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로림만 모래톱에서 휴식 중인 점박이물범 13마리. 지난 7월 26일 시민조사 과정에서 촬영됐으며,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서산 갯벌의 건강한 생태환경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모래톱 위에 회색 쉼표들이 놓였다.
하나, 둘, 셋…. 모두 열셋이다. 썰물에 모습을 드러낸 충남 서산 가로림만의 모래톱에서 점박이물범 13마리가 몸을 눕힌 채 쉬고 있다. 바다와 갯벌을 오가며 숨을 고르는 모습이 평화롭다.
마침 서산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린 직후였다. 세계가 갯벌의 가치를 인정하자, 이곳을 오래전부터 삶터로 삼아온 점박이물범들이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넨 듯했다.

▲ 가로림만 점박이물범 시민조사단이 서산갯벌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축하하고 있다. 뒤편으로 넓게 펼쳐진 갯벌과 조사선이 보인다.
지난 25일 부산에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갯벌’ 2단계 확대 등재안을 최종 의결했다. 이에 따라 가로림만 서산갯벌을 비롯한 새로운 갯벌 지역들이 세계유산에 포함됐다. 유네스코는 한국의 갯벌을 다양한 지형과 생태계를 품고 있으며, 철새와 위협받는 생물종에게 중요한 서식지를 제공하는 곳으로 설명한다.
그로부터 하루 뒤인 26일,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가 운영하는 ‘가로림만 점박이물범 시민조사단’은 정기 조사에 나섰다. 조사선이 점박이물범의 주요 휴식지에 가까워지자 모래톱 위에 몸을 누인 물범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시민조사단이 이날 확인한 점박이물범은 모두 13마리였다.

▲ 물길 사이로 드러난 모래톱 위에서 점박이물범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모래톱은 점박이물범이 안전하게 쉬며 체력을 회복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물범들이 쉬고 있는 모래톱은 바닷속에 떠 있는 작은 섬처럼 보인다. 물이 빠지는 시간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이곳은 점박이물범이 몸을 말리고 체력을 회복하는 쉼터다.
가로림만은 서산시와 태안군 사이에 자리한 반폐쇄성 내만으로, 점박이물범을 비롯한 여러 해양생물의 주요 서식지다. 정부는 2016년 가로림만 갯벌을 국내 최초의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는 지역 주민과 환경활동가가 참여하는 시민조사를 매년 이어오고 있다. 조사자들은 점박이물범의 개체 수와 행동, 출현 시기, 휴식지의 변화 등을 기록한다.
전문 연구자만의 조사가 아니다. 망원경을 들고 갯벌을 지켜본 시민들의 관찰과 기록이 해마다 쌓여 가로림만의 생태적 가치를 증명하는 자료가 됐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세계유산 등재는 시민들에게 더욱 각별하다.
28일 시민조사단은 다시 갯벌에 섰다. 참가자들은 ‘서산갯벌 세계자연유산 등재! 함께 축하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쳤다.
그들의 손에는 ‘시민의 기록이 만든 세계유산, 서산갯벌’, ‘점박이물범과 함께 지킨 서산갯벌’, ‘우리의 갯벌, 세계의 유산’이라고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세계유산은 명패 하나를 다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더 오래 바라보고, 더 세심하게 기록하며, 개발과 훼손으로부터 지켜야 비로소 다음 세대의 유산이 된다.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는 “세계자연유산 등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며 “점박이물범과 철새, 갯벌 생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가로림만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과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환경교육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