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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65살은 아름다움의 시작이다.

충남 태안군 태안읍 상옥리 산 139-2

2023.01.05(목) 21:13:05 | 정림의환경이야기 (이메일주소:sjl8544@naver.com
               	sjl8544@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은 2023년 1월 1일 새벽 5시이다.
 
도민이는 지난 밤 냉기가 아직 싸늘하게 감도는 거실로 나왔다.
거실 중앙에 걸린 달력은 전년의 잔해를 거두고 새해를 만들어 주기를 5시간째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2022년의 마지막 조각을 뜯어낸다.

2023년 1월 1일 일요일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숨이 꽉 막히는 걸 느낀다.
지하철 무료 승차 나이가 되는 2023년이다. 65세이다.
작년 12월 끝자락부터 경로 무료 승차 탑승객이 많아서 지하철 요금이 인상된다는 소식에 시끌시끌했다. 뉴스를 보면서 '무료 승차 개시 나이가 많아지는 건가?' 궁금증과 불안감이 마음을 덮었다. 나이를 확인하는 것이 싫어 일부러 요금을 내고 다닌다고 말하던 지인의 이야기를 문득 생각한다. 그의 마음이 이렇게도 절절하게 이해될 수 있음에 신기할 뿐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느낌이 '65' 숫자만큼 묵직하다.
마음 저 아래를 방망이로 반죽한 찰떡 덩어리가 꽉 막고 있는 기분이다.
그녀는 갑자기 헛구역질이 올라 냉수를 몸에 부어 넣는다.
냉기를 먹은 몸은 다소 마음을 진정시킨다.
비로소 마음의 색깔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긴다.
 
‘지하철 무료 승차’를 입 밖으로 뱉어본다.
단어의 생뜩함이 풍기는 비릿함이 고등어보다 훨씬 강하여 토할 만큼 울렁거린다.
그 단어는 ‘이제부터는 얻어 사는 인생이 시작되는 겁니다’로 풀이된다.
부지런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의 다면성과 평가서에서 ‘그저 그렇다’라는 결과를 확인하는 충격이다.
감은 눈 속으로는 그저 주홍빛 햇빛만 아득하게 들어온다.
애써 움켜잡은 두 손에는 맥 빠진 공허함만 쥐어진다.
세월 속 노력은 순서 없이 아카이브 되어 널브러져 있다.
치솟는 분노에 부들부들 떨린다. 이어지는 좌절감은 MRI 검사기계처럼 몸과 마음을 구석구석 훑어낸다.
기력 잃은 그녀는 그저 아무런 반항 없이 공허한 시선으로 천장만 응시할 뿐이다.
 
“아니! 왜 이러지? 아니야. 나 열심히 많은 것을 했는데.”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큰 소리로 외친다.
기억의 회로에 ‘지나온 세월’을 입력한 후 열심히 검색한다.
 
'되새김'이라는 단어가 연관검색어로 등장한다.
라틴어로 되새김에는 ‘모든 것’이라는 명사와 ‘바친다’라는 동사가 중합된 의미가 있다.
모든 것이라는 범위는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검색 범주로 설정하여야 할까?
그녀는 아득한 기억 여행을 시작한다.
 
 " 가지 말라는 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 나태주 님 시구에서 -
 
 그녀는 10대 어린 시절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하여 학급에서 상위 10%를 조금 벗어난 정도였다. 월말시험의 통지서를 받기 시작한 초등학교 4학년부터 대학 4년 졸업 때까지를 기간으로 설정하고 average 점수를 만들어야 할까?
 
20대 초반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1차 임용고시에 붙지 못하여 과목을 바꿔 정교사가 아닌 다른 교과 교사로 교단에서 근무했으니 졸업 후부터 임용 전까지를 성실 점수로 환산하여야 할까?
 
20대 후반 성실한 남자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출산하였다. 아이들은 장성하여 취업은 했으나 지금도 직업 바꾸기와 꿈 찾기를 계속하고 있다. 더 애정 깊게 챙기지 못한 아픔이 지금도 마음에 가장 깊은 상처이다. 무책임 항목의  NCS 종합평가를 받아야 할까?
 
60대 초반 정년퇴직까지 지속하지 못하고 2년 반 먼저 명예라는 허울로 퇴직했다. 인생 직무 유기에 대한 사유서를 작성하여야 할까?
 
입력값을 처리하는 시간! 숨이 멎을 것 같은지 그녀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잠시 후면 결과 자료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삶 흔적의 정리 file(파일)이 펼쳐지는 것이다.
ppt(피피티)는 군데군데 뚫리거나 헤어진 slide(슬라이드)를 1초 안에 넘기기 설정으로 presentation(프리젠테이션, 발표) 한다.
자료 속 사진들은 추억의 책장 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것이다.
보고 싶지 않아서 던져진 채 버리지도 못한 자료들이다.
흔들린 외곽선의 영상은 흐릿하지만 사정없이 마음을 후벼파고 있다.
 
슬라이드 속 영상은 똑바로 그녀의 눈을 응시한다.
흔들리던 시선은 강한 울림을 목젖으로 넘기면서 얼얼하게 증폭된다.
아쉬움과 후회는 뜨거운 울분을 만나 한껏 몸집을 불린 채였다.
가슴으로 넘어간 영상의 흔적은 절절하다.
결국 그녀는 흐느끼며 가슴을 두드린다.
모든 것들에 더 노력하지 못했던 미안함으로.
자녀들에게 좀 더 솔직하고 자애롭지 못한 무책임으로….
스스로 좀 더 집중해서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한 불성실함으로….
남편에게 좀 더 현명하게 조언하지 못한 부족함으로….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 나태주 님 시구에서 -
 
어느 만큼 흘렀을까?
그녀는 뜨거운 눈물이 차갑다고 생각하며 어지러움을 느꼈다.
배가 너무 고픈 것이다.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꺼내서 마구 입에 넣고 씹어대기 시작했다.
머릿속 아직도 꺼지지 않은 ppt는 빈 slide가 가득하다.
아직도 작동하고 있음을 깜빡 스위치로 알려주고 있다.
입안에서 침과 섞어진 음식이 신선하다.
무언가가 갑자기 온몸을 휘돌아 다니는 느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두 팔을 들어 힘차게 위로 뻗쳐 본다.
허공을 잡기라도 하듯 두 손을 쥐었다 피며 기지개를 켠다.
 
만나지 말라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 나태주 님 시구에서 -
 
되새김으로 도약하자는 오기가 생긴다. 음식의 힘이다. 살아있음의 의미이다.
텅 빈 slide를 똑바로 응시하며 아랫입술을 꾹! 씹는다.
숫자 12를 방금 지난 긴 바늘이 7에 걸쳐 있는 작은 바늘과 함께 아침 시작을 알려준다.
갑자기 일출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그녀의 몸을 휘감는다.
그녀는 #백화산의 일출을 보자고 마음먹는다.
거울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대강 쓸어내린 후 얼굴에 크림을 바른다.
크림의 유분 덕분인지 촉촉해진 생생함이 큰 눈에 담뿍 담아진다.

20여 분을 달려 태안에 있는 백화산 꼭대기에 다다른다.
추운 날씨인데도 많은 사람이 발을 동동거리며 묵묵히 시선을 고정하고 서 있다.
 
잠시 후 7시 50분쯤이다. 

65살은아름다움의시작이다 1


하늘은 넓고 묵직한 어둠을 배경으로 진한 핏빛 외침과 헐떡임으로 10분 넘게 산통 중이다. 자연과 사람들이 모두 숨죽이며 산모의 노력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65살은아름다움의시작이다 2


드디어 조그맣고 동그란 형체가 봉긋하게 산 위로 올라선다. 
 

65살은아름다움의시작이다 3


하늘은 순산의 기쁨을 주홍빛으로 뿜어낸다. 미처 추스르지 못한 몸은 깊은 숨결을 오로라로 흩뿌리며 고통을 호소한다.
그녀는 차마 눈을 뜨지도 못한 채로 일출의 장엄함을 느낀다.
마치 자신이 태양인 것처럼 새롭게 태어난 희열이 온몸을 감싸 안는 것이다.
65살 더부살이 인생은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기도를 마친 그녀는 두 손가락으로 태양을 가늠한다.
“ 오늘부터 나도 당신처럼 새롭게 시작할게요. O. K 하실 거죠?”

65살은아름다움의시작이다 4


점차 하늘로 올라가는 태양을 뒤로하며 내려오는 그녀의 발길이 가볍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이다 - 나태주 님 시구에서 -
 
그녀는 초록색 다이어리를 장만했다.

65살은아름다움의시작이다 5


펜을 들어 ‘바친다’를 첫 장에 적는다.
생각과 내용을 담근다.
누구에게, 어떻게, 무엇을….
 
무엇의 대상을 먼저 생각한다.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자는 첫 시도이다.
할 수 없음에 대한 미련을 떨쳐 내기로 마음먹는다.
지나온 세월 속 이루지 못한 일은 앞으로도 어렵다는 의미이다.
여한에 잠겨 마음을 도려낼 여유가 없는 시점이다. 더부살이 인생이 오늘부터이니 더 그렇다.
자신의 마음속을 찬찬하게 쓰다듬으며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존재는 결국 본인이니까….
 
어떻게?의 방법은 조금 쉽게 시작한다.
그녀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들을 하고 싶은 방법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안부 인사를 먼저 하고 좋아하는지 물어보기.
친구들의 근황을 기억하려고 노력하여 SNS로 먼저 다가가기. 그리고 반응을 꼭 확인하기.
생각하면 할수록 깨알같이 많이 할 일들이 이어진다.
“올해는 더 바쁘겠네. 왜 이렇게 많아.!“ 혼자 중얼거린다.
 
누구에게?에서 그녀는 갑자기 생각을 다듬는다.
그리고 갑자기 시선을 들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더 많은 사람과 존재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욕심이 난 것이다.
”그래! 올해 나는 순간을 쪼개어 관심을 가질 거야.
누구에 더 많은 인연을 만들 거야.!“
이름 모를 누군가와도 인사를 나누고 도움도 주고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오래 남기고 싶다는 갈망이다.
64년의 세월이 남긴 흔적은 다양하다.
'65'로 향하는 다이어리는 구멍 난 부분을 메워주고 찢어진 흔적들을 꿰매주는 손짓이다.
 
더부살이는 무료가 아니다.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 아름다움이다.
'65살'은 지금부터 아름다움의 시작이다.
 
꽃 필 때를 알아 피운 꽃은 아름답다.
쓰인 곳에 쓰인 인간의 말 또한 아름답다.
- 나태주 님 시구에서 -

65살은아름다움의시작이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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