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극락전 전경.
한여름 열기가 가야산 위로 번지는
그 뜨거운 공기 속을 지나 보덕사로 향합니다
산의 그늘까지 데우는 무더위건만,
서원산 나뭇잎 사이 한숨 같은 바람은 잠시 한숨을 돌리게 해줍니다.
절집에 닿은 뜨거운 빛이 문밖에 머물수룩
안쪽 공기는 오래된 그늘처럼 차분해집니다
가야사가 무너진 자리 먼저 불이 지나가고
그 재 위에 남은 것은 석탑과 석등의 뜨거운 기억입니다
산은 오래도록 침묵하였고 바람조차 말을 아끼지만
명당을 얻으려는 한 사람의 뜻이
한 절집의 세월을 밀어내고 묘가 들어선 뒤에도
땅은 끝내 그 일을 쉽게 잊지 못했습니다
가야산 능선은 무너진 터를 감싸 안은 채
무엇이 옳았는지 무엇이 돌아올 수 없는지
그저 묵묵히 품고 있었습니다
극락전 처마 아래 세월에 닳은 얇은 적막이 걸리고
무더운 계절에도 사람의 마음을 가만히 식혀 주면
오래된 기록 속 역사의 굽은 길들을 바라봅니다
크게 번지는 장면보다 오래 견디는 자리 하나를 더 믿어야할까요
보덕사 마당에 서면 세상이 덥다고
마음까지 덥게 살 필요는 없다는 듯
나무와 기와와 돌이 각자 알맞은 온도로 자리를 지킵니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내려도
무더위는 지나고 그늘은 사람의 마음으로 남습니다
견딘 만큼 부드러워진다는 것을 절집의 말없는 가르침입니다
보덕사는 더위에 지친 몸을 쉬게도 하지만
동시에 세월의 무게를
천천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하는 곳입니다
그 고요한 배움 하나를 오래된 숨처럼 가슴에 묻고
다시 뜨거운 바깥으로 걸어 나옵니다.
보덕사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로 400-74(상가리 277번지) 서원산(書院山. 473m) 기슭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 소속 전통사찰입니다. 조선 말기 왕실의 운명을 결정했던 풍수설이 전설 같은 역사로 남은 사찰로 2018 개봉한 영화 ‘명당’의 배경이 되었던 가야사(伽倻寺)의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극락전 현판과 처마선.
창건연대는 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입니다. 흥선은 “2대에 걸쳐 왕을 낳게 한다”는 ‘이대천자지(二代天子地)’의 풍수설을 간직했던 가야사를 1860년(철종 11년) 마곡사 스님들을 시켜 불태우고는 금탑을 세웠던 절터에 자신의 아버지 남원군 묘를 이장했는데, 마침내 소원이 이루어져 둘째 아들인 고종(1863∼1907)이 왕위에 오르자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현재 위치에 절을 새로 짓고 ‘보덕사(報德寺)’로 불렀다고 합니다. 황현(黃玹)의 ‘매천야록’에는 “갑자년(1864) 이후 국비를 들여 절을 짓고 이름을 보덕사(報德寺)라고 했다. 금을 칠해 극히 웅장하고 화려하며 장엄했다. 논밭을 하사하고 보화도 주었는데 보덕사의 현판도 대원군이 친히 썼다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별당.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별당 공양주방. 조방신이 모셔져있다.
가람배치는 사방 정토의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충남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왼쪽에 서별당, 정면에 주지실, 오른쪽에 동별당이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튼 ‘ㅁ자’형 구조입니다. 극락전은 전면 3칸에 측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에 겹처마 양식으로 지었습니다. 석축을 쌓아 기단을 조성하고 주춧돌 위로 원형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 위 공포는 무출목 이익공으로 도리에 화초문양 복화반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6·25전쟁 때 불에 탔다가 중창한 것입니다.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극락전 전경.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극락전에서 바라본 'ㅁ자' 구조의 사찰.
극락전 불전에는 수미단 운궁형 닫집을 장엄하게 만들고 좌우 협시보살 없이 건칠불위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불상의 닫집 위에도 여러 마리의 용이 그려져 있습니다. 건칠불은 흙으로 불상의 형태를 빚고 그 위에 삼베를 입힌 거 옻칠을 바르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고는 마지막으로 금박을 입혀 완성한 것입니다.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극락전 불전의 아미타불.
불당에는 ‘아미타여래도’, ‘지장시왕도’, ‘현왕도’, ‘신중도’ 등 4점의 불화가 1865년 제작되었는데, 지장시왕도의 하단 화기에 “동치(同治) 4년 1865년 7월에 충남 덕산군 보덕사의 불상과 각각의 불화들을 제작해 봉안한다. 대시주자는 경성 내수동 흥선대원군 경진생 이씨와 여흥부대부인 무인생 민씨”라고 적어 놓고 있습니다. 이 같은 불화를 제작한 것은 흥선대원군이 정치적 위기 속에서 왕실과 국가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극락전 아미타불 좌측(향우)의 불화.
불화 가운데 ‘아미타여래도’는 극락정토를 상징해 중앙에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주변에 보살들과 호법신을 함께 그려 조선 후기 불화의 전형적인 구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장시왕도’는 사후 세계 심판을 상징하며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의례적 기능의 불화로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현왕도는 명부계 불화로 현세와 내세의 연결을 상징합니다.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극락전 아미타불 우측(향좌)의 불화와 산신도 등.
극락전 앞마당의 석탑과 석등은 조성양식이나 조각수법 등으로 미뤄 보덕사가 창건되기 이전 것으로 가야사에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3층석탑(충남 문화유산자료)은 일제강점기 1914년 일본인이 몰래 반출하려던 것을 보덕사 주지의 항의로 돌려받았다고 합니다. 2층 기단위로 3층의 탑신을 올렸는데 원래는 5층으로 추정되는데 일부가 훼손되어 3층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삼층석탑.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삼측석탑 사면 모서리. 전면부터 반시셰방향.
석등(충남문화유산자료)은 일반적으로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로 3단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리는데 보덕사 석등은 거의 절반이나 없어지다보니 화사석을 제외한 나머지 부재를 새로 조성한 것입니다. 8각형 화사석 4면에는 불빛을 밝히도록 창을 내고, 나머지 4면에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같은 장식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방식입니다.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석등.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석등의 화사석.
경내에는 법희선사 탑비와 승탑이 새워져 있는데 팔각원당형의 부도로 기단부가 상,중,하대석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법희선사(1887~1977)는 한국불교에서 비구니 선풍을 진작시켜 100여 명이 넘는 법손들이 문도를 형성한 비구니 승으로 그의 상좌인 상륜스님이 1979년 현 자리에 이를 세웠다고 합니다.

▲ 전통사찰 예산 보덕사 법희선사 탑비와 승탑.
< 예산군 보덕사 >
○ 위 치 : 충남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로 400로 74 (상가리 277번지)
○ 연락처 : 041-337-4350
○ 운 영 : 연중무휴 (일몰 이후 출입제한)
○ 입장료 및 주차장 : 무료 (사찰 인근 간이 주차장)
○ 취 재 : 2026년 7월 30일 등
< 참고문헌 >
이병희. (2004). 조선후기 내포지역 불교계의 동향. 지방사와 지방문화, 7(2), 7-40.
전통사찰총서 13 - 대전·충남의 전통사찰 2, 사찰문화연구원, 1999년
충남지역의 문화유적 – 예산군편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88)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정보(https://www.khs.go.kr)
충남디지털문화유산(https://www.chungnam.go.kr)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https://www.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