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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녕 선생께서 바라보는 가을풍경?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영 선생 생가에도 가을이

2019.11.10(일) 23:21:44메아리(okaban@naver.com)

1919년 대한민국(大韓民國) 국호를 선포하셨고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구국의 선각자 석오 이동녕 선생의 생가지를 찾았다. 이동녕 선생의 삶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기념관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태극기 앞에는 선생의 흉상이 있고 자주 쓰시던 대의(大義)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대의(大義), 광명(光明), 산류천석(山流穿石)'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동녕 선생께서 평소 언급하셨던 어록이다. 기념관을 방문하여 방명록에 서명하고 기념도장도 받고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으로 열심히 정성을 다하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의미의 석오 이동녕 선생의 산류천석(山流穿石) 휘호석이 기념관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에는 마당 한쪽에는 우물이 있고, 안채에는 옛 가구와 인물인형이 전시되어 있다.
 

 
이동녕 선생 생가 앞마당도 형형색색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동녕 선생의 좌상으로 포토존에 앉아 홀연히 가을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뛴다.
 

 

 
석오 이동녕(1869~1940) 선생은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1907년 안창호,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작하였고, 이후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민위원 주석 등으로 20여 년 동안 임시정부를 이끈 임시정부의 수호자였다.
 
  

 
생가 옆 한쪽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500여년 된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다. 가운데 고목은 고사목 같았지만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꿋꿋하게 역경을 이겨낸 선생처럼 밑동에서 자란 나뭇가지가 커다란 고목이 되었다.
 

 
생가 뒷산은 왜가리 서식지로 조류관찰대를 이용하여 관찰할 수 있지만, 산란기가 아니어서 왜가리를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영원한 독립운동가 이동녕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엿볼 수 있었던 기념관은 주말에도 문을 연다. 관람은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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