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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박물관에서 만나는 특별한 국보와 보물들

보물 벽돌, 국보 보살입상과 의자왕 압송 사실 기록한 당유인원 기공비를 보며...

2018.08.12(일) 16:05:48유병양(dbquddid8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부여 박물관에서 만나는 특별한 국보와 보물들 사진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는 관람객
▲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는 관람객

벽돌 문화재를 전시중인 코너
▲ 벽돌 문화재를 전시중인 코너

국립 부여박물관에는 많은 국보와 보물 및 다양한 종류의 각종 문화재가 즐비하다. 하지만 무엇부터 보고 무엇을 제대로 봐야 하는지 사전에 충분히 공부하고 가지 않으면 ‘그냥 박물관 갔다 온 것’이 된다.
국보급 문화재를 비롯해 보물 등 권위있는 문화유산들은 그 의미와 함께 우리민족에게 전해주는 자부심이 매우 크고 중요하다.
이런 것들을 빠트리지 말고 관람하되 미리 어떤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건 무엇인지 알고 가면 더 알찬 관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 도민리포터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지 않은 보물중 벽돌 문화재, 많이 알려진 듯 하지만 속뜻은 잘 모르는 국보 1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물급 문화재이면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지만 백제 땅에서는 그 의미가 남다른 신라시대 문화재 1개를 각각 소개한다.
도민리포터 코너 애독자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어 봤으면 좋겠다.
 
보물 제343호로 지정된 연꽃무늬 벽돌
▲ 보물 제343호로 지정된 연꽃무늬 벽돌

제일 먼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인 부여 연꽃 무늬 벽돌을 소개한다.
이것은 충남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크기는 대략 가로 27.5 ㎝, 세로 28.0 ㎝, 두께 4㎝ 안팎이다. 보물 34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옛 백제인들은 벽돌 같은 건축 부재에도 연꽃을 피워올렸다. 보물 제343호로 지정된 연화문전, 즉 연꽃무늬 벽돌은 백제 시대에 제작돼 사용된 것으로 만개한 8잎의 연꽃잎 안쪽으로 원형의 씨방이 자리 잡고 있다.
기둥이나 다른 벽돌 부재와의 연결을 위한 홈이 안쪽으로 패어 있다. 이 벽돌은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산수무늬 벽돌 등과 함께 출토됐다.
1937년 3월, 충남 부여군 규암면 외리의 옛 절터에서 한 농부가 나무뿌리를 캐다가 우연히 발견한 무늬벽돌을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조선총독부가 주변 지역을 발굴하게 했다. 약 30점의 무늬 벽돌이 남북으로 약 9m로 줄지어 깔려 있었다. 산수무늬·산수봉황무늬·구름무늬·연화무늬 등의 벽돌이 나왔고 용과 도깨비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입을 크게 벌린 귀신무늬 벽돌도 출토됐다. 이 유물은 보물 제343호 ‘부여 외리 문양전 일괄’로 지정됐다.
 
그리고 연꽃무늬 뿐만 아니라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 있는 옛 절터에서 다양한 문양과 형상을 새긴 후 구워서 만든 백제 시대 벽돌이 다수 발견되었다.
산수문전, 산수봉황문전, 산수귀문전, 연대귀문전, 반용문전, 봉황문전, 와운문전, 연화문전으로 8매의 벽돌이 그것이다. 이 벽돌은 모두 정사각형에 가까우며, 네모서리에는 각기 홈이 파여 있어 각 벽돌을 연결하여 깔 수 있게 되어 있다.
  
연꽃구름무늬 벽돌
▲ 연꽃구름무늬 벽돌

이 연꽃구름무늬 벽돌은 구슬무늬로 이루어진 큰 원의 중앙에 작은 원을 두르고 있는 연꽃을 배치하였다.
주변에는 좌측으로 돌고 있는 8개의 구름무늬를 율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네 모서리에는 꽃잎을 배치하여 상하좌우 방향으로 다른 벽돌과 함께 배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봉황무늬벽돌
▲ 봉황무늬벽돌

봉황무늬벽돌(鳳凰文塼)은 갈색 경질에 고운 점토로 만들어졌다.
방형에 넓은 면의 한 면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문양전의 둥근 테두리 안에는 매우 율동적이고도 곡선미가 넘치는 상상의 동물인 봉황 한마리가 자연스레 배치되었다.
봉황의 머리 모습은 닭의 머리를 닮았으나, 부리는 독수리나 매의 부리처럼 날카롭게 구부러져 영험한 느낌을 주고 있다. 꼬리는 머리부터 S자 모양으로 구부러져 원형을 이루고 있어 회전하는 듯한 동작감을 준다.
몸체는 비늘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으며 전체적으로는 유기선으로 윤곽을 나타내고 있어 매우 강렬한 인상을 느낄 수 있다. 날개는 머리 위로 둥글게 치켜 올라가서 원을 그렸고 왼쪽 날개는 밑으로 향한 모습이다.
봉황문 둘레에는 주연을 마련한 후 연주문을 돌렸다. 모서리 사우(四隅)에는 십자형의 화엽이 장식된 상태이다.
 
용무늬벽돌
▲ 용무늬벽돌

용무늬벽돌은 툭 불거진 두 눈에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형상이다.
여기서 용은 왼쪽 앞발을 치켜들고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나 있다. S자형으로 머리와 몸을 휘감아서 온 몸을 비틀고 있는 용의 표현은 금동대향로의 받침에 표현된 용트림하는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연판에 당초무늬가 배치된 연꽃무늬벽돌이나 연꽃과 구름무늬가 함께 배치된 연꽃구름무늬벽돌 또한 금동대향로 몸통의 받침에 표현된 연꽃무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보면 백제 금동대향로와 외리의 무늬벽돌은 무늬의 계통이나 그 사상적 배경이 거의 같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산풍경도깨비무늬벽돌
▲ 산풍경도깨비무늬벽돌

도깨비무늬 벽돌은 산풍경도깨비무늬와 연꽃도깨비무늬 두종류가 있다. 귀면문이라고도 부른다.
도깨비는 우람하면서도 익살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으며, 도깨비 다리 주위로 연꽃을 둘렀다.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데 약간 기괴한 모습에 입을 크게 벌린 얼굴과 신체 표현, 허리띠의 모양이 독특하다.
귀신, 도깨비의 얼굴로 불리기도 하는 귀면문은 인간 생활을 위협하는 재앙과 질병 등의 사악한 것들의 초자연적인 존재인 귀신의 힘을 빌어 멀리 쫓음으로써 행복을 얻고자 하는 벽사구복(酸邪求福)의 기원에서 나온 상징적인 도안의 하나이다.
 
연꽃도깨비무늬벽돌
▲ 연꽃도깨비무늬벽돌

우리 역사에서 귀면문은 4세기 후반 무렵의 고구려 벽화 고분에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하며, 그 용도는 주로 궁궐이나 사원 등 건축물에 쓰인 기와류, 출입문고리, 그 밖의 공예 장식 의장 등에 쓰였다.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얼굴만을 크게 부각시킨 예가 많으나, 전신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백제의 귀면문은 금속 공예품이나 막새기와, 서까래기와의 문양으로 사용되었고 부여 외리에서 출토된 무늬전돌에서는 전신상의 귀문이 장식되기도 하였다.
연화귀형문전은 산경귀형문전과 동일한 도깨비 형상을 하고 있으나 연꽃 위에 서 있는 것이 다르다.
 
국보 제293호 금동관음보살입상을 전시중인 코너
▲ 국보 제293호 금동관음보살입상을 전시중인 코너

이제는 국보 제293호 금동관음보살입상을 알현할 차례다.
높이 21.1㎝인 이 금동관음보살입상은 1907년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에서 출토되었다.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은 복판(아래로 향한 꽃잎)으로 된 둥근 연화대좌 위에 똑바로 선 자세를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삼면보관을 쓰고 있는데, 앞면에는 화불이 조각되어 있다.
 
국보 제293호 금동관음보살입상
▲ 국보 제293호 금동관음보살입상

부여 박물관에서 만나는 특별한 국보와 보물들 사진

전반적으로 보아 얼굴이 약간 크고 둥글며 몸은 가늘고 긴 편이나 신체적인 비례는 잘 맞는다. 두 뺨이 통통하고 눈은 가늘게 약간 옆으로 올려져서 표현되었으며, 자그마한 입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귀는 작은 편이고 양쪽에서 내려온 머리칼이 어깨까지 닿아 있다.
 
가느다란 목걸이를 걸쳤고 가슴에 대각선으로 둘려 있는 상의는 두 줄의 선각으로 표시되어 있다. 양어깨로부터 늘어진 구슬장식[瓔珞]은 허리 부분에서 자그마한 연화장식을 중심으로 교차되었다. 군의(裙衣)는 허리에서 한 번 접혀서 내려와 발등까지 덮였는데, 양다리 위에는 가는 음각선으로 옷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우측면
▲ 우측면

좌측 후면
▲ 좌측 후면

완전 뒷면
▲ 완전 뒷면

오른손은 어깨 옆으로 들어서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구슬[보주, 寶珠]을 잡았으며, 왼손은 내려서 양어깨에서 부드럽게 늘어뜨린 천의(天衣) 자락을 살짝 잡고 있다. 두 팔뚝과 팔목에는 팔찌를 낀 표시가 간단한 선으로 표현되었다.
 
이 보살상에서 나타난 X자형으로 길게 늘어진 구슬장식은 7세기에 들어와서 유행하는 삼국시대 보살상 표현의 한 특징이라 하겠다.
 
당 유인원 기공비가 세워져 있는 누각
▲ 당 유인원 기공비가 세워져 있는 누각

부여 박물관에서 만나는 특별한 국보와 보물들 사진

오늘 마지막으로 보는 부여 당 유인원 기공비(扶餘 唐 劉仁願 紀功碑)다.
신라 문무왕 3년(663)에 당나라 장수 유인원(劉仁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다. 현재 보물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소산에 세 조각으로 깨진 채 흩어져 있던 것을, 그 자리에 비각을 세워 복원해두었다가 해방 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다.
비몸돌과 머릿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머리부분은 각이 없이 둥글다. 특히 머릿돌은 여섯 마리의 용조각이 매우 사실적인데, 좌우 양 쪽에서 세 마리씩의 용이 올라가 서로의 몸을 휘감고 중앙에 있는 여의주를 서로 다투고 있다.
이는 당나라 전기의 화려한 수법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당 유인원 기공비
▲ 당 유인원 기공비

부여 박물관에서 만나는 특별한 국보와 보물들 사진

비문은 유인원의 가문과 생애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그의 생애에 대한 부분은 주로 그가 당나라 태종에 의해 발탁된 이후의 활동상을 적고 있다. 그는 645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할 때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660년에 소정방과 더불어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킨 뒤 백제유민들의 부흥운동도 평정하였다. 그 이후의 행적은 비문이 지워져 더 이상 알 수 없다.
 
비가 세워진 시기는 통일신라 문무왕 3년(663)으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에 비문을 새긴지 3년 후이다. 비록 당나라 장수의 공적비이기는 하지만 비문 중에 의자왕과 태자 및 신하 700여 명이 당나라로 압송되었던 사실과 부흥운동의 중요내용, 폐허가 된 도성의 모습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아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이상과 같이 눈여겨 보지 않으면 그냥 쉽게 지나쳐 버릴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 3가지를 둘러보았다.
특히 당나라 장수의 공덕을 기려 신라시대에 세운 비석이 백제땅 부여에 남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웁다.

앞으로도 이렇게 숨어있는 중요한 문화재들을 찾아 많이 소개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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