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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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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에 온 크루즈, 그 뒤에 천년의 문화길이 보였다

최치원·마애삼존불·천수만 철새·서산의 K푸드로 다시 보는 서산 문화기행

  • 위치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산 2-10
  • 등록일자
    2026.07.07(Tue) 20:42:43
  • 담당자
    뽀글이 (vmfms0830@naver.com)
  • 중국 톈진에서 출발한 국제 크루즈선 비지오호. 해외에서 출발한 크루즈가 서산 대산항에 기항하면서 서산 관광은 새로운 질문을 마주하게 됐다. ▲ 가로림만 감태

    ▲ 중국 톈진에서 출발한 국제 크루즈선 비지오호. 해외에서 출발한 크루즈가 서산 대산항에 기항하면서 서산 관광은 새로운 질문을 마주하게 됐다. 


    중국 톈진에서 출발한 10만t급 국제 크루즈선 ‘비지오호’가 지난 6월 27일 서산 대산항에 들어왔다. 배에는 중국 관광객 1500명 넘게 타고 있었다. 해외에서 출발한 국제 크루즈선이 서산에 기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배 한 척의 입항은 서산 관광에 적지 않은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익숙한 관광지가 떠오른다. 간월암, 해미읍성, 개심사, 동부시장, 굴밥. 서산에는 사진으로 남길 풍경도, 한 끼로 기억될 음식도 많다. 그러나 서산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도시가 바다와 먹거리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서산은 오래전부터 바다를 통해 사람이 오가고, 바깥의 문물이 스며들던 고장이었다. 크루즈선은 이번에 처음 들어왔지만, 서산의 바닷길은 어제오늘 열린 길이 아니다. 적어도 백제 후기, 1400년 전쯤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불교문화가 이 길을 지나 백제의 중심부로 향하고 있었다.

     


    서산에서 중국을 말하려면 ‘최치원’을 빼놓을 수 없다

    서산 지곡면 부성사에서 고운 최치원을 기리는 제향이 봉행되고 있다. 최치원의 흔적은 서산을 넘어 중국 양저우의 기념관으로도 이어진다.

    ▲ 서산 지곡면 부성사에서 고운 최치원을 기리는 제향이 봉행되고 있다. 최치원의 흔적은 서산을 넘어 중국 양저우의 기념관으로도 이어진다.


    서산과 중국을 함께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불러볼 이름은 고운 최치원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최치원을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건너가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까지 한 신라의 지식인으로 설명한다. 낯선 땅에서 글로 자신을 증명한 사람이었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최치원은 신라 조정에서 뜻을 펼치려 했지만, 진골 중심의 사회는 6두품 출신 지식인에게 넓은 길을 내주지 않았다. 그는 결국 지방관으로 나섰고, 그가 태수로 머문 고을 가운데 하나가 지금의 서산, 당시의 부성군이었다.

     

    서산 지곡면에는 최치원의 영정을 모신 부성사가 있다. ‘부성’은 서산의 옛 이름과도 닿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흔적이 서산에만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 장쑤성 양저우시에도 최치원기념관이 있다. 양저우시는 2007년 당성 유적지 안에 최치원기념관을 세웠는데, 이곳은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관리로 일하며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자리와 관련이 깊다.

     

    부성사에 서면 문득 생각이 달라진다. 서산은 변방이 아니었다. 바다 건너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었고, 바깥의 문물이 들어오는 문턱이었다.

     

    대산항에 들어온 크루즈를 보며 최치원을 떠올린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서산과 중국의 만남은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다. 오래전 한 젊은이는 배를 타고 당나라로 건너갔고, 낯선 땅에서 글로 이름을 얻었다. 세월이 한참 지난 뒤, 그 이름은 서산의 사당과 중국 양저우의 기념관에 함께 남았다.

     

    풍경은 사진으로 남지만, 이야기는 조금 더 오래 간다. 서산을 찾은 이들에게 “서래를 건너간 사람이 있었고, 그를 중국에서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여행은 조금 다르게 남을 것이다.



    바위에 새겨진 국보급 백제의 미소 ‘마애삼존불’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중국에서 건너온 불교문화가 백제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부드러운 얼굴을 얻은 자리다.

    ▲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중국에서 건너온 불교문화가 백제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부드러운 얼굴을 얻은 자리다.


    서산과 바닷길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자리가 운산면 용현리에 있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국보다.

    마애삼존불 앞에서는 말이 길 필요가 없다. 바위에 새겨진 미소가 먼저 사람을 붙잡는다. 햇빛의 방향에 따라 표정이 달라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천 년 전의 손길이 아직 바위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자리한 운산면 일대는 중국 불교문화가 태안반도를 거쳐 백제의 수도 부여로 가던 길목이었다. 그러니 이 불상은 서산의 오래된 불상으로만 보기엔 아깝다. 서해를 통해 들어온 불교문화가 백제 장인의 손끝에서 어떤 얼굴을 얻었는지 말해주는 문화유산이다.

     

    바다를 건너온 문화는 백제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부드러운 얼굴을 얻었다. 이 미소가 국보라는 이름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까닭이다. 서산은 바닷길의 끝이 아니라, 외래의 문화가 머물고 섞이며 새롭게 피어난 자리였다.

     


    서산에는 바다와 산을 잇는 아라메길 ‘실크로드’가 있다

    바다와 갯벌, 산자락이 함께 펼쳐진 아라메길 풍경. ‘아라’는 바다, ‘메’는 산을 뜻하며, 이 길은 서산의 바다와 산, 마을과 유적을 이어준다.

    ▲ 바다와 갯벌, 산자락이 함께 펼쳐진 아라메길 풍경. ‘아라’는 바다, ‘메’는 산을 뜻하며, 이 길은 서산의 바다와 산, 마을과 유적을 이어준다.


    실크로드라고 하면 흔히 사막을 떠올린다. 낙타와 대상, 모래바람과 오아시스 같은 장면들 말이다. 그러나 문화의 길이 꼭 사막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산에는 바다와 산을 잇는 길이 있었다. 바로 아라메길이다. ‘아라’는 바다, ‘메’는 산을 뜻한다. 이름 그대로 서산의 바다와 산, 마을과 절터를 이어준다.

     

    마애삼존불에서 보원사지로, 다시 개심사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서산의 옛 시간이 한곳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불상은 바위에 새겨졌고, 절터에는 탑과 당간지주가 서 있으며, 산사에는 오래된 처마와 나무의 결이 남아 있다.

     

    따로 떨어진 유적처럼 보이지만, 실은 바다와 산을 잇는 문화의 흔적들이다. 서산을 읽는 일은 유적 하나를 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사이를 이어온 시간을 함께 보는 일이다.

     


    새들도 지나가는 길, 천수만 ‘서산버드랜드’

    천수만을 품은 서산버드랜드. 이곳은 철새들이 국경을 넘어 쉬어가는 동아시아 생태의 길 위에 놓여 있다.

    ▲ 천수만을 품은 서산버드랜드. 이곳은 철새들이 국경을 넘어 쉬어가는 동아시아 생태의 길 위에 놓여 있다.


    서산의 길은 사람만 오간 길이 아니었다. 새들도 이곳을 지난다. 천수만은 철새들이 쉬어가는 중요한 기착지이고, 서산버드랜드는 그 생태의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최치원이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갔고, 불교문화가 서해를 지나 백제로 들어왔다면, 철새들은 해마다 더 오래된 본능을 따라 하늘길을 건넌다. 시베리아와 만주, 중국 동북부와 서해안, 한반도 서해안을 잇는 길 위에서 천수만은 잠시 날개를 접는 자리다.

     

    이곳에서 중국과 서산은 항구나 사당, 불상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하늘을 나는 새들의 이동 경로로도 만난다. 국경은 사람이 그어놓은 선이지만, 철새에게 바다와 갯벌은 끊어진 경계가 아니라 이어진 길이다.

     

    서산버드랜드가 의미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곳은 철새 관람 공간을 넘어, 서산이 동아시아 생태 이동축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생태관광 거점이다.

     


    바다를 건너온 문화, 바다를 건너갈 맛

    서산을 대표하는 특산품 가운데 하나인 6쪽마늘. 알싸한 향과 단단한 맛은 서산의 밥상을 지역 K푸드로 확장시키는 힘이다.

    ▲ 서산을 대표하는 특산품 가운데 하나인 6쪽마늘. 알싸한 향과 단단한 맛은 서산의 밥상을 지역 K푸드로 확장시키는 힘이다.


    서산과 바깥 세계의 만남은 밥상에도 있다.

    서산은 생강과 6쪽마늘의 고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마늘이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시작돼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온 작물로 설명한다. 그렇게 보면 오늘 서산 밭에서 자라는 마늘도 한곳에만 머문 맛은 아니다. 먼 땅에서 출발해 여러 지역의 밥상을 지나 이곳에 뿌리내린 맛이다.


    가로림만에서 나는 감태. 얇은 초록빛 한 장에는 서산 바다의 향과 갯벌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가로림만에서 나는 감태. 얇은 초록빛 한 장에는 서산 바다의 향과 갯벌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기에 팔봉산 감자, 가로림만의 감태와 굴, 어리굴젓까지 더하면 서산의 밥상은 지역의 K푸드가 된다. 가로림만이 바다의 맛을 품고 있다면, 팔봉산 감자는 산자락과 밭의 맛을 품고 있다.

     

    세계인이 한국 음식을 찾는 시대에, 서산이 내밀 수 있는 것은 거창한 포장만이 아니다. 바다의 향을 머금은 감태 한 장, 알싸한 생강과 6쪽마늘, 갯벌의 맛을 품은 어리굴젓 한 젓가락, 포슬포슬한 팔봉산 감자야 말로 서산을 손에 들고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맛이다.

     

    감태는 얇고 섬세하다. 한 장을 손에 들면 바다의 초록빛을 말려놓은 것 같다. 굴은 서산 바다의 맛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하고, 어리굴젓은 그 굴을 가장 서산답게 먹는 방식이다. 맵고, 짜고, 깊다. 여행객이 한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은 뜻밖에도 입안에서 시작될 때가 많다.

     

    최치원과 마애삼존불이 바다를 건너온 문화의 흔적이라면, 생강과 서산6쪽마늘, 감태와 어리굴젓, 팔봉산 감자는 바다를 건너갈 서산의 K푸드다.

     


    대산항 시대, 필요한 것은 이야기를 건네는 일이다

     

    비지오호가 대산항에 들어온 일은 한 번의 행사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서산을 찾을 수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관광지 이름을 더 많이 나열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이 서산을 어떻게 기억하게 할 것인가다.

     

    간월암은 사진으로 말을 건넨다. 해미읍성은 넓은 공간으로 사람을 붙잡는다. 동부시장은 맛과 물건으로 여행의 끝을 채운다. 하지만 최치원과 마애삼존불, 아라메길과 서산버드랜드는 이야기가 없으면 쉽게 지나칠 수 있다.

     

    안내문을 여러 언어로 바꾸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치원은 “당나라로 건너간 신라의 젊은 지식인”으로, 마애삼존불은 “바다를 건너온 불교문화가 백제의 미소로 피어난 자리”로, 아라메길은 “바다와 산을 잇는 서산의 오래된 문화길”로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서산버드랜드는 “철새들이 국경을 넘어 쉬어가는 동아시아 생태의 길”로, 생강과 서산6쪽마늘, 감태와 어리굴젓, 팔봉산 감자는 “서산을 손에 들고 돌아갈 수 있게 하는 K푸드”로 소개할 수 있다.

     

    오래된 이야기를 오늘의 여행으로 이어가는 일도 과제다. 서산시는 2027년 준공을 목표로 수목원 조성을 추진하고, 치유센터와 치유숲길을 포함한 치유의 숲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바다와 산, 문화유산과 먹거리에 숲의 시간이 더해진다면 서산은 잠시 들르는 기항지를 넘어 머물고 싶은 도시가 될 수 있다.

     

    크루즈는 항구에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관광객의 시선도 함께 들어온다. 서산은 이제 오래된 바닷길과 생태, 맛과 숲의 이야기까지 건네야 한다. 이미 열려 있던 길 위에서, 그 이야기를 제대로 전할 차례다.



    ※ 취재일: 2026년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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