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전경. 뒤편 건물이 상대웅전.
칠갑산 남쪽 기슭,
초봄을 맞는 장곡사에
눈 녹은 물소리가 계곡을 먼저 깨웁니다.
얼음 풀린 골짜기를 지나온 미풍이
천년 기와 위로 연둣빛 새싹을 어루만집니다.
일주문 돌계단 곁,
서리꽃은 봄바람에 화들짝 스러진 지 오래.
종루 아래 첫 햇살이 떨리며
바람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마음 안쪽으로 조용히 번져듭니다.
하대웅전 마당,
낮은 지붕들이 어깨를 맞대고,
설선당 기둥에 스님 발자국이 겹겹이 새겨져
마른 향내가 세월을 대신해 속삭입니다.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종소리에 스며든 햇살은 따스하기만 합니다.
계단 더 올라 상대웅전,
산허리를 등진 채 골짜기를 묵묵히 내려다보고,
문턱에 서면 발아래 세상은
먹물 번진 하늘 아래 지붕과 숲뿐.
경계와 소유가 모두 흐릿해집니다.
문득 마지막 한기마저 봄바람에 흩어질 때,
나뭇가지 끝 물방울이 반짝이며
골짜기 물소리와 새소리가 섞여
봄의 맥박을 고릅니다.
장곡사는 그렇게 천년의 봄을 다시 깨워냅니다.
장곡사는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길 241(장곡리 14-9 ) 일대 칠갑산 충남도립공원 남쪽 계곡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 소속 천년고찰입니다. 장곡사(長谷寺)는 이름이 말해주듯 긴 계곡에 자리하는 사찰로 공주의 마곡사와 예산의 안곡사, 청양의 운곡사와 함께 ‘사곡사(四谷寺)’로 불립니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고즈넉한 사찰 풍경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선정될 만큼 주변 풍광이 빼어납니다. 여기에 오랜 역사만큼 수많은 스토리와 문화유산을 품어 참배객과 관람객의 발길이 늘 끊이지 않는 지역의 대표 고찰입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전경.
창건연대는 850년(신라 문성왕 12년) 보조국사 체징이 세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1777년(조선 정조 1년)과 1866년(고종 3년), 1906년, 1960년에 중창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지만, 장곡사고금실록(長谷寺古今實錄)이 오랫동안 사중에 전해졌고, 1962년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칠갑산장곡사금당중기 현판 자료에서 실록에 전하는 창건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과 지장전 전경.
현판은 1999년(조선 정조 1년) 승려 학연이 지은 것으로 “칠갑산에 장곡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산중에서는 보조국사의 도량이라고 불리고 있다. 고려 시대 3차례 중수를 거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창건 이후 장곡사의 연혁을 체계적으로 전하는 자료는 남아 있지 않지만, 조선 이후의 연혁 일부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범우고, 가람고 등에서 모두 현존 사찰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조선 전 기간에 거쳐 사세를 유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상대웅전과 응진전 전경.
가람배치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2개의 대웅전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위치에 따라 상하로 구분하지만, 방향은 서로 달라 상대웅전은 동남향을, 하대웅전은 서남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역의 북쪽 비교적 좁은 공간에는 상대웅전과 응진전, 산신각, 염화각이 남쪽의 넓은 공간에는 하대웅전과 설서당, 승방, 봉향각, 운학루 등을 배치해 지형을 잘 이용한 ‘산지가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상대웅전을 수호하는 형상의 수령 400년 느티나무.
그런데 어떤 이유로 장곡사에 두 개의 대웅전이 들어서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정확한 내용보다는 여러 설화와 추측만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칠갑산 남동쪽의 도림사의 이전설이고, 다른 하나는 병자를 위한 참배공간 확장입니다. 장곡사가 병을 고치는 효험으로 유명했는데 참배객이 늘어 기도 공간이 더 필요해지자 또 다른 대웅전을 증축했다는 설화입니다. 상대웅전은 주로 스님이, 하대웅전은 신병기도를 위해 장곡사를 찾은 신자와 스님들의 공간이었다는 추측입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삼성각에서 바라본 상대웅전(오른쪽)과 하대웅전(왼쪽 아래) 전경.
장곡사를 찾으면 여느 고찰처럼 일주문이 방문객을 맞아줍니다. 전·후면 현판에는 모두 칠갑산장곡사(七甲山長谷寺)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어 운학루(雲鶴樓) 계단을 경내에 들어섭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일주문 입구 방향.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일주문 출구 방향.
운학루의 왼편으로는 북과 종, 편경 등을 보관하는 범종루가 있습니다. 장곡사의 북은 유난히 크기가 거대하고 비대칭 원형을 사용해 다른 사찰과 대비됩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 북은 오해는 옛날 장곡사에 있던 한 승려가 국난을 극복하고 중생을 일깨우는 뜻에서 코끼리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북 양쪽의 가죽 일부가 헐어 구멍이 난 상태입니다. 종에는 약사여래대범종(藥師如來大梵鍾)으로 양각되어 있는데 장곡사는 예로부터 약사여래 기도도량으로 유명해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의 기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운학루 전경.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범종루 전경.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범종루의 범종과 큰북.
범종루에는 거대한 통나무그릇 눈길을 사로잡는데 이는 오래전 장곡사 승려들이 밥통 대신 사용하던 생활 도구라고 합니다. 통나무그릇 크기가 길이 7m, 폭 1m, 두께 0.1m로 당시 장곡사의 사찰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범종루 통나무 그릇.
이어 본격적으로 경내 들어서면 하대웅전 (長谷寺 下大雄殿. 보물. 1963년 지정)과 마주합니다. 조선 중기에 지은 것으로 전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크기로 맞배지붕 형식입니다. 좌우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해 건물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입니다. 소박한 맞배지붕에 층층이 쌓아 올린 화려한 공포가 다포 양식으로 가미되어 보기 드문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전경.
대웅전을 들어서면 바닥에 나무 마루를 깔아, 벽돌을 사용한 상대웅전과 다른 양식을 보입니다. 불단에는 석가모니불 대신 약사불을 모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약사불을 모신 전각은 ‘약사전’ 또는 ‘유리광전’으로 부르는데 대웅전에 이를 모신 경우는 특이합니다. 불단의 위로는 닫집이 있습니다. 큰 법당의 불단에 모셔진 부처님 위로 집 모양의 작은 전각을 천정에 설치한 것으로 부처님의 공간을 꾸민 것입니다. 사찰의 닫집은 대개 조선시대 만들어진 것입니다. 장곡사 하대웅전 닫집은 불전형보다는 감입형의 특징을 보입니다. 천장 속으로 닫집의 상부구조를 넣은 것으로 밑에서 보면 내부만 보여 닫집으로 미처 생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궁궐 정전의 천장 중앙부과같이 움푹 들어간 형태입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의 화려한 공포.
이곳의 금동약사여래좌상(金銅藥師如來坐像. 국보. 2022년 지정)은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과 정수리 부분 상투 모양의 넓적한 머리(육계)가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단정하며 갸름한 타원형 얼굴은 우아하지만, 통일신라 불상의 미소는 사라지고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어깨에 비해 옷은 두터워 보입니다. 옷자락에는 굵은 주름이 듬성듬성 새겨지고, 배의 띠 매듭은 율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른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왼손은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맞대었는데 손톱 모양까지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늘씬하고 균형 잡힌 신체와 넓은 무릎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금동약사여래좌상.
불상을 조성한 이유와 생산연도를 기록한 발원문은 1959년 불상 밑바닥에서 발견되어 1346년(고려 충목왕 2년)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복장유물의 추가 연구로 제작 시기와 발원자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함에 따라 고려 후기 불상연구, 그 가운데 약기인(藥器印)을 취하고 있는 약사여래불 연구의 절대 기준이 되었습니다. 14세기 불상 가운데 가장 뛰어난 예술적 조형성을 지닌 대표 작품의 하나로 주조기술법에서도 내외부 결함이 거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유물1.
일반적인 고려 후기 불상은 아미타 정토 신앙과 관련이 깊은데 하대웅전 약사여래 역시 이러한 신앙적 배경과 더불어 약사 신앙의 흔적을 분명히 알려 준다는 점에서 신앙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고려 후기 제작된 현존 유일의 금동약사여래상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더불어 복장 발원문에서는 모두 1,116명에 달하는 풍부한 인명 정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려 후기 발원문 중 최대 규모로 시주자의 인명 분석으로 고려사 복원에 중요한 사료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불 원문을 지은 백운(白雲)은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불설직지심체요절’을 편찬한 백운경한(白雲景閑. 1298∼1374)과 동일인물로 추정됩니다. 인명 중 공민왕의 몽골식 이름인 바얀테무르(伯顔帖木兒)를 비롯해 금타이지(金朶兒只), 도르지(都兒赤) 등은 고려 사회로 스며든 몽골 풍속의 실례를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금동약사여래좌상 발원인 명단.
하대웅전의 오른쪽에는 동쪽을 향한 설선당(說禪堂. 충남유형문화유산. 1997년 지정)이 있습니다. 조선 중기에 지어진 스님들의 거처로 ‘설선당’ 현판이 걸려 말씀을 논하고 참선을 위한 비구니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임을 나타냅니다. 설선당 오른쪽 3칸은 기둥이나 지붕을 받치는 공포가 정교한 구조와 양식을 보이지만, 왼쪽으로 이어지는 2칸은 그 구조와 양식의 변형을 보여 후에 보수되거나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설선당.
장곡사에서 큰 법회(행사)가 있을 때는 설선당 부엌에서 밥을 짓는데 토속신앙의 하나인 조왕신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불을 피우기 어려웠던 시절 조왕신은 불씨를 귀히 여길 수밖에 없었던 중생의 정성이며 간곡함이기도 합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설선당 부엌의 조신왕.
설선당 맞은편으로는 지장전이 있습니다. 지옥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지장보살의 대원과 연관된 신앙과 의례의 중심입니다. 내부 대좌에는 지장보살을 본존불로 지장 삼존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결가부좌한 지장보살은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보주를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육환장을 쥐고, 좌우로 합장한 도명존자와 경궤를 받쳐 든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뒤의 후불탱화는 지장시왕탱화로 지장보살과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시왕, 판관, 녹사, 사자, 우두, 마두를 반씩 나누어 좌우에 배치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지장전 전경.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지장전 지장보살 .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長谷寺 彌勒佛 掛佛幀. 국보 1997년 지정)은 용화수 가지를 든 미륵불을 그린 괘불입니다. 괘불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던 대형 불교 그림을 말합니다. 괘불탱은 높이 897.6㎝에 폭 585.7㎝ 크기에 화면 805.5㎝ × 556㎝로 중심에 미륵불을 두고 6대 여래, 6대 보살 등 여러 인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인간세계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미륵불은 사각형 얼굴에 머리에 4구의 작은 불상이 있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풍만한 모습으로 유난히 긴 팔과 커다란 상체가 특징입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상반신.
좌우의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은 머리에 둥근 두광이 있고 어깨높이까지 두 손을 들어 올려 설법하는 손 모 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밖의 다른 여래와 보살들은 각기 상징하는 물건들을 들고 있고, 10대 제자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자세로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그림 아래로는 부처를 수호하는 사천왕과 권속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전체 채색은 붉은색을 주로 사용하고 녹색, 연녹색, 주황 등의 중간 색조를 사용하여 밝은 화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중반화.
탱화는 1673년(현종 14년) 승려 화가 철학(哲學)을 비롯한 5명이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그린 것입니다. 미래불인 미륵을 본존으로 삼고 있지만 그림의 내용은 현세불인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영산회상도와 비슷합니다. 등장인물들과 배치 구도가 독특한 작품이며 경전의 내용과도 다른 점이 있어 연구 가치가 많은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하반화.<문화유산청 제공>
이어 언덕을 오르면 400여 년 수령의 느티나무 보호를 받는 상대웅전(上大雄殿. 보물. 1963년 지정)과 마주합니다. 전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크기로 맞배지붕에 다포 양식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의 짜임 수법이 특이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입니다. 건물로 들어서면 안쪽 바닥에 벽돌을 깔았습니다. 이 중에는 통일신라 때 것으로 보이는 잎이 8개인 연꽃무늬가 섞여 있고 불단에는 석가여래 대신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이 주존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상대웅전의 왼쪽으로는 응진전(應眞殿)이 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상대웅전 전경.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鐵造藥師如來坐像 및 石造臺座. 국보. 1962년 지정)는 철불좌상으로 나무로 된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거대한 사각형의 돌로 만든 대좌(臺座) 위에 높직하게 앉아 있습니다. 상투 모양 머리(육계)가 아담하게 표현되고, 얼굴은 둥글고 단아한 모습입니다. 건장하고 당당한 신체이지만 양감이 풍부하지 않고 탄력적인 부피감도 줄어 들어 9세기 후반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됩니다. 오른손끝은 땅을 향하고 무릎 위에 놓인 왼손에는 약항아리가 얹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없습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을 감싼 옷은 느슨한데 옷 주름이 간간이 표현되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상대웅전 법당 전경.
4각형 대좌는 불상보다 훨씬 장엄한 모습입니다. 상·중·하 3단 형태 대좌는 하대가 넓고 높았지만, 중대와 상대는 상대적으로 낮고 작은 편입니다. 바닥 돌은 매우 넓지만, 사방 모서리에 기둥을 세운 흔적이 있어 불상을 모시던 공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대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를 새기고 각 모서리에는 귀꽃을 큼직하게 조각했습니다. 중대의 각 면에는 큼직한 눈 모양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상대에는 활짝 핀 연꽃무늬를 조각했습니다. 광배는 원래 돌로 되었던 것으로 추정하지만, 파손되어 조선시대에 나무 광배로 대체했습니다. 중심부에 꽃무늬, 주변에 불꽃무늬를 새겨 신라말과 고려 초 유행하던 광배를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여겨집니다. 탑 모양의 대좌와 감실형의 구조, 그리고 단아한 철불양식을 보여주는 9세기 말 양식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뛰어난 불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상대웅전 철조약사여래좌상 전경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 (鐵造毘盧遮那佛坐像 및 石造臺座. 보물. 1963년 지정)은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했습니다. 삼각형에 가까운 작은 얼굴에 긴 눈썹과 가는 눈, 작은 코와 입 등이 표현되어 다소 세속화된 모습에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을 감싸고 있습니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는데 이는 비로자나불만이 취하는 독특한 손 모양으로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전체적으로 평범한 얼굴, 빈약한 체형, 허술한 오른쪽 어깨의 처리 등에서 9세기 중엽 비로자나불 양식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좌(臺座)는 원래의 것이 아니라 석등 대좌를 가져다 놓은 것으로 불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어색합니다. 부처의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머리 광배와 몸 광배 안에 꽃 모양의 장식이, 광배 가장자리는 불꽃무늬가 채색되어 있는데 옆의 철조약사여래좌상의 광배와 같은 양식입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상대웅전 철조비로자나불좌상.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상대웅전 아미타불좌상 전경.
상대웅전과 응진전 우측의 비탈길을 내려와 다시 산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산신, 독성, 칠성을 모셔놓은 삼성각이 있습니다. 필자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영식필 산신도 장곡사본 (永植筆 山神圖 長谷寺本. 충남문화유산자료. 2015년 지정)이 있다고 합니다. 1869년 화승 영식이 그린 불화입니다. 산신이 등 뒤에 웅크려 앉은 호랑이에 한쪽 팔을 얹은 채 기대어 앉아 시선은 몸을 틀어 오른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산신의 얼굴은 하얀 눈썹과 수염의 인자한 표정으로 머리에 푸른색 유건을 쓰고, 붉은 도포를 걸친 선인의 모습입니다. 어깨에 걸친 나뭇잎은 선인을 상징하는 표현이며 산신과 호랑이 뒤로는 시중을 드는 동자와 동녀가 과반을 들고 서 있습니다. 바탕색은 황갈색 배경에 소나무 둥지와 바위 등은 먹으로 질감을 표현하였고, 사실적 묘사보다 민화풍입니다. 산신과 동자, 동녀의 의복은 홍색과 녹색을 칠해 색채만으로 그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 삼성각.

▲ 천년고찰 청양 장곡사에서 연결되는 칠갑산 등반로.
<청양군 장곡사>
○ 위 치 :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길 241(장곡리 14-9 )
○ 운 영 : 연중무휴 무료입장 (일몰 이후 출입제한)
○ 주차장 : 장곡사 입구 공영주차장, 장곡사 종루각 인근 주차장
○ 취재일 : 2026년 3월 23일 등
< 참고문헌 >
최연식. (2015).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의 신앙내용과 제작 주체: 발원문 내용의 검토를 중심으로: 발원문 내용의 검토를 중심으로. 미술사연구, (29), 29-49.
정은우. (2015).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과 복장유물의 내력과 특징. 미술사연구, (29), 7-28.
임호빈. (2021). 청양 장곡사 대웅전 연구: A Study on the Daewoongjeon of Janggoksa.
김영주. (2024). 청양 장곡사 불교문화유산의 보존관리 방안 연구: A Study on the Conservation and Management of Buddhist Cultural Heritage in Janggoksa Temple in Cheongyang.
전통사찰총서 13 - 대전·충남의 전통사찰 1, 사찰문화연구원, 1999년
충남지역의 문화유적 청양편(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88)
충청남도지정문화재해설집, 충청남도, 2001년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정보(https://www.khs.go.kr)
충남디지털문화유산(https://www.chungnam.go.kr)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https://www.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