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문화, 역사

내용을 읽어드릴까요?

[충남의 전통사찰 55] 덕숭문중 큰 법맥 천년고찰 예산 수덕사(修德寺)

국내 최고(最古)의 아름다운 목조 건축물 대웅전

  • 위치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19
  • 등록일자
    2026.07.29(Wed) 00:05:26
  • 담당자
    휘리릭 (mch7775@hanmail.net)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푸른 숨 깊이 들이킨 한여름 덕숭산

    오래된 절집 지붕 위로 서늘한 그림자 하나 얹어 둡니다.

    그 아래 천년의 세월

    처마 끝으로 흘러내리는 바람과 햇살을 견뎌온 수덕사는

    눈부시되 어지럽지 않고 고요하되 비어 있지 않아

    고요한 예불처럼 오래된 시간의 품격을 얘기해줍니다

     

    입구의 수덕여관은 수덕사와 나란히 또 다른 세월의 얼굴로 서 있습니다.

    한때 누군가의 머묾이었을 방과 머뭇거린 사색의 흔적은

    나직한 마루와 낡은 문살 사이에 남아

    지나는 이의 마음까지도 잠시 낮추게 합니다.

    그곳은 풍경이 아니라 머무름의 기억이고,

    지워지지 않는 숨결이 한옥의 결마다 조용히 스며 있는 자리입니다

     

    일주문 지나 대웅전 오르막, 산새는 짧게 울고

    솔숲은 묵묵히 그 소리를 받아 더 짙은 그늘을 만듭니다

    마당의 돌은 뜨거워도 뜨거움마저 지나가게 두는 인내가 있고,

    한낮의 공기가 어딘가 저녁을 닮아 오래된 마음 하나를 쉬게 합니다.

    세월의 먼지속에 대웅전은 더욱 장중히 서 있고,

    기둥마다 배인 옛사람들의 손길은 여름의 열기마저 누그러뜨립니다.

     

    이순을 바라보는 여행객은 이곳에서 비로소 알게 됩니다.

    사람의 삶도 저 대웅전의 기둥처럼

    오래 서 있으려면

    비바람을 다 맞은 뒤에야 비로소 자기 빛을 얻는다는 것을.

    수덕여관처럼 머물렀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야

    한 사람의 생도 비로소 깊은 향기를 낸다는 것을.

     

    수덕사는 여름에도 뜨겁기만 한 곳이 아니라

    뜨거운 계절 속에서

    오히려 더 깊어지는 고요를 천천히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나는 그 고요 앞에서

    한 번 더 낮아지고, 한 번 더 오래 바라보며

    내 마음의 먼 길을 조용히 걸어 갑니다.

    "

     

    수덕사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 (사천리 19번지) 덕숭산(德崇山. 495m) 중턱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서 충남을 대표하는 천년고찰입니다. 예산, 홍성, 서산, 태안, 당진 등 5개 지역 47개 사찰과 관외 25개 사암, 포교소 등을 관장합니다. 암자로 견성암(見性庵), 금선대(金仙臺), 환희대(歡喜臺), 정혜사(定慧寺) 등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사서에 기록된 북부 수덕사는 덕산현이 사비성의 북부 지역에 해당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수산 수덕사 전경.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전경.


    수덕사의 수식어로 따라붙는 덕숭총림(德崇叢林)’은 수많은 수도승이 정진해온 한국불교의 선맥()을 계승한 선지종찰(禪之宗剎)입니다. 총림이란 선원(禪元), 강원(승가대학, 승가대학원), 율원(율학승가대학원), 염불원을 갖춘 종합수행도량을 말하는데, 대한불교조계종에는 선원과 강원을 모두 갖춘 덕숭총림과 조계총림(순천 송광사), 영축총림(양산 통도사), 가야총림(합천 해인사), 고불총림(장성 백양사)5대 총림으로 불렀다가, 2012년 금정총림(동래 범어사), 팔공총림(대구 동화사), 쌍계총림(하동 쌍계사) 3사가 포함되어 지금은 8대 총림이 되었습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수산 수덕사 일주문.

    ▲ 천년고찰 예산 덕수산 수덕사 일주문(전면) 손재형의 글씨로 1960년 신축되었다가 1998년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일주문.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일주문(배면).


    창건연대는 559(백제 위덕왕 6) 백제의 고승 지명(知命)법사 창건설이 전해지지만 정확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지명법사는 익산 사자사(師子寺)에 주석하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를 도와 미륵사 창건을 주도한 스님입니다. 문헌상 수덕사의 등장은 삼국유사로 수덕사를 비롯해 흥륜사, 왕흥사, 칠악사, 사자사, 미륵사 등 12개 백제사찰이 소개되고 있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수덕사가 유일합니다. 중국의 속고승전에서는 7세기 백제 고승 혜현(惠現)스님이 수덕사에서 법화경삼론을 강독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600(백제 무왕 1) 대웅전이 창건되고, 고구려 승려 담징이 벽화를 그렸다고 하며, 647(의자왕 7) 승제법사가 이곳에서 법화경을 강독했다고 합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금강문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금강문


    천년고찰 예산 덕수산 수덕사 금강문의 밀직금강(좌)과 나라연금강

    ▲ 천년고찰 예산 덕수산 수덕사 금강문의 밀직금강(좌)과 나라연금강


    창건 설화로는 수덕도령과 덕숭낭자의 전설과 대웅전 서쪽 백련당 뒤편의 관세음보살 헌신등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덕산 향토지에 따르면 수덕도령은 사냥을 나갔다가 아름다운 덕숭낭자를 보고 상사병에 걸렸는데, 끈질긴 청혼 끝에 덕숭낭자집 근처에 절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승낙을 얻어냅니다. 하지만, 수덕도령의 욕심속에 절은 완공 직전에 불이 나 소실되기를 반복하다 세 번 만에야 완공했는데, 덕승낭자는 수덕도령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화가 난 수덕이 덕숭을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과 함께 낭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버선 한쪽과 바위에 하얀 버선 꽃이 남았다고 합니다. 사라진 덕숭낭자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이후 도령 이름을 따와 절 이름은 수덕사, 산 이름은 낭자의 이름에서 덕숭산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사천왕문.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사천왕문.


    천년고찰 예산 덕수산 수덕사 사천왕문 동방 지국천왕(왼쪽)와 남방 증장천왕.

    ▲ 수덕사 사천왕문의 동방 지국천왕(왼쪽)와 남방 증장천왕.


    천년고찰 예산 덕수산 수덕사 사천왕문 서방 광목천왕(왼쪽)과 북방 다문천왕.

    ▲ 수덕사 사천왕문의 서방 광목천왕(왼쪽)과 북방 다문천왕.


    또 다른 이야기는 대중창 불사 관련입니다. 백제시대 창건된 수덕사는 통일신라에 이르러서 대대적 보수에 들어갔는데 불사금 조달이 어려워진 가운데 묘령의 여인이 공양주를 자청하여 절에 찾아옵니다. 미모가 뛰어난 공양주는 대부호 아들인 ‘정혜라는 청년이 청혼하자 불사의 완성을 조건으로 받아들여 중창을 앞당겼습니다. 이후 하산을 재촉하는 청년을 피해 달아나려는 공양주는 방을 나서려다 이를 막으려는 청년의 손길을 피했는데, 순간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 짝만 남기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봄이 되면 버선 꽃이 피어났는데 공양주였던 여인은 관세음보살의 현신으로 여인의 이름을 따서 절 이름을 수덕사라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웅전 서쪽 백련당 뒤편에 있는 바위가 관세음보살이 현신하신 성역으로 근래 관음상이 봉안되었습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백련당 관세음보살과 석등.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백련당 관음상과 석등.


    수덕사가 터를 잡은 덕숭산은 태백산맥 오대산에서 갈라진 차령산맥이 충남 중앙으로 치닫다 서해에 이르러 숨을 토하듯 봉우리를 맺고 있습니다. 동남쪽으로 용봉산(381m), 북쪽으로 가야산(678m), 서쪽으로 오서산(789m)을 병풍 세우듯 중심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낮은 구릉과 평탄한 들녘이 서로 내달리며 계곡의 풍부한 수량이 골짜기마다 흘러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내 예로부터 소금강(小金剛)으로도 불렸습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수산 수덕사 황하정루(옛 근역성보관).

    ▲ 천년고찰 예산 덕수산 수덕사 황하정루(옛 근역성보관).  ‘은 부처님의 정신, ‘하는 큰 강이 흐르듯 정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후기 건축물로 당시에도 법등을 이어가 오랜 역사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삼층석탑과 수덕사 고려자기 등을 통해서도 역사 공백을 메워주지만 아쉽게도 관련 문헌이 전해지지 않아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인 16세기 전반에는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덕산현 불우조에 수덕사는 덕숭산에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당시 대부분 사찰이 피해를 보았지만, 수덕사는 다행히 침탈을 피해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어 1673년 조성된 수덕사 괘불과 18세기 수덕사 동종 등 조선 후기로 이어갔습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법고각.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법고각.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법고각내 북을 받치는 좌대.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법고각내 북을 받치는 좌대.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법고각내 목어와 운판.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법고각내 목어(왼쪽)와 운판.


    근대 들어 1911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사찰령으로 불교종단이 선교 양종으로 통합하고 30분산제를 실시할 당시 수덕사는 마곡사의 말사였지만, 1962년 대한불교

    조계종 비상 종회에서 새로운 종헌(宗憲)을 의결하면서 제7교구 본사로 승격됐고, 1984년 중앙종회 의결로 사찰행정의 독립성을 가진 덕숭총림(德樂叢林)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번종각.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범종각.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범종각내 범종.

    ▲ 수덕사 청동대종. 무게 6500, 높이 2.7m, 둘레 4.5m.


    수덕사 한국불교에서 중요한 위치인 것은 조선 후기 침체한 불교계에 새로운 중흥을 마련한 사찰이기 때문으로 중심인물로 당대 대표적 선지식(善知識) 경허 성우(鏡虛 醒牛. 1849~1912)선사와 그의 제자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선사가 있습니다. 이들은 전국에 선원과 선실을 개설하여 불교계에 새로운 선수행(禪修行) 풍토를 조성하고 선풍을 떨친 생애로 선()의 생활화와 선의 이념을 실현한 혁명가로, 중생 교화와 불교 중흥에 이바지한 근대 한국불교 제일의 선승으로 추앙받고, 대승(大乘)의 실천자로 덕숭문중의 큰 법맥을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만공은 일제강점기 선학원 설립과 선승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선우공제회운동을 주도했는데,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31본산 주지 회의에서 미나미 총독에게 일본의 한국불교 정책을 비판하며 힐책하였던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수산 수덕사 청련당의 만공 월면 '세계일화'현판

    ▲ 천년고찰 예산 덕수산 수덕사 청련당의 만공 월면 '世界一花(세계일화)'현판


    수덕사 근역성보관은 불교 문화에 대한 인식이 민족문화의 재발견이라는 관점에서, 소멸하거나 퇴색하는 불교 성보의 가치보존과 관련 연구를 위해 1995년 박물관 건립계획을 추진, 당초 황하정루 아래 1998년 개관했다가 2022년 신관으로 이전했습니다. 불교 성보를 조사, 수집, 보존, 전시해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자료축적과 불교 문화의 가치재인식을 계승시켜왔습니다. 그동안 본·말사의 불교문화유산 4,000여 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1종 전문 박물관으로 백제로부터 시작된 지역 불교의 원류와 시대에 따른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국불교의 중흥조인 경허와 만공스님의 유품을 통해 그들의 행적과 사상을 고양, 후대에 전승하는 기념관 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만공스님이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대한민국의 광복과 세계평화를 기념하는 뜻으로 쓴 世界一花(세계일화)를 바탕으로, 민족정신 문화의 모음터라는 의미를 담아 근역성보관이라 지었다고 합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근역성보관.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근역성보관.


    가람배치는 3단의 석축을 따라 점차 높아져 가장 위쪽에 대웅전이 자리한 산지 구릉형입니다. 앞이 탁 트인 높은 대지 위에 석축을 이용하여 절터를 조성하고, 그 위에 전각을 배치한 개방적 구조로 일주문에서 금강문, 사천왕문, 대웅전을 일직 선상에 배치하고 있습니다대웅전 을 중심축으로 ‘도입 전개 결말의 소설적 연속성도 보여줍니다. 도입부는 경사진 길과 계단을 통해 일주문에서 황하정루까지 속세로부터 사찰에 들어오는 공간입니다. 이어 전개부는 일주문에서 시작된 흐름이 문루를 중심으로 형성되는데 황하정루에서 조인정사까지입니다. 황화정루 아래 어두운 공간은 전개의 시작으로 시계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유도해 시선의 집중을 가져오고 석축과 계단에서 이루어진 공간상승의 효과와 주불전인 대웅전이 시각적으로 더욱 강조됩니다. 결말은 대웅전 중심으로 형성된 공간으로 사면이 석축이나 건물로 둘러싸인 것이 특징입니다. 전개부와 구별을 두는 것은 기단으로 그 위에 결말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가람내 가장 높은 곳의 대웅전은 화강석 기단 위에 세워져 핵심공간의 역할과 기능의 위상을 나타냅니다. 좌우 계단을 통해 진입하는 동선 배치는 구조적 아름다움이 뛰어난 대웅전 측면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중심의 전경.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가람배치는 3단 석축으로 구성된다.


    대웅전(국보)은 1308(충렬왕 34)에 조성된 것으로 해체 수리(1937~1940)를 하면서 至大元年戌申四月十七日立柱(지대원년술신사월십칠일입주)’라고 쓴 글이 발견되면서 정확한 건축연대가 확인되었습니다. 전면 3, 측면 4칸 크기로 전면보다 측면이 더 넓게 만들어졌습니다. 맞배지붕으로 기둥의 중간이 부풀려진 배흘림기둥과 그 위에만 공포가 올려진 주심포 양식입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2.

     

    간단한 공포구조와 측면 부재들의 곡선이 건축미를 돋보이게 하는데, 소꼬리 모 양의 우미량(牛尾樑)이 백미로 꼽히고 있습니다. 측면 맞배지붕의 선과 노출된 목부재가 만들어내는 구도는 목조 건축의 극치라는 격찬을 받는데, 건물의 기능미와 조형미가 잘 조화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 건축물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건물 중 백제적 곡선미를 보여주는 유일한 목조 건축물입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현판과 처마선.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현판과 처마.


    천년고찰 예산 수덕사 대웅전 맞배지붕의 목부재 구조.

    ▲ 천년고찰 예산 수덕사 대웅전 맞배지붕의 목부재 구조.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천정1.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천정 구조.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들문.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들문.


    법당 안에는 연등 천장이며 바닥은 예전의 벽돌을 대신해 우물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 건축자재에는 새로 단청을 입히지 않아 나무가 간직하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지게 하고 있습니다. 불전의 삼존불(보물)은 중앙에 현재불이 석가 부처를 중심으로 오른쪽(향좌)에 과거불인 약사여래블, 왼쪽(향좌)에는 미래불인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런 석가, 약사, 아미타 삼존을 모신 형태는 조선 후기 특히 많이 조성되었는데, 전란을 겪은 사회의 혼란과 무병장수를 염원하는 시대적 조류를 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본존불 뒤의 후불탱화는 금호 약효(錦湖 若效)와 목우(牧雨) 금어 스님 등이 참가하여 1908(융희 2) 봉안된 것입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삼존불.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삼존불.


    석가모니불이 앉아 있는 대좌형 수미단은 고려시대 심원사 대웅전 불탁과 동일한 것으로, 금강저, 삽화병, 목단, 운파 등 안상 조각에서 고려 불탁의 특징을 살필 수 있습니다. 수미단의 기초는 좌우 일반형 탁자와 달리 대웅전 마루 저면 약 30지점의 초기 평면과 동일하고 그곳에서부터 육각의 저대석이 탁자를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성시기는 대웅전 건립연대(1308)와 같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와 함께 수미단은 유일하게 대좌형 수미단을 육각과 장방형으로 각기 구성하고 있어 공예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연화대좌 및 육각수미단.<국가유산청 제공>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연화대좌 및 육각수미단.<국가유산청 제공>


    불상에서 나온 복장유물은 전적류와 후령통 및 오색실과 복식 등이 있습니다. 전적류는 발원문을 비롯해 묘법연화경’, ‘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 ‘불설관세음경 등의 경전과 진언문 및 다라니로 17세기 초반 간행된 목판본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후령통 안에서는 오방을 상징하는 5색의 사각형 직물 안에 원형, 금강저, 삼족과 육족의 번을 의미하는 형태의 직물이 들어 있습니다. 오색실은 동····중앙을 상징하는 청색·흰색·홍색·자주색·황색의 실이며, 복식은 조선 중기 두루마기의 형태를 따르고, 모든 직물의 색상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조선 중기 직물사 및 염색에 관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조성발원문 및 복장유물. <국가유산청 제공>

    ▲ 천년고찰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조성발원문 및 복장유물. <국가유산청 제공>


    대웅전 벽화는 1937년 해체 수리공사 중 발견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실물은 한국전쟁 당시 파괴되고 모사도 40여 점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남아 있고, 해체 수리 시 촬영된 사진 자료만 남아 있습니다. 벽화는 건물 중앙에 그려져 있던 것이 아니라 포벽(包壁)의 작은 공간을 이용해 그린 장엄용으로 불상, 주악비천, 공양화, 나한 극락조 등이 섬세하고 생동감 있는 필치로 유명합니다. 벽화의 바탕이 된 벽체는 수리한 흔적이 없으므로 대웅전을 건축하면서 그려졌던 것으로 1308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대웅전 중보에 그려진 금룡도 역시 덧칠 흔적이 없고, 이 가운데 오불도는 조선시대인 1528(중종 23)의 단청개철(丹青改漆)때 제작된 것으로서, 고려 벽화를 긁어내지 않고 그 위에 새로 조성한 조선시대 벽화로 수덕사 대웅전 벽화는 고려와 조선시대 사원 벽화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대웅전의 동종은 법당 내 일반 의식에 사용하는 것으로 입지름 476, 높이 662, 두께 40의 크기에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아담한 크기입니다. 용뉴는 쌍용뉴로 천판(天板)은 반원형을 하고 있습니다. 상대(上帶)2단으로 된 범자문이 둘리고 덩굴무늬로 장식한 4조의 유곽(乳廓)과 교대로 4구의 보살입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는 없으며 조선 후기 종의 특색이 잘 나타난 18세기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동종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동종


    명부전은 전면 5, 측면 3칸의 맞배지붕입니다. 지옥 중생의 천도 와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전각으로서 주존은 지옥중생의 구제를 서원한 지장보살로 시왕과 목각후불탱 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1968년에 지어진 것입니다. 명부전 뒤편 염화실은 방장 스님의 처소입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명부전 지장보살.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명부전 지장보살.


    수덕사 내 요사는 청련당(靑蓮堂), 백련당(白蓮堂), 염화실(拈花室) 등이 있는데 대웅전 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좌·우측에 백련당, 청련당이 배치되어 스님들의 거처인 승방으로 대웅전에서 보면 청련당은 좌청룡, 백련당은 우백호를 상징합니다. 백련당은 1926년 만공스님이 세우고 1993년 법장스님이 중수했습니다. 청련당은 1974년 견성암을 이전해 규모를 줄여 다시 세운것으로, 1997ㄴ자형으로 개축하고 아래에 168평 규모의 식당을 신축했습니다청련당 좌측 아래편 조인정사(祖印精舍)1916년 만공스님이 신축한 것으로 부처님의 혜맥(慧脈)을 판단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조인정사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본래 대웅전 정면에 있었는데 보수를 위해 해체했다가 탑 자리가 발굴되어 지금의 위치로 옮겨 승가대학 건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우측의 백련당.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우측의 백련당.


    대웅전 앞에 자리한 삼층석탑(충남 유형문화유산)665(신라 문무왕 5)에 건립되고 원효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지지만, 통일신라 석탑에 비해 기단의 가운데 기둥 조각수가 줄고,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들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됩니다. 체감률이 정연한 이 석탑은 1·2층 지붕돌 귀퉁이 일부가 파손되음에도 전체적으로 형태에 안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마당의 삼층석탑.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마당의 삼층석탑.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었는데 위·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습니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있고 꼭대기에는 3층 지붕돌과 한 돌로 만들어진 노반과 그 위로 보륜, 보개장식을 하고있습니다.

    이와함께 칠층석탑(충남문화유산자료)1930년 당시 수덕사 주지였던 만공 선사가 건립한 것으로 기단면석 외부로 두드러지게 우주를 표현하고 있는데, 면석에는 두께 10정도의 사각 테두리가 돌려져 있습니다. 기단부 없이 바로 탑신과 옥개석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원래 대웅전 앞에 건립했지만, 현재는 황하루 옆으로 옮겨져 있습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마당의 삼층석탑 2.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마당의 삼층석탑의 네 모서리.


    수덕사 괘불(보물)은 가로 7.27m, 세로 10.59m 크기로 1673(조선 현종 14) 수덕사에서 조성된 것으로 석가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의 삼신불 가운데 보신인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12대 보살, 10대 제자 등 여러 무리들을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노사나불을 독존으로 그린 괘불은 현재까지 밝혀진 것 가운데 신원사와 수덕사 괘불 단 2개뿐입니다. 이 괘불은 보신 노사나불이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대신해 석가불의 화신(化身)으로 나타나 성중(聲衆)들에게 설법을 하는 영축산의 모임을 나타낸 영산회상도로 묘사한 것입니다.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국가유산청 제공>

                                                                           ▲ 천년고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국가유산청 제공>


    머리광배에는 圓滿報身盧舍那佛(원만보신노사나불)’이란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데 신체에 비해 두 손을 크게 강조하여 노사나불이 주존임을 뚜렷이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보관과 가슴에 달린 장식, 옷의 문양, 매듭 등이 화려합니다. 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국보)과 같은 그림인데, 12대 보살은 중단과 하단에 배치되고, 아난과 가섭 등 10대 제자는 자유로운 표정과 동작을 보여주며 상단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천년고찰 예산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 머리광배.<국가유산청 제공>

                                                         ▲ 천년고찰 예산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 머리광배.<국가유산청 제공>


     

    < 예산군 수덕사 >

    위 치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 (사천리 19번지)

    연락처 : 041-330-7700

    운 영 : 연중무휴 (일몰 이후 출입제한)

    주차장 : 유료

    취 재 : 2026727일 등

     

    < 참고문헌 >

    김도경. (2008). 건축설계 측면에서 본 수덕사 대웅전의 평면과 가구 특성에 관한 연구. 건축역사연구: 한국건축역사학회논문집, 17(4), 97-112.
    이재수. (2024). 세계일화 (世界一花), 숭산을 통해 본 수덕사 선불교 전통 구현과 디아스포라. 국제한인문학연구, 40, 33-54.
    백원기. (2025). [사찰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바위 사이 피어난 버선꽃 덕숭 낭자와 수덕 도령의 사랑 이야기: 예산 수덕사. 월간 불교문화, 63-65.

    전통사찰총서 13 - 대전·충남의 전통사찰 2, 사찰문화연구원, 1999

    충남지역의 문화유적 홍성편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88)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정보(https://www.khs.go.kr)

    충남디지털문화유산(https://www.chungnam.go.kr)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https://www.aks.ac.kr/


휘리릭님의 다른 기사 보기 다른 기사 보기
휘리릭님의 최근기사
#수덕사 수덕여관 #예산가볼곳 충남가볼곳 충남의전통사찰
OPEN,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기사는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수 0

담당부서 : 대변인 디지털소통담당관
문의전화 : 041-635-2492

* 본 페이지에 대한 저작권은 충청남도가 소유하고 있으며, 게재된 내용의 수정 또는 개선사항이 있으시면 담당 부서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엑스 네이버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