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산 양유정공원에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넓게 가지를 펼쳐 짙은 그늘을 만들고 있다. 나무 사이로 팔각정과 운동기구가 보여 오래된 마을숲과 주민들의 생활공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선조들이 헤아린 절기는 무시 못 하나 보다. 그렇게 미친 듯 기승을 부리던 폭염도 입추를 지나면서 한풀, 아니 몇 풀은 꺾였다. 여름이 순순히 물러난 것은 아니어서 오전부터 햇볕은 따가웠지만, 바람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뜨거운 공기를 이리저리 밀어놓는 것 같던 바람 끝에 제법 서늘한 기운이 묻어났다.
14일 오전 충남 서산시 읍내동 양유정공원을 찾았다. 공원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매미들만 남은 여름을 다 써버리려는 듯 마지막 발악처럼 울어댔다. 그 소리 사이로 바람이 높은 나뭇잎 사이를 슝슝 지나갔다. 팔각정도 운동기구도 조용했고, 나무 아래에는 빈 의자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인데도 잠시 시간이 멈춘 듯했다. 사람 대신 오래된 나무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300년 나무 앞에서 생긴 궁금증

▲ 양유정공원의 보호수 느티나무와 굵게 뻗은 뿌리.
양유정공원은 깊은 산속 숲이 아니다. 주택과 도로가 바로 곁에 있고 자동차 소리도 들린다. 무심코 지나치면 동네 공원 하나쯤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안으로 몇 걸음만 들어가면 생각이 달라진다. 굵은 느티나무들이 사방으로 가지를 펼쳐 공원 위에 커다란 지붕을 만들고 있다.
한 느티나무 앞 보호수 표석에는 '수령 300년, 수고 20m'라고 적혀 있었다. 숫자를 읽고 다시 나무를 올려다봤다. 사람의 한평생을 몇 번이나 이어 붙여야 닿을 시간이다. 몸통을 사진에 담으면 나무의 꼭대기 부분인 우듬지가 잘리고, 나무 전체를 담으려면 한참 뒤로 물러나야 했다. 깊게 팬 껍질과 굵게 갈라진 가지, 땅 위로 불쑥 드러난 뿌리가 세월을 말 대신 몸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이 일대에는 수령 300~400년으로 알려진 느티나무들이 남아 있다. 오래된 나무 몇 그루가 있다는 말만으로는 실제 풍경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나무 아래 서면 먼저 그 크기에 눌리고, 그다음에는 이 나무가 견뎌온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나무를 바라보다 문득 이상했다. 이곳 이름은 양유정(楊柳亭)이다. '양(楊)'은 버들 양과 '유(柳)' 버들 류로 모두 버드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글자다. 그런데 정작 눈앞을 채운 것은 느티나무였다. 버드나무는 어디로 간 걸까. 그 궁금증을 따라가자 지금은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양유정이 나타났다.
도로 아래로 사라진 물길

▲ 양유정공원의 수령 400년 느티나무 보호수.
오래전 이 일대에는 명림천이라는 개천이 흘렀다고 한다. 부춘산과 명림산 일대에서 내려온 물이 마을을 지나고, 물가에는 수양버들과 능수버들이 늘어섰다. 지역에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1960~70년대까지도 주민들이 이곳에서 멱을 감고 천렵을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지금 자동차가 오가는 길을 바라보며 잠시 현재의 풍경을 지워봤다. 아스팔트 자리에 맑은 개천을 놓고, 양쪽으로 버들가지를 늘어뜨렸다. 그리고 이른 아침 물 위로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더해봤다.
옛사람들은 그 풍경을 '양유쇄연' 또는 '유정쇄연'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버드나무와 정자 주변을 물안개가 감싸던 모습이다. 1927년 발간된 <서산군지>에도 이 일대의 경관이 기록돼 있으며, 양유정은 옛 서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꼽은 팔경 가운데 한 곳으로 전해진다. 이름만 들어도 한 폭의 그림 같다. 개천이 흐르고 버드나무가 물을 향해 가지를 늘어뜨리고, 그 사이 정자가 안개 속에 잠긴 풍경이다.
하지만 도시가 커지면서 명림천의 모습도 바뀌었다. 인구가 늘고 생활하수가 유입되면서 물이 오염됐고, 1990년대 복개공사가 진행되면서 개천은 도로 아래로 들어갔다. 물길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물안개도 사라졌다. 버드나무 역시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한때 사람들이 이름까지 붙여 감상했던 풍경 하나가 도시 아래로 숨어버린 셈이다.
버들은 사라졌지만 느티나무는 남았다

▲ 수백 년 된 느티나무 아래 빈 의자들이 놓인 양유정공원.
그렇다면 버드나무가 사라진 자리에 왜 이렇게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남아 있을까. 양유정의 느티나무들은 마을의 수구(水口)를 보완하기 위해 심은 비보림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수구는 개울이나 물길이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는 어귀를 말한다. 옛사람들은 수구가 훤히 열려 있으면 물과 함께 마을의 좋은 기운도 빠져나간다고 여겨 나무를 심어 허한 지세를 보완했다.
비보림(裨補林)은 말 그대로 ‘도와서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숲’이라는 뜻이다. ‘비보(裨補)’는 부족하거나 허한 부분을 도와 채운다는 의미이고, ‘림(林)’은 숲을 뜻한다. 풍수적인 의미에서 마을의 허한 지형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했지만, 실제로는 바람을 막고 땅을 붙들며 여름에는 넓은 그늘을 내어주는 생활의 숲 역할도 했다.
풍수의 의미도 있었지만 생활 속에서 큰 나무의 쓸모는 분명했다. 바람을 막고 땅을 붙들었으며 여름이면 넓은 그늘을 내어줬다. 느티나무는 특히 오래 살고 가지가 넓게 퍼져 예부터 정자나무로 사랑받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가의 버드나무는 하나둘 사라졌지만 느티나무는 살아남았다. 이름은 여전히 버들을 기억하고 있는데, 오늘의 양유정 그늘은 느티나무가 만들고 있는 셈이다.
공원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이날 오전에는 끝내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팔각정은 비어 있었고 운동기구도 멈춰 있었다. 공원 한쪽의 놀이시설까지 주인을 기다리듯 조용했다. 몇백 년 된 나무와 오늘의 생활시설이 한 울타리 안에 겹쳐 있는 모습이 묘했다.
나무 아래 빈 의자는 여전히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한쪽에서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다른 쪽에서 받아쳤고, 바람이 크게 지나갈 때마다 높은 느티나무 잎들이 한꺼번에 몸을 뒤집었다.
이렇게 조용한 곳이 한때 서산 사람들이 모이던 장소였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공원과 문화시설이 많지 않았던 시절 양유정은 시민들의 만남터이자 행사장이었다고 한다. 국경일 행사가 열리고 선거철이면 유세장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는 친구를 기다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장을 보고 돌아오다 이 나무 아래에서 땀을 식혔을 것이다. 그날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빈 의자 하나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떠올랐다.
없는 것을 보러 걷는 곳

▲ 양유정공원 느티나무 그늘에 자리한 그네.
양유정에는 지금 없는 것이 많다. 이름의 주인공이던 버드나무는 얼마 남지 않았고 명림천은 보이지 않는다. 물 위로 피어오르던 안개도 만날 수 없다.
그런데 사라진 이야기를 알고 나니 오히려 없는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도로를 보면 개천이 떠올랐고, 느티나무 사이에서는 물가로 늘어진 버들가지가 겹쳐졌다. 팔각정을 바라보면 안개 속 옛 정자가 떠올랐다.
여행에는 눈앞에 펼쳐진 절경을 보는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라진 풍경을 마음속으로 복원해가며 걷는 여행도 있다. 양유정은 그런 곳이었다.
다시 가장 큰 느티나무 아래에 섰다. 볕이 닿는 곳은 여전히 여름이었지만 나무 아래 공기는 달랐다. 수많은 잎이 햇볕을 받아내고 바람이 우듬지를 통과할 때마다 서늘한 기운이 내려왔다.
300년 전에도 이런 바람이 불었을까. 그때는 자동차 소리 대신 개울물 소리가 났을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많은 버드나무가 흔들렸을 것이다. 이른 아침이면 물안개도 피어났을 것이다. 그래도 큰 나무 아래 사람이 잠시 더위를 피했다는 점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오래된 나무는 과거를 보여주는 전시물이 아니었다. 여전히 여름을 견디게 해주는 생활의 일부였다. 그 사실이 나무를 한 번 더 올려다보게 했다.
공원을 나올 때까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매미는 여전히 여름의 끝을 붙들고 울었고, 입추 지난 바람은 오래된 나뭇잎 사이를 슝슝 지나갔다. 빈 의자도 그대로였다.
명림천은 땅 아래로 사라졌고 물안개도, 버들숲도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수백 년을 견딘 느티나무는 같은 자리에서 가지를 펼치고 있었다. 올여름이 지나고 매미 소리가 잦아들어도, 다음 여름이면 다시 누군가에게 그늘을 내어줄 것이다.
양유정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풍경은 어쩌면 물안개도, 버들숲도, 정자도 아닐지 모른다. 나무 아래 누군가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남겨둔 자리. 그날에는 빈 의자 몇 개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약속을 지키는 사람처럼.
양유정공원 정보
○주소: 충남 서산시 읍내동
* 취재일: 2026년 8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