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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가 내리는 날, '만해'의 문을 열다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에 다녀와서

2015.04.29(수) 20:18:53모모(wonderfulhy@gmail.com)


봄비가 촉촉이 땅을 적시는날, 만해 한용운 생가를 찾았습니다. 홍성군 결성면에 위치한 이곳은 비 때문인지 찾는 사람이 없어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

▲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

▲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

 

한용운 선생 생가 뒷편 우물

▲ 한용운 선생 생가 뒷편 우물

 

한용운 선생 생가 뒷편에 핀 꽃

▲ 한용운 선생 생가 뒷편에 핀 꽃



  만해 한용운은 일제 강점기의 시인이자, 승려이자, 독립운동가로 불교를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두들 알고 있는 3·1 만세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기도 했는데 독립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당시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기도 했지요. 교과서로 배운 시 '님의 침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역사 인물이기도 합니다.

 

만해사(사당)의 모습

▲ 만해사(사당)의 모습

 

만해사(사당)의 모습

▲ 만해사(사당)의 모습

 

만해사(사당) 안에 있는 만해의 초상화

▲ 만해사(사당) 안에 있는 만해의 초상화



  만해 한용운 생가지는 생가 외에도 만해문학체험관과 만해사(사당), 민족시비공원이 있어 한용운이라는 인물에 대해 공부해 볼 수 있고, 넓은 공원에서 가족들과 따뜻한 봄을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만해문학체험관 내부 모습

▲ 만해문학체험관 내부 모습

 

만해 한용운 선생 모형

▲ 만해 한용운 선생 모형

 

만해문학체험관 내부에 전시된 옥중투쟁 3원칙

▲ 만해문학체험관 내부에 전시된 옥중투쟁 3원칙



  흔히 정직하고 곧은 사람을 일컬어 "대쪽같다."라고 하는데요. 한용운 생가지를 둘러보며 '만해 한용운 선생은 정말 대쪽같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용운 선생은 일제시대, 감옥에서 고초를 겪으면서도 주변사람들에게 변호사를 대지 못하도록 했으며, 사식을 취하지 말도록, 보석을 요구하지도 못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나라를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종교와 문학과 독립운동으로 생을 살다 간 이 대쪽같은 인물에 대해 더 알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일상에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생을 살다 간 분이니까요.

  봄이 성큼성큼 지나가고 있는 아쉬운 이 날, 교과서로 배운 시 '님의 침묵' 중 한 구절을 함께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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