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산 화암사의 '무량수각' 편액.복제품.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시절 보낸 친필로 원본은 수덕사 근역성보관 보관중.
늦장마가 물러간 불볕 여름은 비워진 하늘만큼 더 깊고
젖은 산길 위로 말라가는 흙냄새는
식지 않은 바람이 천천히 뒤섞여 있습니다.
오석산 아랫자락 기대선 절집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 조용한 몸집 안에
추사 문중과 한 서예가의 평생이 눌러앉아 있습니다.
법당과 요사채 편액마다 추사의 손길이 남아 있고
바위에 새겨진 글씨들은 산보다도 더 오래 사람의 마음을 붙듭니다.
그 앞에서 한 선비의 글씨가 어떻게 삶의 상처를 지나
마침내 한 시대의 얼굴이 되는지 떠올립니다
제주의 바람 속에서 다듬어진 획
유배의 고독 속에서 더 깊어졌을 정신
다시 예산으로 돌아와
절집 현판과 암각 문으로 남은 숨결이
이 여름의 뜨거운 공기 속에서
조용히 되살아납니다.
추사체는 처음부터 완전했던 것이 아니라
흔들림과 결핍의 깨달음 속에서 제 몸을 얻은 듯합니다.
그 완성의 과정은 한 번에 꺾이지 않는 획처럼
길고도 고독했을 것이며
화암사의 바위와 누각은 그 오랜 수련의 증인이 되어
지금도 말없이 서 있습니다
젊은 날 단정하게 쓰고 싶던 말들은 이제 삶의 굴곡을 지나
비로소 한 줄의 체온이 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완성은 빠른 결심이 아니라
오래 견딤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것임을 일러 줍니다.
절집이면서도 하나의 서실이고
바위이면서도 한 권의 시문이며
늦은 여름의 빛 아래서도 끝내 마르지 않는
정신의 샘처럼 나는 그 앞에서 삶의 한 획을 배웁니다.
화암사는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1길 21-29 (용궁리 202) 일대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 소속의 전통사찰입니다. 추사 김정희와 그의 일가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원찰(願刹. 가문의 복을 빌기 위해 건립하거나 중건한 사찰)로 주변에 ‘추사고택’을 비롯해 ‘화순옹주홍문’, 백송 등 추사 관련 유적이 즐비한 데다 현판과 석각 등 추사의 글씨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입니다.

▲ 충남 예산군 전통사찰 화암사 전경. 입구가 마치 사대부의 집과 같다.
창건연대는 중창비 등 여러 관련 기록을 통해 신라 시기부터 법등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관련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 차례 중수와 소실을 거친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이론이 없습니다. 화암사 중수과정을 기록한 현판에서는 “이 절의 창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며 “1752년(조산 영조 28년) 김한신이 그의 아버지 김홍경(1667~1750)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절을 중건했다”는 내용을 남겼습니다. 김한신은 추사의 증조부로 조선 영조의 둘째 딸이자 사도세자의 누이동생인 화순옹주와 결혼해 월성위로 봉해져 추사고택 일대를 ‘별사전’으로 받았는데, 이때부터 화암사는 사실상 추사 가문의 원찰로 자리 잡게 됩니다.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전경.
이로부터 화암사는 자연스레 추사 집안의 신앙과 기억, 예술이 겹치는 공간이 되었고, 추사 역시 어린 시절부터 깊은 인연을 맺었는데 제주 유배 중에도 화암사 중건과 관련해 자신의 글씨를 보냈습니다. 1864년(헌종 12년)에는 절이 허물어지자 추사는 일가와 함께 무량수각을 비롯해 요사, 선실, 시경루, 창고 등을 지었는데 옛 법당 터에는 약사암을 중건하고 삼존상을 봉안했다고 합니다.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전각에 걸린 추사 김정희 편액.
가람배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쪽(향좌)으로 약사전이 왼쪽으로 석조미륵과 석탑이, 그리고 그 앞으로 종각이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사찰 입구의 요사가 마치 고택처럼 자리 잡고 있어 얼핏 사찰로 보이지 않지만, 요사를 지나면 전형적인 사찰공간이 나옵니다.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대웅전.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석조미륵과 석탑.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석탑의 사면 모서리. 잔면부터 반시계방향.
대웅전은 전면 3탄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의 아담한 크기로 1988년 새로 지었습니다. 불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협시하는데 영산후불탱화와 칠성탱, 인중탱,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대웅전의 현판은 수덕사 방장으로 주석했던 원담스님의 친필입니다. 대웅전 주련은 佛身普遍十房中(불신보편십방중),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 汪洋覺海渺難窮(왕양가해묘난궁)으로 “부처님 몸은 십방세계에 가득하고, 삼세의 부처님들도 이와 한가지시네, 크고도 넓은 원력 구름은 항상 다함이 없고, 한없이 넓은 깨달음 끝도 아득하여라”로 걸려있습니다.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대웅전 삼존불.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대웅전 현판을 두 마리 용이 지키고 있다.
약사전은 전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맞배지붕으로 1864년 추사가 일가들과 함께 중건한 것으로 불전에는 약사여래 상과 석조약사여래상이 있습니다. 석조약사여래상은 절 인근에서 발견된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1869년 제작된 아미타극락희도와 신중탱화(1900년 제작)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약사전.
화엄사에는 추사가 새긴 것으로 알려진 석각 3점이 전해지는데 절 뒤편의 병품바위 2곳에 각각 ‘詩境(시경)’과 ‘天竺古先生宅(천축고선생택)’이라 새겨져 있고 400여m 떨어진 곳에는 ‘小蓬來(소봉래)’라는 글귀와 함께 밑으로 ‘秋史題(추사제)’라는 작은 글씨도 보입니다. 시경은 추사가 1846년 이 자리에 시경루를 세웠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글씨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경은 시의 경계 또는 시훈을 불러일으키는 풍취라는 뜻으로 추사가 부친을 따라 사신 일행으로 중국 연경에 갔을 때 스승으로 모신 담계 옹방강으로 부터 받은 탁본 글씨를 새겨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서로 쓴 글은 송나라 시인으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추앙을 받았던 육유의 글씨로 알려져 있는데 추사의 친필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추사의 석각 가운데 '시경'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추사의 석각 가운데 '시경'2
또한 ‘천축고선생택’은 옹방강의 집 대문 양쪽에 ‘상견동피구거사 엄연천축고선생’이란 대련이 걸려 있었는데 여기에서 ‘천축고선생택(댁)’이라는 문구를 떠올려 이곳 화암사 뒤편 병풍바위에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천축고선생댁은 석가모니를 지칭하는 것으로 조선후기 소동파를 흠모한다던 선비들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문구인데 소동파와 석가모니를 동일시 하는 것입니다. 추사가 소동파를 얼마나 흠모했는지 알려주고 있다고 합니다.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추사의 석각 가운데 '천축고선생댁' 1.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추사의 석각 가운데 '천축고선생댁' 2.
시경 암각문 좌측으로 오르다 갈림길에서 좌측(우측은 추사고택)으로 400m 정도 오솔길을 걸으면 쉰질바위 소봉래 암각문이 나옵니다. 스승인 담계 옹방강의 집앞 석순에 ‘蓬萊(봉래)’라 쓰여진 걸 보고 자신은 ‘소봉래(小蓬萊)’로 새기고 이를 넣어 자신의 호를 소봉래학인, 소봉래주인, 소봉래, 소봉래각, 소봉래산인, 봉래산초, 소봉학인 등으로 불렀습니다.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추사의 석각 가운데 '소봉래' 1.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추사의 석각 가운데 '소봉래' 2.
추사 김정희는 시, 서, 화, 금석학의 대가로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했는데 제주 유배 전후 추사체를 완성합니다. 화암사의 편액들은 추사체를 완성한 이후의 것들로 대표적인 것은 ‘無量壽閣(무량수각)’ 현판입니다. 그가 귀양길에 들렀던 해남 대둔사에서 써준 무량수각(1840)은 획이 기름지고 두텁고 자신감이 넘치며 윤기가 흐르지만, 귀양 후 예산 화엄사의 무량수각(1846)은 기름기가 빠지고 메마른 듯 원형질을 드러낸 명상적 글씨입니다. 귀양이라는 역경 속에 치열한 자기와 투쟁의 결정판으로 추사체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추사 자신도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흔 평생 벼루 열 개를 밑창 내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든(七十年 磨穿十硏 禿盡千毫)” 결과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 전통사찰 예산 화암사 범종.
< 예산군 화암사 >
○ 위 치 :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1길 21-29 (용궁리 202)
○ 연락처 : 041-332-9250
○ 운 영 : 연중무휴 (일몰 이후 출입제한)
○ 입장료 및 주차장 : 무료 (사찰 인근 간이 주차장)
○ 취 재 : 2026년 8월 1일 등
< 참고문헌 >
박철상. (2022). [특집-추사의 흔적] 추사 (秋史) 의 예산, 예산 (禮山) 의 추사. 문헌과 해석, 47-71.
이도남. (2015). [역사이야기] 유배지에서 꽃핀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월간 공공정책, 114, 102-105.
전통사찰총서 13 - 대전·충남의 전통사찰 2, 사찰문화연구원, 1999년
충남지역의 문화유적 – 예산편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88)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정보(https://www.khs.go.kr)
충남디지털문화유산(https://www.chungnam.go.kr)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https://www.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