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가 무려 13종이나 된다는 사실 아세요?

2016.12.13(화) 01:46:52 / 양창숙


5천년 장구한 민족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가 그간 겪었던 아프고 험난했던 괴거사를 떠올려 볼때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그냥 지나칠수가 없다. 그만큼 우리에게 침탈의 상처를 너무나 많이 준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일제 강점기 36년이라는 세월은 이루 다 헤아릴수 없는 깊은 고통과 민족적 수치심을 안겨줬고, 궁극적으로는 나라가 두동강 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은 순순히 그들에게 짓밟히고만 있지는 않았다.
의병과 독립지사들의 지속적인 항거가 있었고, 특히 전국적인 만세운동도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몰랐던, 아마도 전문가가 아니면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들 대다수가 모르고 있는 사실 한가지를 최근에야 알았다. 그 중요한 사실을 오늘 공개하기로 한다.
 
우리가 어릴적부터 배웠던 3.1운동과 3.1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
이는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선언한 문서로 1919년 3월 1일의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
그 독립선언서가 그때 낭독된 그것만 있는게 아니라 자그만치 13종류나 된다는 사실.
우리 국민들중 몇이나 이것을 알고 있을까.
그중 우리가 배워서 알고 있고 지금도 학생들이 역사교과서에서 배우는 ‘독립선언서 원전’은 손병희 선생 등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해 파고다공원에서 낭독한 것이다.
그 외 것들은 모두 그때를 전후해 서로 각기 다른 지역, 장소, 사람들에 의해 발표되고 선언된 것들이지만 당시로서는 전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이 자주독립국가임을 선포한 귀중한 선언문이며, 훗날 일본이 패망한 뒤 세계열강들이 조선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천안 독립기념관

▲ 천안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태극기

▲ 독립기념관 태극기


독립기념관 본관

▲ 독립기념관 본관


전시실의 관람객들

▲ 전시실의 관람객들


현재 독립기념관에 소장중이며 관람객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13종의 독립선언서 전부와 그밖의 귀중한 자료들을 소상히 소개한다. 그동안 이런 사실을 몰랐던 분들, 어린 자녀들이 있는 가정에서도 좋은 공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제일먼저 만나보는 3.1 독립선언서.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해 조국 독립과 민족 자주를 선언한 3.1독립선언서. 이 선언서 발표 후 한민족은 거족적 만세 운동을 전개해 독립의지를 전세계에 알렸다. 파고다 공원에서 낭독한 이 선언문이 독립선언서의 ‘바이블’인 셈이다.
 


자주독립선언서.
3.1운동의 감격을 재현하기 위해 보성사 사장이던 이종일 등 사원 일동이 선포한 독립선언서. 1922년 3월1일 일이다.
 


조선독립선언서.
음력 1919년 2월 만주의 린장현 마오얼산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
 


대한독립선언서
만주와 러시아 지역 한국 독립운동가 39명이 육탄혈전으로 조국 독립을 달성하겠다고 결의한 독립선언서.
 


민족대표 33인의 미니어처 앞에서 각종 유심히 관람하는 사람들.


대한인국민회 선언서
미주지역 한인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하와이 동포들이 만든 독립선언서.
 


임시정부 발행 대한독립선언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독립선언서로서 3.1독립선언서 및 공약3장, 임시정부 선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19년 4월.
 


영문 3.1독립선언서.
1919년 3.1운동 당시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해외에 전파하기 위해 제작한 독립선언서 영문판.
 


대한승려연합회 독립선언서
대한슨려연합회가 1919년 11월 15일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모든 승려가 힘을 합쳐 봉기할 것을 촉구한 독립선언서.
 


대한독립선언서.
압박받는 약소민족을 동정하는 세계사조의 흐름을 타고 한국민족도 함께 일어나자는 내용을 담아 박치화 등 12명이 발표한 독립선언서. 1919년 3월 18일에 발행됐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구 중 하나인 경성부청 앞에서 만세운동을 벌이고 있는 군중들.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고 있는 여성들.
 


대한독립여자선언서.
1919년 2월 김인종 김숙경 등 만주지역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발표한 독립선언서. 한국을 강점한 일제를 규탄하고 독립운동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독립선언포고문.
1919년 3월 13일 중국 북간도 룽징의 3.13만세운동 당시 발표된 포고문으로 한국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선포하고 서울의 3.1독립선언식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단고있다.
 


대한국민의회 선언서.
1919년 3월 러시아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가 한국이 독립국가임을 알리고 주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혈전을 불사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발표한 선언서.
 


전명운 독립선언서
191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저격하고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전명운이 소장하고 있던 독립선언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경에 피체되고 있는 학생들.
 


만세운동 당시 일경에 붙잡혀 모진 고문 끝에 불구가 되거나 장애를 입고 나온 조선의 남성들.
 
이상 독립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각 지역, 각 독립운동가와 단체들이 당시에 만들었던 독립선언서를 모두 살펴 보았고, 또한 사이사이에서 만세운동과 관련한 각종 귀중한 자료사진들을 살펴 보았다.
이어서 그 외 다른 귀중한 자료들도 있어서 함께 보기로 한다.
 


1920년 3.1운동이 일어난 다음해 독립선언으로 피체된 민족대표 등 총 48명의 인적사항과 형량이 기록된 판결문.
 


시간이 많이 흘렀다. 1941년 광복 4년전 그해 3월1일, 거족적인 3.1운동에 의해 민족의식과 혁명사상이 발전하게 되었음을 밝힌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의 3.1절 22주년 기념 발표 선언문.
 


광복 한해전이었던 1944년, 3.1운동 25주년을 맞아 한국광복군이 작성한 선언문으로 임시정부 지지와 우방국가 장병들과의 긴밀한 관계유지를 천명하는 제25주년 3.1절 기념대회 선언문.
 


유관순열사 재판기록
서울의 복심법원에서 열린 유관순 열사 외 10명에 대한 판결문. 유관순 열사는 1심판결에서 징역 5년을 받았고 복심 판결에서 징역 3년을 언도받았다. 1919년 6월30일의 일이다.
 


유관순열사 수형기록표
1919년 3.1운동 후 당시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피체된 유관순 열사의 수형기록표.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 갇혀서도 독립만세를 부르다 고문으로 그 이든해인 1920년 옥사했다.
 


독립군단 주요인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안무, 최해, 지청천,이회영, 양기화, 이상룡, 김동삼, 김좌진, 전덕원, 서일, 홍범도, 오동진, 신팔균, 이범석, 편강렬.
 

독립기념관 전시실 앞의 무궁화

▲ 독립기념관 전시실 앞의 무궁화


독립선언문은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남선은 훗날 친일행적을 적잖게 했기 때문에 큰 아쉬움이 남는 인물이다.
이 선언서 원본 2건은 지난 10월에 2016년 10월 20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664-1호, 제664-2호로 각각 지정하였다.
 
역사를 잊는 민족은 희망이 없다. 똑같은 치욕을 똑같이 당해도 할말이 없다. 우린 그래서 후세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선조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해야한다.
오늘 포스팅한 독립선언서와 각종 자료들을 보면서 역사의 중요성을 자녀들에게 다시금 제대로 가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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