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골정저수지
- 2월 5일, 눈 덮인 건곤일초정에서 만난 순백의 아름다움과 사색의 시간 -
들어가며: 입춘(立春)의 문턱에서 만난 겨울의 선물

▲ 골정저수지
안녕하세요,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당진댁비니입니다.
계절의 변화는 늘 한 번에 오지 않고, 겨울과 봄이 수없이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며 찾아오곤 하지요.
저는 지난 2월 5일, 그 계절의 경계에서 특별한 풍경을 만나기 위해 당진시 면천면에 위치한 ‘골정저수지(골정지)’를 찾았습니다.
전날 밤부터 내린 눈이 당진 땅을 소복이 덮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매서운 추위가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겨울 끝자락에 내린 눈이 골정지의 고즈넉한 풍경과 만나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아한 수묵화를 그려 놓았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 골정저수지
눈부시게 하얀 세상, 골정지의 첫인상과 비움의 미학
저수지에 도착해 차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공기와 함께 눈부신 백색의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 골정저수지
며칠 전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은 채 골정지는 온통 하얀 솜이불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저수지 전체가 맑고 깨끗하게 느껴졌습니다.
여름이면 화려한 연꽃으로 가득 차 ‘연암의 연못’이라 불리던 이곳은, 이제 마른 줄기만이 눈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꺾이고 구부러진 연꽃의 흔적들은 하얀 종이 위에 검은 먹으로 그려진 정교한 소묘처럼 보였습니다.
생명력이 넘치던 초록의 계절을 지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흙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그 모습에서 저는 형용할 수 없는 숙연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화려한 여름의 골정지보다, 모든 색을 지우고 오직 흑과 백의 대비로만 남은 겨울의 골정지를 더 좋아합니다.
소란스러웠던 세상의 모든 소음이 하얀 눈 아래 잠든 것처럼 고요했기 때문입니다.
그 정적 속에서 들리는 것은 오직 제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밟히는 눈 소리와, 가끔 저수지 위를 스치는 바람 소리뿐이었습니다.
이 평화로운 풍경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니, 도심의 소음 속에서 엉켜있던 마음의 타래가 하나둘 차분하게 풀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 골정저수지
연암 박지원, 백성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머문 ‘애민(愛民)의 호수’
골정저수지는 단순히 경치가 좋은 관광지가 아닙니다.
이곳의 흙 한 줌, 물 한 방울에는 조선 후기 실학의 거두이자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1737~1805) 선생의 깊은 철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1797년 면천군수로 부임한 연암은 당시 가뭄과 흉작으로 피폐해진 농민들의 삶을 목도하며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실학자였던 그는 관념적인 이론에 머물지 않고,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이 골정저수지입니다.

▲ 골정저수지
연암은 버려진 늪지를 파내어 저수지를 축조하고, 여기서 모인 물을 인근 농지에 공급하여 가뭄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저수지 한가운데 놓인 인공 섬과 그 위의 정자, ‘건곤일초정’ 역시 연암의 세심한 설계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한 초가 정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정자는 연암이 추구했던 삶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백성들에게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소중한 물을 주고, 선비들에게는 자연과 벗하며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려 했던
그의 배려가 담겨 있는 것이죠.
눈 덮인 정자를 바라보며 저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연암 선생도 오늘처럼 눈 내린 어느 날, 저 정자에 앉아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평안하게 겨울을 날 수 있기를 기도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죠.
2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가 남긴 애민의 온기가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제 심장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듯했습니다.

▲ 골정저수지 앞을 지나가는 강아지 모습
건곤일초정, 하얀 모자를 쓴 정자의 단아한 미학
골정지의 백미는 단연 건곤일초정으로 향하는 돌다리를 걷는 순간입니다.
눈이 소복이 쌓인 돌다리는 조금 미끄러웠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뗐습니다.
그 걸음 끝에는 정자가 점점 크게 다가오며 설렘을 더했습니다.
육각형의 초가 지붕 위에 쌓인 눈은 마치 정자가 커다란 하얀 털모자를 쓰고 추위를 견디고 있는 것처럼 귀엽고도 단아해 보였습니다.
정자에 올라 저수지 전체를 조망해 보았습니다. 사방이 탁 트인 그곳에서 바라보는 눈 덮인 면천 마을의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었습니다.
저수지 주변을 호위하듯 둘러싼 고목들은 가지마다 하얀 눈꽃(樹氷)을 피워내어 성곽처럼 정자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길이 바빠졌지만, 사실 렌즈에 다 담을 수 없는 고결한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느낀 가장 큰 매력은 다시 한번 ‘비움’과 ‘소박함’이었습니다.
화려한 단청이나 웅장한 기와지붕 대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볏짚으로 지붕을 얹고 투박한 나무 기둥으로 몸체를 세운 이 정자는 자연과 전혀 이질감이 없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세상 속에 그 소박한 정자가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완벽한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연암이 왜 이곳에 화려한 건물을 짓지 않았는지, 그 깊은 뜻이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 골정저수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면천의 길을 걷다
골정저수지를 한 바퀴 여유롭게 돌고 나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인근의 면천 읍성으로 이어집니다.
2월의 찬 공기를 폐부 깊숙이 마시며 걷는 성곽길은 복잡했던 머릿속을 정리하기에 더없이 좋습니다.
골정지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는 1,10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을 견뎌온 면천 은행나무(천연기념물)가 우뚝 서 있습니다.
잎을 모두 떨군 채 장엄한 가지만으로 겨울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그 나무는 면천의 산증인이기도 합니다.

▲ 골정저수지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의 딸 영랑이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심었다는 전설이 깃든 이 나무 아래서,
저는 우리 도민들이 대대손손 이어온 끈질긴 생명력과 인고의 정신을 보았습니다.

▲ 골정저수지
또한 면천은 최근 옛 건물을 그대로 살린 이색적인 카페와 작은 서점들이 들어서며
‘뉴트로(New-tro) 여행지’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골정저수지
눈 덮인 골정지를 취재하느라 꽁꽁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들른 작은 카페에서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행복을 선사합니다.
혹은 면천의 명물인 ‘두견주’ 한 잔을 곁들이며 취재의 여운을 달래보는 것도 도민리포터로서 추천드리는 코스입니다.

▲ 골정저수지

▲ 골정저수지
저는 이번 취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신했습니다.
우리 충청남도에는 유명한 대형 관광지보다도 훨씬 깊은 울림과 이야기를 간직한 장소들이 참 많다는 것을요.
특히 당진 면천은 박지원이라는 위대한 선각자의 발자취와 그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마을 사람들의 온기가 어우러져,
방문할 때마다 매번 다른 감동을 선물해 주는 곳입니다.

▲ 골정저수지
취재를 마치며: 눈 아래 흐르는 봄의 약속
2월 5일, 제가 만난 골정저수지는 단순한 동결된 호수가 아니라 ‘위대한 기다림’의 공간이었습니다.

▲ 골정저수지
겉으로는 차가운 얼음과 눈에 덮여 죽은 듯 고요해 보였지만, 그 아래서는 연꽃이 다시 피어날 여름을 위해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었고,
헐벗은 고목들은 이미 껍질 안쪽으로 새순을 틔울 수액을 부지런히 끌어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기다림은 결코 지루하거나 슬프지 않았습니다.

▲ 골정저수지
오히려 하얀 눈이라는 눈부신 풍경으로 승화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있었습니다.
자연은 이토록 정직하게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데, 우리 인간들은 너무 서두르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도민 여러분, 혹시 일상이 너무 빠르고 복잡하게 느껴지시나요?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내면을 채우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눈이 다 녹기 전, 혹은 파릇한 새싹이 고개를 내밀기 전의 이 특별한 계절에 당진 면천 골정저수지를 꼭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 골정저수지
건곤일초정에 잠시 앉아 연암 박지원의 애민정신을 마음으로 읽어보고,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며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에 따뜻한 봄기운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2월의 골정지는 차가운 눈 속에서도 우리에게 ‘희망’과 ‘쉼’, 그리고 ‘다시 시작할 용기’라는 큰 선물을 건네주고 있었습니다.
이상으로 당진 면천 골정저수지에서, 충청남도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도민리포터 당진댁비니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골정저수지
화장실도 쾌적하게 관리 잘 되고 있어서 잘 이용하고 왔습니다.

▲ 골정저수지
이곳은 골정저수지 앞 주차공간입니다.

▲ 골정저수지
건너편에는 카페 골정지 라는 곳도 있어서 담아왔습니다.

▲ 골정저수지

▲ 골정저수지
이 카페 앞으로 넓은 부지가 모두 주차장입니다.
[면천 골정저수지]
○ 위치: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465
* 취재(방문)일: 202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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