠지도 七支刀에 새겨진 명문에 '태화 4516일 병오 丙午 정양 正陽100번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는데 모든 병해를 물리칠 수 있으며 편안히 후왕 侯王에게 나누어 마땅하다." 라는 기록의 정양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사비궁의 남쪽 관문의 상징성을 부각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관문을 2층 규모의 건물로 지은 것도 특이한 모습이다. 이것은 백제 역사문화의 절정을 이룬 사비시대 백제 고유의 건축양식인 하앙구조 주심포 건물로 목재를 모두 끼워 맞춰 조립하는 전통기법이다. 현재 목조건물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74호인 대목장 大木匠, 단청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48호인 단청장 丹靑匠, 기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121호인 번와장 ?瓦匠, 현판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106호인 각자장 刻字匠이 참여하여 건축한 백제 사비시대의 문이라고 조사되었다. <[출처] 충남 부여 - 6. 백제문화단지의 사비궁 (1)|작성자 송파>

정양문을 지나니 정궁인 천정문과 누각인 제향류가 저만치 멀리서 보인다 
 

천정문과 제향루

▲ 천정문과 제향루


나는 
사비궁의 넓이와 규모에 절로 탄복한다. 모든 건축물은 출토된 유물과 백제의 건축가들이 일본에 지었다는 건물들을 참고하고 상상이 보태져서 만들어졌을 것이고 사비궁터의 규모는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사비 왕궁터 관북리 유적을 참고하여 실제 사비궁과 같다고 하니 더욱 성왕 사비시대의 기품에 압도되는 듯했다.
양 옆의 넓은 잔디밭을 지나 한참을 걸어가니 사비성 정문인 천정문에 다다른다.

천정전을 향하는 길

▲ 천정전을 향하는 길
 

천정전 모습

▲ 천정전 모습


사비성은 국가의 중대사가 행해졌던 천정천과 문관과 무관이 업무를 보던 동궁과 서궁으로 구성되어 있다
. 정전인 천정천은 국가의 큰 정사를 하늘에 고해서 결정했다는 천정대(충청남도 기념물 제49)에서 이름을 따 왔으며 이 곳 중궁의 정전은 왕의 즉위식, 신년해사 등 각종 국가의식이 거행되고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가장 중효한 것을 실행한 곳이다. 천정천 내부를 들어가 보니 커다란 어좌가 먼저 시선을 붙잡는다. 어좌의 기단부는 고대 가구자료와 당시 왕실불교의 특성을 감안하여 공주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제128)의 대좌와 안상문향을 재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붕황은 태평성대에만 나타나는 전설 속의 새로 용, 거북, 기린과 함께 4령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나는 어좌의 위용에 감히 앉을 엄두고 못 내고 나온다.
그저 성왕이 용좌에서 신하들에게 호령하며 집무를 집행하는 광경을 마음에 그려볼 뿐이다.

발 길을 돌려 뒤로 가 본다. 천정문을 기준으로 왼쪽은 서궁이 자리잡고 있으며 서궁은 외전인 신하들이 집무 공간인 인덕전(隣德殿)과 서궁의 정전인 무덕전(武德殿)이 눈에 보인다.
 

인덕전의 모습

▲ 인덕전의 모습


무덕전은 왕이 평소 무관에 관한 집무를 보는 곳으로 무덕전의 무는 서쪽을 의미하며, 인덕전이라는 이름은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영물인 기린의 덕을 의미하며 무관도 덕을 행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조사되었다.

이 곳의 두 건물은 차이를 두어 만들었는데, 왕이 집무를 보는 무덕전은 인덕전보다 기단이 높고 인적전 치마와는 다르게 기둥 위에 45도 돌출형 하상을 두어 처마를 높게 하였으며 용마루 양쪽에 치미를 올려서 왕의 품격에 맞추어 제작되었다고 한다.

나는 군신이 서로 신분의 차이는 지키며 서로 운동하는 보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오던 길이다.
그 시절의 역사를 반영하듯 인덕전 청사에 관광객용 플라스틱 활쏘기 체험부스가 있어 나도 참가하였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더니 몇 번 시도에 시위가 과녁에 탁! 소리로 찰싹 붙는다.
 

인덕전 안 활쏘기 체험

▲ 인덕전 안 활쏘기 체험


나는 사비궁을 나와 오른편 능사로 접어든다
높이 38m의 웅장하게 세워진 오층목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능산리 사지 5층목탑

▲ 능산리 사지 5층목탑


능사는 관산성전투를 지원하러 가다 신라의 매복병에게 목숨을 잃은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운 백제 왕실의 사찰로 세계문화유산인 능산리유적에서 발굴된 원형과 같은 크기로 재현되었다고 한다. 능사의 재현을 위해서 부여읍 동남리에서 출토된 금동탑 오층목탑은 38m 높이의 목탑으로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끼워 맞추는 전통기법으로 건축하여 1.400년 전 건축기술의 진가를 보여주는 진품이다. 가장 꼭대기에 있는 상률의 몸통은 구리로 제작하였고 표면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113호인 칠장이 도금의 방법이 아닌 순금을 손수 수작업으로 정성들여 입힌 후 정제된 옻칠을 한 것이라고 자료에서 조사할 수 있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넓은 잔디밭 무대 주위로 나온다.
뜨거운 여름 땡볕 아래 백제군 출정식 연습이 한창이다
. 젊은 여자 남자 대학생들이 백제 군복을 무겁게 입고 쓰고 있는 모습이 귀엽게 보여 여학생에게 일부러 말을 걸어 본다. 그녀는 덥지만 지역의 행사가 기분좋게 참가하고 있다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대답한다. 아마도 백제의 미소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며 그녀를 사진에 담는다.
 

백제군 출정식 연습 모습

▲ 백제군 출정식 연습 모습


나는 날씨가 너무 더워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서 유물을 살펴 보기로 하였다.
박물관 내부는 2층으로 우리는 1층을 둘러 보았다.

서민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시대적 상황을 연대별로 정리한 전시관을 둘러 보면서 한국사시험을 준비로 듣던 유투브의 장면들이 슬라이드처럼 생각났다박물관은 백제 초장기 한성시대부터 무령왕의 웅진(지금의 공주)천도시대와 마지막으로 가장 번성한 시대인 성왕의 사비(지금의 부여)시대로의 도읍지가 천도하는 시대적 상황을 벽면에 실감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번 조사를 통하여 나는 성왕이 부친을 지극히 존경하는 의미로 도읍지의 이름을 선왕인 무령왕의 성을 따서 천명하였음을 새롭게 알았다. , 무령(武寧)왕의 성은 부여(扶餘), 이름은 사마(斯摩/斯麻) 혹은 융(), 시호는 무령(武寧)이며 이름을 따서 사마왕(斯麻王)이라고도 한다는 사실을 박물관에서 배운 것이다.

무령왕의 모습

▲ 무령왕의 모습


 

무령왕 시절 백제는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뒤 매우 큰 혼란에 빠져 있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는 등 백성들의 삶도 피폐해져 있었다. 무령왕은 고구려의 남하에 맞서 국방 체제를 정비하는 한편,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려 노력하였다고 한다.
 

백제의 성왕 모습

▲ 백제의 성왕 모습

 

성왕은 아버지 무령왕과 함께 백제의 중흥을 이끈 명군이자 성군으로 평가받는다. 삼국사기에는 '지식이 영매(英邁)하고 결단력이 있어 나라 사람이 '성왕'으로 칭하였다'고 성왕을 긍정적으로 평하는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에는 '천도지리에 통달하여 그 이름이 사방에 퍼졌다’ 며 찬양하고 있어서 성왕의 인물 됨됨이가 비범하였음을 알 수 있다성왕은 국호를 남부여로 변경하여 다시 한번 백제의 번성에 노력하던 한 시대의 성군이었음이 자료에서도 조사되어 부여의 현란한 유물과 유적이 더욱 빛나게 보였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나오는 나의 머리에는 성왕의 늠름한 모습과 서산 용현리의 백제의 미소가 차례대로 떠올랐다. 부친을 지극히 존경하는 선한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리며 한 국가의 중흥을 꿈꾸던 성군이 바로 백제의 미소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 것이다.

성군은 군신들의 모든 욕심과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포용하는 마음으로 통치하는 능력이 가장 필요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고구려와 신라가 연합하여 세력을 만들며 대립하는 민심이 흉흉한 당시 시대적 배경을 떠올리며 성왕의 위대함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리포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백제의 문화의 우수성을 더 많이 공부하고 알리며 감상하기로 마음 먹는다.

만일 현대 사회에 성왕이 생존하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분명한 것은 선대의 치적을 그대로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미덕을 발휘하였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우리 사회은 세계에서 노령화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노인 공경의 오랜 미풍양속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고 부모를 서로 모시지 않으려 자식들이 싸우는 사건이 빈번하다.
이런 모습을 만일 성왕이 바라본다면 어떻게 다스리며 통치하려 노력하였을까?

이미 1,400년전으로 사라진 백제의 문화이지만 지금도 후손들이 백제의 미소를 잊지 않고 서로를 포용하라는 당부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천년 사비 백제의 영광이 숨 쉬는 곳 백제의 후손들이 사는 부여의 부활을 기대하며 
돌아오는 길에 백마강의 황토빛 여울이 은어처럼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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