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상록수’가 뿌리 내린 땅
겨울 들판과 마주하면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나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매서운 바람에도 꿋꿋이 서 있는 기상이 마치 시대의 억압 속에서 ‘그날’을 염원했던 심훈의 저항 정신을 닮았다. 차가운 계절에 더욱 빛나는 상록수, 그 생명력을 만나고자 충남 당진의 <심훈기념관>을 찾았다.
서울에서 태어난 심훈이 충남 당진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의 극심한 검열과 탄압으로 예술적 자유가 가로막히자, 그는 부모님이 머물던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로 내려왔다. 이는 단순한 은둔이 아니었다. 민족의 비참한 현실을 타개할 힘이 농촌에 있다고 믿었던 그는 자신의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당진의 흙을 밟은 것이다.

▲ 심훈 작가. /심훈기념관 제공
이곳에서의 생생한 목격담은 농촌 계몽 소설의 백미인 『상록수』의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 부곡리에서는 심훈의 장조카인 심재영이 주축이 되어 ‘공동경작반’을 이끌며 농촌 살리기에 매진하고 있었다. 심훈은 농민들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땀 흘리는 청년들에게서 우리 민족의 희망을 보았다. 그래서 심재영을 소설 속 주인공인 박동혁으로, 안산에서 활동하다가 요절한 최용신을 여주인공 채영신으로 형상화하여 당진의 현실과 결합시켰다. 이처럼 『상록수』의 배경인 당진은 심훈의 문학 세계가 현실에 뿌리를 내리게 한 기름진 토양이 되어 주었다.
저항과 계몽으로 시대 밝히다
심훈의 삶은 짧았지만, 누구보다 뜨거웠다. 1901년 서울(당시 경기도 시흥군)에서 태어난 그는, 1919년 경성제일고보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 감옥 안에서도 어머니께 편지를 쓰며 저항의 의지를 다졌던 청년 심훈은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신채호, 이회영 등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민족의 운명을 고민했다.
또한 그는 독립운동가이면서 시대를 앞서간 전방위적 예술가였다. 귀국 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기자를 거치며 예리한 필치를 선보였고,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했으며, 직접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하여 한국 영화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작품세계는 ‘저항’과 ‘계몽’으로 요약된다. 1930년 발표한 「그날이 오면」은 현대시 사상 가장 폭발적인 감정을 담은 저항시로 꼽힌다.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고, 자신의 가죽으로 북을 만들어서라도 독립의 행렬에 앞장서겠다는 그의 절규는 서슬 퍼런 시대에 던진 선언이었다. 이어 1935년 당진에서 집필한 소설 『상록수』는 농민의 자각과 연대를 그려내며 당시 지식인들에게 농촌으로 내려가 그들과 함께할 것을 촉구하는 행동 강령이 되었다.

‘기승전결’로 보는 일생
<심훈기념관>은 소설 『상록수』와 계몽운동을 조명하는 상징 공간과 ‘민족의식의 태동, 저항의 불꽃, 희망의 빛, 그날이 오면’이라는 네 가지 주제를 ‘기-승-전-결’의 흐름으로 구성한 전시 공간으로 나뉜다. 육필 원고와 낡은 안경, 작가가 쓰던 책상 등 그의 숨결이 닿은 유품들은 그의 숨결을 고스란히 전한다. 특히 『상록수』의 초판본과 서대문형무소 수감 시절의 기록은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기념관은 정적인 공간에 머물지 않고 대중과 호흡한다. 매년 열리는 '심훈상록문화제'에서는 시 낭송 대회와 문학 강연 등이 펼쳐지고, 방문객들은 기념관에서 제공하는 시 쓰기 체험을 통해 작가의 문장을 손끝으로 새겨볼 수 있다. ‘심훈 탐정단’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미션을 수행하며 역사를 즐겁게 배울 수 있다.
붓으로 밭 갈던 ‘필경사(筆耕舍)’
기념관을 나서면 고즈넉한 초가집 한 채가 발길을 잡는다. 심훈이 1934년 직접 설계해 지은 집, ‘필경사(筆耕舍)’다. 이름 그대로 ‘붓으로 밭을 가는 집’이라는 뜻이다. 농부가 땅을 일구어 곡식을 거두듯, 원고지라는 밭에 붓으로 민족의 정신을 심겠다는 처절한 의지가 담긴 산물이다.
이곳은 아마도 그의 내면적 요새였을 것이다. 일제의 감시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상록수』를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은 처마 밑으로 보이는 당진의 들판이 끊임없는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소박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필경사는 억압의 시대에도 굴하지 않았던 지성인의 자존심처럼 오늘날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필경사를 뒤뜰에서 울창한 대나무 숲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마치 굳세고 청아한 그의 목소리처럼 들려온다. 진실을 기록하고 시대에 응답했던 심훈의 삶, 그 불굴의 정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다면 지금 당진으로 발걸음을 옮겨보길 권한다.
